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인간의 뇌를 만나는 순간
한 시대를 규정하는 사건들은 대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여성, 법정에서는 이니셜로만 불리는 KGM의 이야기도 그렇다.
그녀는 여섯 살에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을 처음 접했고, 아홉 살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공식적으로는 13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였지만, 현실의 인터넷 세계에서 나이는 종종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그렇게 시작된 소셜미디어 사용은 어느 순간 삶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KGM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이 표현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지금 세계가 묻고 있는 질문의 핵심이기도 하다.
소셜미디어는 단순한 플랫폼인가. 아니면 인간을 붙잡기 위해 설계된 제품인가.
이번 재판에서 원고 측 변호사는 소셜미디어를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제품 책임(Product Liability)”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콘텐츠가 아니라 설계라는 것이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추천 알고리즘, 알림 시스템, 좋아요 버튼.
이 기능들은 단순히 편의를 위한 기능일까.
아니면 사용자의 뇌를 붙잡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장치일까.
이 질문은 지금 인터넷 산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난 20년 동안 인터넷 산업은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주의(attention)는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이다.
플랫폼 기업의 수익 구조는 대부분 광고에 기반한다. 광고는 결국 사용자가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플랫폼의 진짜 경쟁력은 콘텐츠가 아니라 사용자를 붙잡는 설계 능력이 되었다.
무한 스크롤은 사용자가 멈출 이유를 없애고, 자동 재생은 다음 선택을 생각할 시간을 지워버린다.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제공한다.
이 과정은 놀랍도록 과학적이다.
행동심리학, 뇌과학, 데이터 분석이 결합되면서 플랫폼은 인간의 도파민 시스템을 정교하게 자극하는 구조로 발전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무심코 집어드는 순간조차 이미 알고리즘이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소셜미디어를 이렇게 표현한다.
“주의(attention)를 채굴하는 산업.”
문제는 이 산업의 가장 취약한 대상이 성인이 아니라 청소년이라는 점이다.
KGM 사건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 때문이다.
원고 측에 따르면 KGM은 10세 무렵부터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해 충동
신체 이미지 왜곡
사회적 비교 스트레스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뷰티 필터와 이미지 문화가 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소셜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는 공간이고, 외모 비교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또래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알고리즘에 의해 증폭된다.
그래서 지금 세계 여러 나라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시작하고 있다.
최근 유럽과 호주에서는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강하게 제한하는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교실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사실상 금지했다.
호주 역시 대부분의 공립학교에서 수업 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서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정책의 이유는 단순하다.
스마트폰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학습을 방해하며, 사이버불링을 증가시키고, 수면 부족과 정신 건강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스마트폰 금지 이후 학생들의 대화 시간이 늘고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학교 규제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은 기기가 아니라 플랫폼 설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세 가지 축에서 동시에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폰 프리 존을 만들고, 가정에서는 사용 규칙을 만들고, 사회는 플랫폼 규제를 고민한다.
KGM 소송 역시 바로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한 사건이다.
물론 플랫폼 기업들은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메타와 구글의 핵심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과관계 문제다.
한 개인의 정신 건강 문제를 소셜미디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가정 환경, 학교 경험, 개인적 성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섹션 230(Section 230) 문제다.
이 법은 플랫폼이 사용자 콘텐츠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한다.
인터넷 산업이 지금의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규정 때문이다.
셋째, 사용 시간 문제다.
구글은 KGM의 유튜브 시청 시간이 지난 5년 동안 하루 평균 약 30분 수준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 사용량이라면 중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반론도 있다.
저커버그의 말이다.
“서비스가 유용하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이 말은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유용함과 중독은 어디서 구분되는가.
KGM 사건은 단순한 개인 소송이 아니다.
이 재판은 미국 전역에서 제기된 1,600건 이상의 유사 소송 가운데 첫 번째 벨웨더(bellwether) 재판이다.
벨웨더 재판은 일종의 시험 사건이다.
이 사건의 결과가 나머지 소송들의 합의 기준과 전략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플랫폼 기업이 승소한다면 현재의 인터넷 질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추천 알고리즘 같은 기능도 단순한 편의 기능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원고가 승소한다면 인터넷 산업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플랫폼은 더 이상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제품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알고리즘 설계 자체가 법적 위험이 된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또 하나의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AI 시대는 어떻게 될까.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이미 인간의 행동을 상당 부분 바꾸고 있다.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무엇을 믿는지 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제 등장한 것이 생성형 AI다.
AI는 단순히 콘텐츠를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 직접 대화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관계를 만든다.
AI 에이전트는
개인 비서가 되고
상담사가 되고
친구처럼 대화하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AI가 인간의 행동을 바꾸기 시작하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AI는 단순한 도구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사결정을 바꾸는 설계된 시스템인가.
나는 KGM 소송이 바로 그 질문의 첫 번째 시험대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이미 청소년의 삶에 깊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AI 시대가 시작되면 이 영향력은 훨씬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AI는 더 개인화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더 강한 몰입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며, 더 정교하게 인간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기술 산업은 인간의 뇌와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은 언제나 청소년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기업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알고리즘 설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리고 사회는 어디서부터 개입해야 하는가.
KGM 소송은 아직 하나의 재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시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이 인간의 행동을 바꾸기 시작할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AI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 질문은 더 이상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법과 정책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이 질문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다시 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