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Financial Times가 발표한 자료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웹사이트와 앱, 코드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과거에는 팀 단위로 6개월은 매달려야 했던 프로젝트가 이제는 한 사람이 주말 동안 완성된다. 심지어 코드 한 줄 몰라도 앱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만드는 것의 장벽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 변화는 단순히 개발자의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작동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내려간다. 지금 소프트웨어 공급은 수직 상승하고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면, 만드는 것의 가치는 어디로 갈까.
나는 답이 명확하다고 본다. 돈과 에너지는 결국 남은 병목으로 흘러간다. 그 병목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AI는 앱 수백만 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앱을 다운로드하게 만들 수는 없다. 글을 백만 개 써도 5만 명이 공유하게 만들 수는 없다. 기술적으로 맞는 것과 사람들이 실제로 반응하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데이터 몇 줄이나 알고리즘 한 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감각이고, 맥락이며, 신뢰다.
타이밍을 아는 것.
지금 웃어야 할지, 진지해야 할지 아는 것.
문화적 온도를 읽는 것.
이건 수년간 쌓아야 생긴다. 지름길은 없다.
흥미로운 건 AI가 이 차이를 더 크게 만든다는 점이다. 감각 있는 사람에게 AI는 강력한 무기다. 예전에는 제목 네 개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40개를 테스트한다. 평균을 빠르게 통과하고, 진짜 중요한 15%에 집중한다. 반면 감각이 없으면 AI는 평범한 것을 더 빠르게, 더 많이 찍어낼 뿐이다.
이 현상은 개발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I 덕분에 앱과 웹사이트를 훨씬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 고객사 프로젝트의 코드 상당 부분을 AI가 작성하고, 디자인과 퍼블리싱도 자동화된다. 효율은 올라간다. 속도는 빨라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위기가 시작된다.
왜냐하면 구축 그 자체가 더 이상 차별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 구축형 인력 공급사는 점점 더 마진 압박을 받을 것이다. 고객은 “이 정도는 AI로도 가능하지 않습니까?”라고 묻기 시작한다. 개발회사로만 남으면, 레버리지 없는 하청 구조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기술이 평준화되면 가격 경쟁으로 밀려난다.
AI 시대에 개발회사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AI 덕분에 개발사가 더 좋아지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맞다. 생산성은 올라가고, 인력 구조는 슬림해진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진짜 경쟁은 ‘누가 더 빨리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신뢰받는가’로 이동한다.
특히 금융과 공공 영역은 다르다. 이곳은 단순히 앱을 잘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라이선스, 규제 적합성, 보안 역량, 데이터 거버넌스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한 번의 실수가 곧 신뢰 붕괴로 이어지는 영역이다.
AI는 개발 장벽을 낮추지만, 신뢰 장벽은 낮추지 못한다.
나는 이 지점이 앞으로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 본다. AI가 보편화될수록, 기술은 commodity가 된다. 하지만 신뢰는 더 희소해진다. 사람들의 시간과 집중력은 늘어나지 않는다. 결국 관심은 플랫폼과 강한 브랜드, 그리고 규제와 보안을 통과한 곳으로 쏠린다.
이 변화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코드를 공급하는 회사인가, 아니면 금융권의 관심과 데이터가 통과하는 인프라인가.
핑거는 후자를 선택해왔다고 생각한다. 단순 SI가 아니라 파로스 ERP, PG와 온누리상품권 시스템, 핑거AI패드 같은 자체 플랫폼을 통해 반복 사용과 거래가 발생하는 접점을 확보했다. 그 위에 생성형 AI를 내재화해 코드 생산성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과 전환율, 재방문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AI를 쓰고 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STO, AI 금융, 기후테크 같은 차세대 금융 키워드를 하나의 서사로 묶어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칼럼과 브리핑, 웨비나를 통해 시장과 대화한다. 단순히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읽고 반박자 앞서 질문을 던진다.
결국 회사의 미래는 코드 줄 수가 아니라, 신뢰의 밀도로 결정된다.
AI 시대는 많은 개발자를 대체할 것이다. 마케팅도, 디자인도, 운영도 자동화될 것이다. 개발회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치열한 환경에 놓일 것이다. 더 싸게,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압박 속에서 방향을 잃기 쉽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다. 고객의 신뢰다.
고객이 “이 회사는 우리 데이터를 맡겨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회사는 규제를 이해한다”고 인정하는가.
“이 회사는 시장을 반박자 앞서 읽는다”고 신뢰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AI 시대의 속도는 오히려 독이 된다.
핑거가 26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돌아본다. 단순히 개발을 잘했기 때문은 아니다. 고객 신뢰를 쌓아온 시간, 끊임없는 기술 개발, 그리고 시장의 흐름을 반박자 앞서 읽으려는 태도가 축적된 결과다.
AI는 도구다. 강력하지만, 방향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앞으로 앱과 웹사이트는 더 쉽고 더 빠르게 만들어질 것이다. 개발회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신뢰를 쌓고, 도메인을 깊게 이해하며, 기술과 시장의 흐름을 연결하는 회사는 살아남는다.
코드는 범용이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를 지키는 회사만이, 다음 26년을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