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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와 나

by 김지수



AO9c4hwps-jT1HU4GMIcTRDHync 장미꽃이 핀 플러싱 주택가


코로나 전 매일매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문화 탐구를 하면서 기록하고 지냈다. 그런데 봉쇄령이 내리자 나들이가 어려워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들과 둘이서 카네기 홀에서 요요마, 엠마누엘 엑스, 카바코스의 공연을 보면서 밤늦게 돌아왔고 메트에서 오페라를 이틀 연속 감상할 때도 코로나로 뉴욕이 잠들어 버릴 줄 미처 몰랐다.


그랬다. 코로나가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멈추게 할 줄을 아무도 몰랐다. 그날그날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새해 계획대로 모든 게 다 풀릴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삶이 멈춰버렸다.



ika6AS6kL_zhFA3p4BIijwhS9BA 식물원 느낌 감도는 플러싱 주택 정원



하루하루 코로나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는 늘어만 가니 지구촌에 공포가 엄습했다. 봉쇄령이 내리고 학교와 직장이 문을 닫고 마스크를 쓰고 지내야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실직을 한 사람도 많아져 가고 당장 지불해야 할 렌트비와 생활비가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가고 있다. 더 답답한 것은 언제 코로나가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점.



코로나가 장기전이 되자 우울증과 불안증 증세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미국인 1/3 이 우울 불안하다고 뉴스에 보도되었다. 아들도 엄마가 코로나로 맨해튼 나들이가 불가능하니 혹시나 코로나 블루에 걸릴까 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 잘 지낸 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하니 웃었다.


jymDJG_vmJcn37AE8jyvT-vrGT4 플러싱 동네 호수 풍경


매일 코로나 뉴스를 읽으며 불안 불안했는데 장미꽃이 필 무렵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예쁜 장미꽃을 보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30분 정도 산책하다 산책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2시간 정도 할 때도 있었다.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좋았다. 동네 호수 수양 버드나무 가지 아래서 산책하는 오리 가족은 한 폭의 근사한 그림이 되었다. 동트기 전 여명의 빛을 보면 마음도 환해졌다.



O0i1H2BZYiuxC21JXB4CinJKi8A 플러싱 주택가에 핀 예쁜 수국 꽃



매년 장미꽃이 필 무렵 뉴욕 식물원과 브루클린 식물원 장미 정원에 가서 산책을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문이 닫혀 슬펐다. 그런데 매일 동네에서 산책을 하면서 주택가 정원도 식물원만큼이나 예쁘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 늘 맨해튼에 가느라 바쁘니까 동네 호수에 가는 길과 시내버스 다니는 길에 핀 꽃만 알았는데 매일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플러싱 이웃집 정원에 핀 꽃을 알게 되었다.



OHYCF5JnGXdvp4Pb8oADKxCu89A 예쁜 백일홍 꽃


어느 날은 이웃집 할아버지가 정원에 초대하셔 장미꽃을 보며 행복했다. 집 안에 그리 멋진 장미꽃이 핀 줄을 몰랐다. 한국에서 아이보리색 수국 꽃만 보았는데 수국 꽃 색이 얼마나 다양하고 예쁜 지도 올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백일홍 꽃 모양도 색도 환상적이란 것도 올해 알게 되었다. 꽃 모양이 왕관처럼 예뻐서 혹시나 왕관 만든 사람이 백일홍 꽃을 보았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IU7cKT1x-TLLSB7QitABAo4HicI 퀸즈 베이사이드 황금 연못에 핀 수련꽃



매일 산책을 하니 관찰력도 높아져갔다. 파란색과 황금색 고추잠자리와 초록색 벌도 보고 기뻤다. 또 몇 차례 집에서 꽤 떨어진 퀸즈 베이사이드 황금 연못에 가서 수련꽃을 보며 아이폰에 담았다. 우연히 하얀 백로와 물새도 보아서 더 기분이 좋았다.



뉴욕에 유독 코로나 환자가 많았는데 점점 상황이 좋아져 오픈하기 시작했고 6월 22일 드디어 미장원 영업도 시작했다. 장미를 사랑하니까 혹시나 뉴욕 식물원이 문을 여나 궁금해 웹사이트에 접속했는데 그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웹사이트에 올려진 식물원 사진보다 내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린 꽃 사진이 더 많아서 혼자서 웃었다.



GDceJmeeCONuHPmTBxuMNetp1OQ 플러싱 저녁노을



코로나로 맨해튼 나들이가 불가능 하니 혼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뭘까 고민하다 이웃집 정원에서 산책하며 꽃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매일 성실히 하다 보니 약 100여 개 넘는 포트 폴리오를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 없이 매일 코로나 뉴스만 보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했으면 나도 어쩌면 코로나 블루에 걸렸을지 모르겠다. 참 힘들고 불안한 세상이지만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매일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매일 사진을 찍고 글쓰기를 하며 생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이민자의 삶은 하루아침에 안정되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면 끝없는 우울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길을 천천히 가고 있다. 매일 기도하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글쓰기를 한다.



tyBG1Hi-SFbw4-eWl3gUS0Xb_Dg 플러싱 주택가에 핀 능소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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