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을 만난 날

by 김지수

2021. 1. 28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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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어나 음악을 들었다. 내가 대학 시절 좋아하던 프랭크 시나트라 음악을 딸도 좋아한다. 세대가 다름에도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 '마이 웨이' 곡을 무척 좋아했는데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날 때 들었다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평생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는 내게 딸은 자유분방한 성격이라고. 정말 그런가. 세상이 뭐라 하든 말든 내 일에 충실하고 고개 숙이며 천천히 가는데 운명의 회오리바람이 우리 가족을 뉴욕에 데리고 왔다.





가끔씩 맨해튼에서 대학 시절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면 가게 주인이 나랑 같은 세대일까 혼자 생각도 하는데 뉴욕에 와서는 새로운 곡을 자주 듣지 않는다. 이민 1세로서 삶은 한국보다 훨씬 더 힘드니까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반스 앤 노블 서점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모를 때가 더 많다. 스마트 tv를 켜서 딸이 좋아하는 곡을 들려주는데 언젠가 북카페에서 듣던 곡이었다.





또 에드 시런의 노래를 들려주니 수년 전 보스턴 여행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딸네 집에 도착해 아들과 날 위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그의 노래를 처음으로 들었는데 참 좋아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보스턴 추억이 생각난다. 보스턴은 늘 그립기만 하는데 겨울날 무척 추운 도시. 뉴욕보다 더 추운 지역이라서 겨울 여행이 망설여진다. 혹시나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교통이 불편하기에. 특히 우리 가족처럼 버스를 이용할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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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하니 자꾸만 여행 떠나고 싶은데 보스턴 미술관에서 이메일이 오니 더 그립다. 수년 전 에곤 쉴레 특별전 마지막 날 우리가 보스턴에 도착하자마자 미술관에 달려갔는데 딸은 연구소 포닥을 만나 웃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여유롭게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그날 무료로 특별전을 보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감미로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도 들으며 토스트와 커피와 사과를 먹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날씨가 꽤 추운데 더 추워진다고 하는데 하필 김치가 떨어져 한인 마트에 김치를 사러 갔다. 추운 날이라 고구마도 먹고 싶어서 김치와 고구마만 사야지 하고 갔는데 내 앞에 펼쳐진 음식 세상.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무와 참치캔과 김치 한 통과 고구마 약간과 대파 등을 샀는데 지갑이 홀쭉해졌다. 내 몸이 홀쭉해지면 좋을 텐데 거꾸로.






마트에 다녀와 아들과 함께 조깅하러 공원에 다녀왔다. 날씨가 추우면 몸도 더 피곤한 듯. 세탁을 미루려다 다음날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하니 단단히 마음먹고 세탁 가방에 이불과 수건과 속옷과 양말과 외출복을 담고 아파트 지하에 내려갔는데 출입문 입구 전구 불빛이 카바레처럼 이상한데 아들은 공포 영화 분위기 같다고. 똑같은 전구를 보고 난 나이트클럽 카바레를 떠올리고 아들은 공포 영화. 사람이 다르니까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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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대학 시절 친구들이 클럽에 가자고 하면 도망가고 어쩌다 한 두 번 가면 코너에 앉아 구경만 했다. 춤도 잘 추면 좋겠는데 아니니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게 함께 춤을 출까요?라고 말했던 링컨 센터에서 만난 중년 남자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도 음악을 좋아하는 듯. 왜냐면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만난 사람이었다. 화장기 없고 미장원에 간 기억도 없고 주름살 많은 내게 춤을 추자고 하니 웃고 말았지. 뉴요커들이 재밌기도 해.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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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경 세탁하러 갔는데 다행스럽게 우리가 사용할 세탁기가 남아 있었다. 막 세탁물을 꺼낸 이웃이 있어서 감사했다. 얼른 세탁물 넣고 집에 돌아와 30분 후에 건조기에 옮기려고 갔는데 6대 가운데 딱 2대가 남아 우리 세탁물을 옮겼다. 그때 아들이 혹시 전기 스위치가 나갈지도 모른다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하려다 침묵을 지키고 집에 돌아왔다.


1시간 후 세탁물 찾으러 갈 때 아들이 전기가 멈출 확률은 30%, 세탁이 되었지만 세탁물이 마르지 않을 확률이 40% 라고 말했다. 아니다 다를까 도착하니 건조기가 멈춰있었다. 그런 광경을 처음으로 보는 한인 아주머니는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가 그런 일은 가끔 일어난다고 하니 웃으셨다.


2시간이면 세탁이 끝나야 하는데 다시 전원 스위치 켜고 집에 돌아와 40분 후 지하에 갔는데 건조기가 멈춰 있었지만 세탁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돈만 먹고 일을 충실히 하지 않은 건조기. 낡고 오래되어서 그런가. 아무 일 없이 세탁이 되면 기쁘다. 집에 세탁 가방 들고 돌아와 집에 세탁물을 펼치니 쓰러진 전사가 누운 전쟁터 같았다. 그래도 귀찮아서 다음으로 미루려다 추운 날 세탁을 마쳤으니 감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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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행운아인가. 남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것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수준의 고통과 시련을 동반하는 일. 오래전 지옥의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에 찾아왔을 때는 아파트 지붕이 날아가버려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지. 하늘에서 집으로 물이 쏟아졌다. 동화책에서 보던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져도 참고 견뎠다.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많은 가구 가운데 딱 우리 집뿐이었다. 고통이 주는 선물이 있다. 고통을 이겨내면 다음번에 같은 고통이 찾아오면 더 쉽게 넘긴다.


타고난 성격이 긍정적이라 좋은 면도 있다. 뭐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위기 한가운데서 태평양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뉴욕에 오려고 결정을 내린 것도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구경하지 않은 뉴욕에 간다고 하니 모두들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말할 것도 없이 부모님은 나의 결정을 반대하셨지만 내 삶이니 내 뜻대로 결정했다.


바로 그 덕분에 뉴욕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산다. 누굴 탓할 것도 없다. 내 선택은 내 책임. 다 받아들이고 살고 지옥도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부모님은 내가 고생할 게 뻔하니 반대하셨겠지. 아버지 생전 해외여행 가니 외교관들도 고생 많이 하고 살더라 하시면서 한국 사람은 한국이 가장 살기 편하고 좋다고 늘 말씀하셨다.


IMG_7188.jpg?type=w966 예쁜 호수 빛, 내겐 천국이야.



한낮에는 천국을 만나러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휴대폰 하나면 천국의 풍경을 보고 담는다. 새해 매일 호수에 가니 사랑에 빠졌나. 아님 정이 들어서 그런가. 호수 풍경이 점점 더 예쁘게 보인다. 황홀한 풍경 보면 내 가슴은 쿵덩쿵덩 뛴다. 나도 모르게 쉬지 않고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말았지. 아,... 그럼 안되는데. 왜냐면 고생이거든. 딱 한 두장 사진을 찍으면 고생 안 할 텐데 왜 자꾸 그런지 몰라. 그래서 늘 바쁘다. 집안일하고 산책하고 사진 작업하고 글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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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뜰에 가서 한겨울에 핀 동백꽃도 보았다. 새해 첫날 동백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사진을 찍었는데 벌써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달이 되어간다. 꽃은 일주일 내지 열흘이 예쁘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고. 봄에 피는 꽃도 있고 여름에 피는 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꽃도 있고 겨울에 피는 꽃도 있다. 내 인생의 꽃은 언제 필까.



IMG_6518.jpg?type=w966 어릴 적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본 붉은 열매



밤 10시 반 영하 6도, 체감 온도 영하 16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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