시
불행이 나를 훑고 지나쳤어.
불행이 나를 저격했지.
저격을 당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얼어붙어. 생기를 잃지.
발 디딘 땅이 세차게 흔들린 땅 위에서
가까웠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엄습하는 진동에 몸을 떨다가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확신에서 차갑게
슬픈 얼굴이 돼. 핏기 잃은 얼굴로 서 있게 돼.
그리고는
낯 모르는 사람의 친절과 배려를 의심하지.
낯선 사람이 그렇게 살갑게 굴 이유가 없으니까.
덕을 쌓겠다고 했던 나의 행동이 그렇게 불행으로 점철되어
내 목을 조여올 때, 공을 들여서 쌓아 올린 탑이 파경을 맞아
유서 깊은 이야기조차 한 톨의 먼지로 둔갑시킬 때,
나도 차라리 저 탑의 파편이 되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굴러 떨어져서 무더기로 흩어지면 좋겠다
싶다가도.
너와 나의 사랑을 무엇이 증명해 줄까
어리석은 질문에 손목이 걸려 또 한참을 걸어.
불행에 뚫린 몸통의 한 구석이 그렇게 시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