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결정체'
<03화> 결정체(結晶體)
내 삶은 폐쇄되기 전에 두 번 닫혔다.
그러나 두고 볼 일.
불멸이 나에게
세 번째 사건을 보여줄지는.
내게 닥친 두 번의 일들처럼
너무 거대하고,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절망적 일지는.
이별은 우리가 천국에 대해 아는 모든 것.
그리고 지옥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
- 에밀리 디킨슨 -
검은 방에서 다시 눈을 떴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나만 여전히 홀로 남았다.
이 방에서 '온전히 숨 쉬는 것'은 아내가 항상 살려냈던 '지리홍'뿐이다.
이 녀석은 생명체가 생리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호흡'을 하고 있다.
살아가야 할 가치를 지닌 생명체의 모습으로 훌륭히, 그리고 갸륵하게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지금 이 순간도 숨 쉬고 있다.
반면, 나란 인간은 어떤가.
비루한 삶을 연장하기 위한 호흡은 하고 있으나 숨 쉬지 못한다.
'살아가기 위한 삶'이 아니라 '죽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기에, 죽음을 맞이하려면
잠시의 삶이 필요하기에, 나의 생리적 활동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
'그 일'이 일어난 후 100일이 채 되지 않아서 아내도 아이를 뒤따랐다.
엄마 품 없이는 잠을 들지 못하는 아이가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
아이가 떠난 후 100일의 시간 중에 그녀에게 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유기체였다.
그녀는 간혹 철저히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새끼를 지키지 못한 '수컷'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다.
충격과 분노, 절규와 통곡, 애도와 추모의 시간에서 나는 완벽하게 지워졌다.
그녀는 먹지 않았고 자지 않았고 오직 스스로를 결정화(結晶化) 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꽃 피웠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숨 쉬게 했던
내 연인은 결국 수정(水晶)이 되어 영롱한 빛을 마지막으로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눈물도 마른 투명한 얼굴로 지옥의 고통을 승화한 결정체(結晶體)가 되어
그녀는 더 이상 숨 쉬지 않았다.
나는 검은 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내 삶은 이미 '두 번이나 닫혔다'.
살아있지만 죽은, 나는 '폐쇄되기 전'에 두 번 죽은 것이다.
고체가 되었으면, 나도. 아름다운 '수정(水晶)'까지는 아니더라도.
돌이 되었으면. 채이고, 밟히고, 부서지더라도, 무심한 평정의 정물(靜物)인
돌이 되었으면.
이대로 검은 방에서 움직이지 않는 내 몸뚱이가 결정체가 되었으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