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나는 인터넷 음악방송을 시작했다

by 심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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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 나는 인터넷 음악방송을 시작했다
– 중년의 불씨, 디지털 세상에 불을 붙이다

본문:

2000년 8월 5일, 나는 생애 첫 인터넷 음악방송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마흔아홉. 사람들이 흔히 “이제 인생 마무리할 때”라고 말하는 나이였다.

하지만 내 안엔 ‘뭔가 해보고 싶은’ 청춘의 불씨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
그 불씨는 **‘인터넷 음악방송’**이라는 신세계와 만나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중년 남성이 컴퓨터 앞에 앉아 방송을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나이에 뭐 하려고 그러냐.”
“인터넷 방송은 이상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다.”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말들이 나를 더 움직이게 했다.

나는 **‘4050 음악세상’**이라는 인터넷 방송 채널을 만들었다.
그 이름에는 단순한 나이의 구분 이상으로,
중년의 고단한 삶에 음악으로 숨통을 틔워주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었다.

그때의 40대, 50대는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는 늙고,
자기 인생은 어느새 낡은 서랍처럼 느껴지는 시기였다.

내 방송은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
욕설과 반말이 난무하던 인터넷 방송 속에서,
나는 끝까지 ‘존댓말 방송’을 고집했다.

사연이 담긴 음악을 틀고,
그 사연을 정중하게 읽어주는 내 방송에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청취자가 이렇게 사연을 보내왔다.


“인생님, 라디오처럼 따뜻한 방송, 오랜만입니다.
저는 매일 밤 당신 방송을 들으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그 한 마디에 나는 확신했다.
‘아, 내 방송은 누군가의 하루 끝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전기장판 같은 존재일 수 있겠구나.’

나는 “대화명 바꾸지 않기 운동”도 벌였다.
당시는 누구나 익명으로 쉽게 이름을 바꿀 수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며 호소했다.


“당신의 이름을 10년간 지켜보겠습니다.
익명 속에도 우정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다짐 하나로, 우리는 익명의 공간에서도
서로를 믿고, 기다리고, 응원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100일 방송 기념으로
나는 방송 장비를 싸들고 임진각으로 향했다.

그날의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휠체어를 탄 효조 양이 웃고,
청취자들이 서로를 껴안고,
“화면 속 그 사람”이 현실 속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날,
우리에겐 방송을 넘어선 ‘사람’이 있었다.

그 따뜻한 온기.
지금도 나를 움직이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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