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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시 Feb 15. 2019

달에서 온 나무

음식 동화 13 :: 귤

구슬만 한 초록빛 아기 귤이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저는 더 넒은 곳을 구경해 보고 싶어요."


그러자 엄마가 답했어요.


"아직 너는 너무 어려. 그 전까진 나와 함께 있자꾸나."


소년이 되어 탁구공만 해진 귤이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저는 더 넓은 곳으로 가보고 싶어요."


그러자 엄마가 말했어요.


"너는 여전히 어려. 나와 함께 좀더 있자꾸나."


청년이 되어 주먹만해 진 귤이 엄마에게 말했어요.


"어머니, 저는 더 넓은 세상을 모험해 보고 싶어요."


그러자 엄마가 싱긋 웃었어요.


"이제는 때가 되었구나. 하지만 명심하거라, 나를 떠나면 너는 다시는 이곳으로 와서도, 올 수도 없다는 것을."


청년이 된 귤이 '아!'라고 후회를 터뜨리기도 전에 엄마는 자식의 손을 놓았어요. 상자에 담긴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귤을 향해 엄마 귤이 외쳤어요.


"혹시 내가 보고 싶거든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 보렴. 내가 먼저 고향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청년이 된 귤은 다른 귤들과 함께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자동차도 타 보았고 비행기도 타 보았지요. 처음에는 까칠했을, 하지만 이제는 부드럽게 낡아버린 목장갑에게도 몸도 맡겨보고요. 그러는 사이 조금은 파란 기운이 남아 있던 귤의 볼은 점점 노랗게 익어갔지요. 시큼하고 살짝 떨떠름하기까지 했던 맛도 달콤하게 바뀌어 갔고요. 많은 것들을 구경하고 경험했지만, 귤은 때때로 엄마가 그리웠어요. 하지만 엄마가 말했던 밤하늘의 '달'이란 것은 좀처럼 볼 수 없었죠.


이윽고 귤은 어떤 집에 도착했어요. 상자는 더이상 옮겨지지 않았고, 귤도 다른 귤처럼 사람의 손에 들려 입에 들어갔지요. 당신이 조금 전에 먹은 귤이 바로 그 귤이에요. 엄마를 그리워했던 그 귤이요. 혹시 그 귤 생각이 나신다면 오늘 밤 하늘을 바라보시겠어요? 당신의 핏속에 녹아 흐르고 있는 노란 귤이 당신의 눈을 빌려서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게요. 노오란 당신의 엄마도 추억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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