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화된 삶과 본질주의의 귀환(10)

by 디본


제10화. 에필로그: 서사의 통합, 나는 나의 이야기다


1. 정보는 넘치는데, 내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마주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하는 세계의 뉴스부터 친구의 점심 메뉴,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수만 개의 숏폼 영상까지. 철학자 한병철은 이를 두고 구체적인 ‘사물(Ding)’이 소멸하고 정보라는 ‘비사물(Unding)’이 지배하는 유령 같은 세계라고 진단했다. 정보는 그 자체로 우리 뇌를 스쳐 지나갈 뿐, 우리 안에 머무르며 삶의 향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스마트폰 타임라인 위에서는 뚝뚝 끊겨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15초 단위로 쪼개진 정보들은 우리를 흥분시키지만, 정작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긴 호흡의 줄거리를 앗아간다. 우리가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도 잠자리에 들 때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는 이유는, 정보는 실껏 소비했지만 정작 ‘내 삶의 서사’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는 무의식적인 자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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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날로그, 시간을 이어 붙이는 소박한 접착제


우리가 지난 연재를 통해 다룬 불편한 아날로그 도구들은 사실 흩어진 시간의 파편들을 이어 붙여주는 ‘접착제’와 같았다.



멍 때리기는 쉼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고요의 성소’를 마련해 주었다.


LP와 리스닝 바는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음악이라는 사물과 ‘집약적 관계’를 맺게 하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워 ‘지속’하게 만들었다.


필사와 독서는 얄팍한 정보 대신 타인의 깊은 사유를 내 몸에 새기며,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인지적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필름 카메라의 36장이라는 제약은 우리가 대상을 단순히 스캔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응시하고 전략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도 닦는 시간’을 선사했다.



이 모든 행위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자는 향수가 아니었다. 알고리즘에 의해 편집당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내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고 소유하겠다는 소박하지만 단단한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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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지털 안식일: 비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우리는 스마트폰을 버리고 원시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디지털 기술은 여전히 유용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다. 다만 이제는 우리가 그 도구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디지털 안식일’ 혹은 ‘정돈’의 시간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스마트폰 대신 명상이나 기도로 채우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휴대폰을 덮어두고 관계에 집중하는 작은 실천들이 우리의 삶을 정보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다. 일주일 중 단 하루라도 휴대폰 없이 지내보는 실험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주변 사람의 마음이나 밀어두었던 창틀 청소 같은 소소한 일상의 실재감을 되찾게 된다.


4.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때 비로소 ‘자아’가 확립된다고 했다. 우리는 픽셀화된 점들의 집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서사 그 자체다.


“오직 충심의 사물만이 영혼을 가진다”는 말처럼, 우리가 공들여 사용하고 애정을 쏟은 시간만이 우리 영혼의 일부가 된다. 유행을 따르는 ‘텍스트 힙’의 열풍 속에서도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멋진 책 표지가 아니라, 그 활자 사이에서 발견하는 ‘나만의 아름다움’이다.


이 연재를 마무리하며 묻고 싶다. 우리들의 지난 일주일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졌는가? 혹시 스크롤 속에 녹아버린 무의미한 픽셀이었는가, 아니면 무언가를 만지고 느끼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 향기로운 시간이었는가?


만약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해도 괜찮다. 지금 잠시 멈춰 서서 턴테이블의 바늘을 아주 조심스럽게 올리듯,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된다. 거친 종이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보고, 창밖의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고, 곁에 있는 사람의 눈을 3초만 더 바라봐 주자.


우리의 삶은 무수한 픽셀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을 연결하여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하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몫이다. 부디 우리의 삶이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경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꾹꾹 눌러 쓴 문장들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고개를 들어보자. 픽셀 밖에는 여전히 우리가 사랑해야 할 ‘진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감사의 말]


그동안 부족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연결된 고독 II] <픽셀화된 삶과 본질주의의 귀환> 연재를 함께 읽어준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우리의 탐험은 여기서 끝나지만, 각자의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두의 매일이 다정한 서사로 가득 차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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