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는 여시였다

권영임 장편소설/ 바람꽃

by 윈디

꿈을 꿨다.

똘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삐비였다.

길을 걷고 있는데 내 발 옆에 따라와 내가 쳐다보며 '별이야'라고 부르자마자

배를 뒤집더니 내 무릎에 올라와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 날 반가워했다. 앉아서 쓰다듬다 깼다.

우리 똘이와 삐비 떠나보낸 후 단 하루도 잊히지 않는다.

늘 신비로웠던 건 만나게 된 그 인연이었다. 그 이야기는 내게 그리스로마신화보다 더 가깝다.


이제 똘이가 떠난 지 4년, 삐비가 떠난 지 11월 6일이면 2년이 된다.

여전히 데리고 있는 똘이와 삐비를 보내야 한다.

똘이는 양재천 징검다리 건너는 것도 무서워했으니 바다는 아니다.

똘이는 나무를 참 좋아했고 삐비는 나만 있으면 어디든 좋아했다.


추석 미사 중 나를 지금 있게 해 준 내가 모르는 영혼과 우리 똘이 삐비를 생각했다.

그래서 꿈을 꾼 걸까. 꿈을 꾼 다음 날 시장을 걷고 종묘를 걸으면서도 몹시 그리웠다.

집에 돌아와 할 일을 하면서도 계속 꿈 생각이 났다.

이럴 때 마음 잡는 내 모든 해결사 책장에서 이 책이 나를 불렀다. 읽을 '때'가 되었다.


엎드려 읽기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모아지니 책상에 앉아 밑줄을 쳤다.


"-시간은 결코 사라지는 게 아니야. 하얗게 고사목으로 변한 저 천년 세월의 구상나무를 한번 바라봐. 나무를 관통했던 시간은 이미 사라졌거나 어딘가로 도망친 게 아니라 저 나무가 울창하고 싱싱하던 순간들에 다 깃들어 있어. 보여?

-넌 그게 보이니?

-그래! 보인다고 맹세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너를 스쳐간 시간들도 어딘가 다른 곳으로 흘러간 게 아니라 과거의 너에게 가 있는 거야. 내 시간들도 물론 다를 게 없고..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 역시 그래.ㅣ 우리가 울던 날의 시간은 울던 그 순간을, 또 우리가 행복하던 날의 시간은 행복하던 그 순간을 마치 수호신처럼 절대 떠나지 않을 자세로 지키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어. 이해할 수 있니?"p230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듯, 이 소음의 가르마를 낱낱이 탈 수 있다면 우선 성공이다. 그런 뒤에 소릿결을 따라가면서 그 시작과 근원을 찾아 나서면 끝이다. 바람의 소리를 듣는 요령은 그렇게 단순하다. 단, 아주 세심한 집중이 필요하다. 귀가 큰 우리 여시들도 더러 소리의 바탕을 놓치는 경우가 많으니까."p242


"아리와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올랐다. 일부러 떠올렸다. 하나의 삶은 저무는데 또 다른 삶은 피어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해가 뜨고 저무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나는 세상을 아주 조금쯤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p243


"아리의 말은 아리의 입 밖으로 나와 세상에 뿌려졌기 때문에 우리 인연을 키울 수 있었다.

-이제 영영 끝일 테니, 잘 가. 아리야. 아리야. 한 번은 보고 싶지만..."


"사랑해, 호야. 너 때문에 내 어린 날들이 행복했어."p245


"그러다가 그 별, 북극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내온 세상의 모든 날들이 그 별 하나에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어느 한순간, 마치 눈물을 흘리리라도 하듯, 별이 반짝 빛났다.

비나리를 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분이라는 사실을 나는 직감했다.

아주 인간적인, 아니 여우적인 한 게라고 해도 좋다.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시간에게나 빌어야 한다던 말을 바람에게 진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통령이 김대중이어서 그랬다면 좀 더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그 여우는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작년 현충원에 처음 갔던 날 비가 내렸다.

김대중대통력 묘역을 곧장 갔고 우산을 쓴 채로 오래 머물렀다.

배롱나무 꽃이 남아있었다.

김대중대통령께 나를 위해 빌었다.

처럼 용기와 인내를 주시라고..

내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구 방명록에 적힌 분들 이름을 적어오기도 했다.

내 말의 씨앗과 인연이 된 시간과, 모든 것이 어우러져 깨달음을 얻는

내 인생을 사랑한다.


이 책의 인연은 지난 7월에 시작되었다.

전철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어떤 자리에서 사무직 여성들의 성차별을 다른 책 『미스 김, 시집이나 가지? 』라는 책 소개 인사를 들었던 분이다. 만남김에 식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집에 아픈 분이 계셔서 바로 가셔야 한다고 했다.

그때 뵌 후로 보내주신 책이다. 9편의 단편이 담긴 『벌거벗은 공주님 』을 한편씩 읽었다.

부조리와 사라진 정의를 담담하게 말하는 조용한 목소리는 더 가슴 에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때 남겨둔 또 한 권의 책 『전생에 나는 여시였다 』권영임 장편소설을 이제야 읽은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한 권의 책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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