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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시간이 남겨진 자리

by 겨울꽃 김선혜
오타루, photo by Seonhye


오타루라는 이름의 유래는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언어에서 비롯된 '오타 오르나이(모래사장 가운데의 하천)라는 표현에서 시작되는데, 오타루시와 삿포로시 경계에 흐르는 호시오키강 하류, 오타루우치강을 가리키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타루나이'가 '오타루'로 변형되면서 지금의 '오타루'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항구도시이면서 운하를 끼고 있는 오타루는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오타루를 만났던 날은 약간의 먹구름, 약간의 비, 약간의 해가 함께 했었던 날이었다. 날이 좋은 날도 좋지만, 날이 좋지 않은 날도 좋았었던 낭만의 도시 오타루는 인상적이었다. 구름 낀 하늘이 오타루의 거리와 운하를 더 운치 있게 연출해 주었기 때문이다.




삿포로에서 JR을 타고 미나미 오타루역으로 향했다. 지상으로 연결된 레일 위로 목적지를 향해 가던 길에 드넓은 바다가 우리를 맞이했고, 창밖으로 보았던 그 광경은 잠깐의 힐링타임이 되었다.


미나미 오타루역에 도착해서 관광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15분마다 울린다는 시계탑을 시작으로 메리헨 교차로, 오르골당, 길 건너 르타오 치즈케이크 카페, 사카이마치도리, 공예점, 어묵공장, 오타루 운하, 철길, 음식점, 미술관등으로 이루어진 그곳은 근대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오타루는 한때는 하코다테에 이은 제2의 도시였다. 바다 가까이에 탄광이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장점 때문에 홋카이도 개척의 시작점이 되었지만 오타루항을 통한 무역이 줄어들고 광산이 사라지면서 경제력을 상실했고 삿포로 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삿포로의 위성도시가 되었으며 지금의 관광지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번성했던 시기의 근대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오타루의 거리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의거리를 거닐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오타루는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90년대 모 CF에서 들리던 '오겐키데스카(잘 지내시나요)'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대사이기도 하다. 피렌체에서 촬영된 '냉정과 열정 사이', 오타루에서 촬영된 '러브레터' 두 영화 모두 '건축물과 거리의 낭만이 있어서 더 돋보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타루 운하, photo by Seonhye



오타루 여행에서 빠지는 않는 것 중 하나는 '오르골당'이다. 수많은 오르골들이 전시되고 판매되고 있었는데,

층을 이룬 대형 오르골당 안에는 오르골이 만들어진 역사를 시대별로 알려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대형 오르골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르골은 18세기 스위스 제네바 시계 장인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세기 초반부터 상자에 넣어 음악을 감상하는 오르골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스위스의 중요한 산업이 되었지만, 19세기 후반, 독일의 디스크 뮤직박스의 발명과 20세가 초반, 에디슨 축음기가 발명되면서 오르골 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일본에서 작고 예쁜 오르골들이 만들어지면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오르골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오타루 오르골당, photo by Seonhye

(오르골당의 한편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기자기함을 더해 주었다.)




오타루의 분위기 역시 차분하게 느껴졌다. 관광지였지만 부산하지 않았고 상점에서 우리를 맞았던 점원들도 상냥하고 차분했다.


약간의 비와 구름이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었을까...

아니면 그 지역이 담고 있는 전통이 그렇게 느끼게 해 주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걸었던 그 길과 건물, 운하, 철길 모두 독특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 녹던 작고 부드러웠던 치즈케이크, 작았지만 정교했고 예쁘기까지 한 오르골, 유리공예품, 모두 그들이 가꾸고 지켜가는 것들이었으며 장인 정신이 담겨있는 것들이 아니던가!

오르골당에서 잔잔하게 들리던 음악소리와 함께 그곳에서 보냈던 가을날 하루를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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