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화된 삶과 본질주의의 귀환(5)

by 디본


제5화. 지직거리는 잡음의 미학: LP와 물성의 반격


1. 비사물(Unding)의 제국과 실재의 소멸


현대 문명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이행기를 지나고 있다. 구체적이고 단단한 ‘사물(Ding)’의 세계가 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 즉 ‘비사물(Unding)’이 지배하는 유령 같은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인의 주의력은 이제 땅과 하늘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구글 어스와 클라우드라는 비물질적 연결망 속에 머문다.


우리는 손에 잡히는 사물과 마주치기보다는 화면 속의 데이터를 소비하며, 타자와의 인격적 만남 대신 팔로워와 친구의 숫자를 쌓아 올리는 데 열중한다. 이러한 ‘탈사물화(Dematerialization)’의 과정 속에서 실재(Reality)는 고유한 현존을 박탈당하며, 인간은 존재를 지탱해 주던 확고한 사물을 망각한 채 정보권(Infosphere) 내에서 부유하게 된다.


디지털화된 세계에서 정보는 어떠한 저항도 없이 매끄럽게 흐른다.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액정 화면은 현대인의 감각을 지배하는 ‘디지털 성물’로 자리 잡았으며,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좋아요’의 연쇄는 일종의 ‘디지털 아멘’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한병철은 이러한 매끄러움의 미학이 오히려 인간의 경험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사물이 몸뚱이를 들이밀며 선사하는 ‘물리적 저항’이야말로 인간이 실재와 접촉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저항이 사라진 매끄러운 정보의 세계에서 인간은 세계와 결합되지 못한 채 자기 자신 주위를 맴돌 뿐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병적인 세계 결핍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관측되는 아날로그 LP(Long Play)의 부활은 단순한 복고적 취향의 회귀를 넘어, 디지털의 유령적 지배에 대항하는 ‘물성(Materiality)의 반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물성의 저항: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의 존재론


LP가 지닌 매력의 핵심은 역설적이게도 디지털이 그토록 제거하려 애썼던 ‘잡음’에 있다. 레코드판의 골(Groove)을 타고 흐르는 바늘이 먼지나 미세한 흠집과 마찰하며 내는 ‘지지직’ 거리는 소리는, 소리가 단순히 공기 중의 진동을 넘어 물리적 실체에 각인된 흔적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물성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사물의 마법’을 복원하는 매개체가 된다. LP를 듣기 위해서는 판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턴테이블 위에 올린 뒤, 톤암을 신중하게 내려놓는 번거로운 리추얼(Ritual)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청취자는 디지털 스트리밍이 주는 무한한 건너뛰기(Skipping)의 유혹에서 벗어나, 음악이라는 사물과 ‘집약적 관계’를 맺게 된다. 사물과의 이러한 관계 맺기는 덧없는 삶에 잠시 멈춤을 선사하며, 파편화된 인간의 존재를 다시 현실에 정박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디지털 파일은 수만 번 재생해도 열화되지 않으며, 모든 복제본이 완벽하게 동일하다. 따라서 디지털 세계에서 ‘원본’을 찾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반면, LP는 재생될 때마다 바늘과의 마찰을 통해 미세하게 마모되며, 소유자의 관리 습관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유한 상처를 몸에 새긴다. 반복해서 들은 트랙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노이즈, 재킷의 모서리가 닳아가는 흔적, 오래된 종이 냄새 등은 대량 생산된 LP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사물’로 변모시킨다. 이는 벤야민이 말한 ‘여기 그리고 지금(Hic et Nunc)’의 현존성을 사물이 시간을 거치며 스스로 구축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3. MZ세대의 귀환: 소유와 정체성의 고고학


LP 시장의 부활을 주도하는 주역이 과거의 향수를 가진 기성세대가 아니라, LP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MZ세대(2040세대)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사회 현상이다. 2022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체 LP 구매자 중 2030 세대의 비중은 36.3%에 달하며, 40대를 포함하면 이들이 시장의 핵심 동력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LP를 찾는 첫 번째 이유는 ‘음악의 사물화’에 대한 갈망이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구독’하고 휘발시키는 방식에 지친 젊은 층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물리적 실체로 ‘소유’하고 만질 수 있는 형태로 간직하길 원한다. 이는 음악을 단순히 듣는 대상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굿즈(Goods)’이자 ‘충심의 사물’로 대하는 태도다. 두 번째는 아날로그가 선사하는 ‘뉴트로(New-tro)’적 희소성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12인치 크기의 커버 아트와 턴테이블의 회전은 그 자체로 힙(Hip)하고 특별한 문화적 경험이 된다. 마지막으로, 한정판 컬러 LP나 넘버링된 음반들이 주는 희소성은 소유의 쾌감을 극대화하며, 디지털의 무한 복제성에서 느낄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한다.


이러한 열풍은 디지털이라는 ‘비사물’의 바다에서 실재의 섬을 찾으려는 젊은 세대의 ontological(존재론적) 탐구로 해석될 수 있다. 정보의 범람 속에서 손에 잡히는 확실한 것을 원하는 본능적인 갈망이 LP라는 사물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4. 현대의 신전: 리스닝바와 관조하는 삶


개인적인 수집을 넘어, LP는 ‘리스닝바(Listening Bar)’라는 새로운 공간 문화를 통해 공동체적 리추얼로 확장되고 있다. 인사동의 ‘뮤직O플렉스 서울’이나 한남동의 ‘OOB’ 같은 공간은 현대인들에게 단순한 카페나 술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만 장의 LP가 벽면을 가득 채운 이곳은 정보의 소음으로 가득한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된 ‘고요의 성소’와 같다.


이곳의 방문객들은 각자의 자리에 마련된 턴테이블 앞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음악에 온전히 몰입한다. 이는 한병철이 강조한 ‘관조하는 삶(Vita Contemplativa)’의 현대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소통은 타자의 ‘바라봄’을 소멸시키고 공감을 상실하게 만들지만, 리스닝바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타인과 같은 음악의 울림을 공유하는 행위는 느슨하지만 단단한 ‘신체적 공동체’를 재건한다. 특히 창밖의 풍경을 배경으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듣는 옛 음악은 시간이 멈춘 듯한 경험을 선사하며, 이는 우울증과 세계 결핍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정서적 치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LP의 귀환은 우리에게 기술 지배 시대의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발터 벤야민이 우려했던 아우라의 소멸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으나, 역설적으로 그 기술의 끝자락에서 인간은 다시금 물질적 접촉과 개별적인 흔적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화면 위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물의 ‘거친 저항’이 오히려 인간을 살아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LP는 지지직거리는 잡음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5. 결론: 물성의 반격과 존재의 정박


디지털 세계는 효율적이고 완벽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적 고뇌와 시간의 흔적이 스며들 틈이 없다. LP의 지지직거리는 잡음은 소리의 결함이 아니라, 디지털이 거세해 버린 ‘삶의 물성’이 내지르는 비명이며 동시에 반격의 신호다.


사물이 소멸하고 비사물인 정보가 영혼을 잠식하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레코드판의 묵직한 무게를 느끼고 바늘 끝의 진동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실재의 땅에 단단히 정박시킨다.


물성의 반격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가상에 매몰된 인간이 다시금 ‘사물적 진실’을 되찾으려는 실존적 투쟁이다. LP를 통해 복원된 ‘시간의 향기’와 ‘아우라’는 우리가 단순히 데이터를 소비하는 유령이 아니라, 사물과 교감하고 기억을 축적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고귀한 주체임을 확인시켜 준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뒤에 숨겨진 깊은 고요와 따뜻한 울림은, 기술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성역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다시 불편함을 감수하며 LP를 꺼내 들고 바늘을 올리는 진정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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