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일까, 요즘 계속해서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때도 있고 아니라고 할 때도 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이게 불안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나.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시들시들한 관계로 들어섰다. 습관적으로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싸웠다.
오랜만에 만나 야외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풍경이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정원을 예쁘게 만들어 놓은 카페는 조용하니 좋았다. 나는 카푸치노를 마시고, 그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우리는 둘 다 말이 없었다. 나는 정원에 있는 꽃들과 나무들을 보았다. 작고 오밀조밀한 꽃잎을 가진 꽃들이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진 듯 예뻤다. 정원을 가득 채운 신선한 공기와 꽃들을 바라보는 멍한 순간들이 좋았다. 그런데 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냥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더니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약간 시비조였다. 왠 관심 타령이냐고 했더니 벌컥 화를 냈다. ‘관심 타령’이라는 말이 기분 나쁘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연신 씩씩대더니 그만 가자고 했다. 커피를 다 마시지 않았는데……. 조금 더 있다 가자는 내 의견을 묵살하고, 그는 혼자 쌩하니 가 버렸다.
그 길로, 그의 연락은 없었다. 미안하다는 전화나 그만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 없었다. 나도 구태여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구차하다는 생각이었다. 마음에 큰 동요가 없는 나를 발견하고, 나 스스로 놀랐다.
그렇게 서른 살의 내 연애는 끝났다. 예고 없이, 끝내자는 말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
이별의 상처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내 몸의 변화. 예고되어 있었던 생리가 나오지 않았다. 살짝 불안했다. 몸이 피곤하다든지 과한 스트레스가 생기면 가끔 늦어지는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리라 여기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애써 가라앉히며 나를 다독였다. 괜찮을거야. 그럼, 아무 일도 없을거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도 생리는 나올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이주일을 넘기면서 초조해졌다. 일반 약을 사는 듯이 태연을 가장하고 약국에서 테스트기를 샀다, …… 임신이었다. 아닐 거야. 이건 고장 난 것이 분명해. 부정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실낱같은 희망을 끌어안고 병원에 갔다. 뭐라고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접수대에서 간호사가 어떤 일로 왔냐고 물었다. 생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지난달 날짜를 확인하였다. 소변 검사를 했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더니 임신 3주라고 했다.
”축하합니다. 초기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축하한다는 의사의 말. 기분이 이상했다. 임신이 아니길 바라고 왔는데 축하한단다. 어째야 하나. 그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이미 헤어진 마당인데 임신 소식을 알린다고 반가워할까. 사랑은 끝났다. 나에게 그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뱃속의 물질은 무엇일까. 생명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임신을 알리면 누가 반길까. 과연 좋게 말할 사람이 있기는 할까. 나조차 혼란스럽고 어지러운데 누가 원할까. 그때 나는 왜 그를 받아들였을까. 왜? 어쩌자고. 그는 이렇게 떠날 사람이면서……. 되돌아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를 만나기 전으로 가고 싶었다.
내게 닥친 현실은 냉혹했다.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지나갔고 뱃속의 그것은 자라고 있었다.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뭘 먹어도 토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약간의 어지러움이 생겼다. 제일 힘든 것은 냄새였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냄새가 있는 줄 처음 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옆집에서 나오는 된장찌개 냄새, 스치듯 지나가면서 맡게 되는 사람들의 냄새, 가게에서 나오는 빵 냄새, 시장통을 지나면 우리들의 코를 유혹하는 튀김 냄새들. 좋은 냄새도 있었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중에서 특히 담배 냄새는 도저히 맡을 수가 없었다. 100 미터 전방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나는 코를 막고 숨을 참았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장이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순간, 내 코와 입은 호흡을 멈추고 있어야 했다. 간신히 진정시키면 가라앉을 때도 있지만 심하게 울렁거리면 화장실에 달려가 속을 다 비워야 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나의 이런 행동에 어디가 아픈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아프지. 마음도 몸도 아프지. 속이 좋지 않다고 둘러댔다.
결국 나는 휴가를 신청했다. 1주일의 휴가. 쉬면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마음도 추슬러야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눈에는 임산부와 아기만 보였다. 생각보다 주변에는 임산부들이 많았다. 지하철에서, 시장 골목에서, 집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불룩 나와 있는 배를 자연스럽게 하고 다니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아장아장 걸어가는 꼬마들이 귀여웠다. 내 임신은 그녀들처럼 당당하게 밝힐 수 없다. 아이를 낳을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러지?
임신 6개월인 지은이를 만났다. 아직 배가 부르지 않아 임산부인지 표가 나지 않았다. 겨우 입덧이 끝났고, 살이 빠져 홀쭉한 모습이었다. 하늘거리는 연한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지은이는 사랑스러워 보였다. 주스를 마시면서 그녀는 임산부의 고통을 토로했다.
“이제 겨우 입덧이 끝나니까 살 것 같애. 먹고 싶은 것도 어느 정도 먹을 수 있어서 괜찮아지기는 한데…….”
“… 그런데?”
말을 하다가 멈추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내 의지로 먹는 게 아니라 애가 시키는 대로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그게……, 내가 애를 가진 게 아니라 애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 많이 먹어도 토하고 너무 적게 먹어도 토하고, 끼니때를 넘기면 안 되고, 조미료가 많이 든 것도 안 되고…, 이건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것만 같아. 애를 가지고 있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나는 그녀의 말을 반은 알아듣고 반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토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안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으니까.
“며칠 전 저녁에, 라면이 너무 먹고 싶은거야. 참다 참다 먹었어. 결국 5분 후에 다 토했지 뭐야. 토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 진땀이 나고 속 쓰리고 기운 빠지고. 아휴, 몸에 안 좋은 것은 다 토하고 말아.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 왜 그런지 모르겠어. 먹는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이상한 냄새도 아직은 불편해. 아, 넌 모를꺼다.”
지은이의 불평은 끝이 없었다. 모든 임산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은이는 입덧이 심하여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쉬는 중이었다. 입덧이 심했을 때는 병원에 입원하였고, 지금은 조금 진정이 된 상태였다. 입덧으로 힘들다는 지은이의 투정을 들으며, 내 상황과 비교하고 있었다. 비교가 아니라 지은이처럼 단순히 입덧으로 고민하고 싶은 희망이 더 맞는 말이겠다.
나는 지은이에게 내 사정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친하기는 하지만 내 문제를 해결해 줄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나 역시 임신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야 너 미친 거 아니야? 결혼도 안 하고 그것도 모자라 애인이 떠났는데 그러고 있다고? 빨리 병원 가야지 뭐하니? 너 자신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맡겠다고? 묻지 않아도 들리는 듯 했다.
맞는 말이었다. 다 옳은 얘기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휴가 동안에 병원에 가서 수술받아야 한다. 수술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몇 시간 아프고 일상적인 나로 돌아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그냥 순순히 수술해 줄까.
내 배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아이를 낳아야 할까? 배가 불러오면 회사를 어떻게 다니나? 내가 결혼하고 임신한 것이라면 주변에서 축하라도 하겠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가 불러오면 뭐라고 할까? 좋은 시선들이 내게 올 수 있을까. 나는 그걸 견디며 다닐 수 있는가. 낳기만 하면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 애를 나 혼자서 무슨 수로 키운단 말인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점을 보러 갔다. 철학관이 아니라 신이 내린 점쟁이였으면 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운명을 말해주며 해결책을 주길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미아동에 내리니 점집들이 한 줄로 쫙 늘어서 있었다. 대문마다 색색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어떤 곳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집이 지나치게 허름해도 별로고 멋들어지게 좋아도 그렇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오색찬란한 색깔 깃발을 가진 집을 선택했다.
작은 마당으로 들어서니 화분들이 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분에는 다육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화분들은 마당에서 집 안으로 이어졌다. 망설이다가 어떤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거실에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아주머니들이었다. 나는 약간 머쓱했다. 맨 끝에 얌전히 앉았다. 거실은 깔끔하여 여느 가정집과 다르지 않았다. 안쪽에 있는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왔다. 그들이 가고 조금 있으니 먼저 와 있던 아주머니들이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는 내게 커피 한 잔을 주었다.
기다리는 게 지겨워질 즈음, 내 차례가 되었다. 방 크기는 기본적인 안방의 크기보다 조금 작았다. 아마 방안 가득 메우고 있는 갖가지 물건들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탁자가 놓여 있고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사주를 물었다.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말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손에 든 대나무를 흔들었다. 중얼중얼 뭐라 말하면서 한참 흔들더니 갑자기 딱 멈추었다.
“올해는 영-안 좋은데…. 정신은 복잡하고 몸도 이곳저곳 아프겠는데…….”
그녀는 눈을 감고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남자 복이 없네. 없어. 그런데, … 올 중순에 귀인이 나타나네. 잘 잡아야 하는데…, 어쩌면 이 사람이 마지막일 수 있어.”
그녀는 방금 했던 태도와는 달리 조금 부드럽게 물었다.
“다른 궁금한 게 있어?”
나는 뭘 물어봐야 할지 머뭇거렸다. 그녀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제게 결혼 운이 있어요?”
그녀는 나를 한참 보더니 올해 나타나는 남자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내게는 남자 복이 없으니까 이번에 잡지 못하면 영영 혼자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서.
오만 원의 복채를 내고 나는 무엇을 해결했나. 나는 왜 점집에 갔을까. 어쩌면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복잡한 내 심경에 누군가 확신을 주기를 바라고 간 것은 아닐까. 사실 내가 점쟁이에게 묻고 싶은 것은 결혼이 아니라 아기를 낳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였다. 아니, 낳아서 길러야 할지, 병원 가서 수술해야 할지 결정해 주길 바랬다. 혼란스러운 내 고민을 단칼에 잘라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사촌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훈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잠시 자기와 교대를 좀 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어제 오후에 폐렴 증상이 있어서 입원을 했는데, 열이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걱정이었다. 사촌오빠는 작년에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운다. 큰어머님이 자주 오빠 집에 들러서 애를 봐주신다.
“큰엄마는 어디 가셨어?”
“며칠 전부터 몸살로 병원에 계셨다가 지금 집에서 쉬고 있어. 아직 지훈이 얘기는 못 꺼냈어. 집에 가서 옷 좀 갈아입고 갈테니까 몇 시간만 좀 봐주라.”
후줄근해진 오빠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지훈이는 자고 있었다. 5인실의 병동엔 모두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있었다. 열 때문인지 얼굴이 전체적으로 빨갛게 익기 전 단계의 사과처럼 보였다. 지훈이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귀여움과 애잔함이 느껴졌다. 자고 있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랑스러움의 향기가 솔솔 나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지훈이 곁에 앉아 있으니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냄새로 인해 속이 울렁거렸다. 지훈이가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먹은 게 다 나왔다. 입을 헹구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미칠 노릇이었다. 병실에 다시 들어가니 식판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었구나.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었다. 음식 냄새로 숨을 최대한 참으며 식판을 받아서 옆에 있는 테이블에 두었다. 깨워서 먹여야 하나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줌마가 내게 말했다. 애를 깨워서 먹이세요. 그 말에 나는 지훈이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처음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속 깨우자 지훈이는 잔뜩 인상을 쓰면서 눈을 떴다.
“고모? ……아빠는?”
나는 참았던 숨을 겨우 뱉으며,
“잠시 화장실 갔어. …… 우리 지훈이 많이 아파? ……맘마 왔는데 …… 먹을까?”
나는 싫다는 말이 나올까 조바심을 내면서 말했다. 지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으켜 안아서 물을 먹이고 밥을 떠먹였다. 여섯 살이라 혼자 먹을 수 있지만 왠지 떠 먹여줘야 할 것 같았다. 지훈이는 절반 정도 먹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잘했다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식판을 치웠다.
“고모, 근데…… 아빠는 왜 안 와?”
나는 웃으면서 지훈이 귀에 살짝 말했다.
“있잖아. 응아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나봐. 풋-”
내 웃음에 지훈이도 따라 웃었다. 울고 보채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머리에 손을 얹어 보니 약간의 열이 느껴졌다. 먹성이 좋은 지훈이가 밥을 절반밖에 먹지 않는 걸 보니 열 때문인 것 같았다. 밥을 먹이고 나니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오빠가 병실로 들어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렇다 치고 월요일부터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며칠 정도 간병인을 쓸 것이라고 했다. 나는 또 들리겠다고 하며 병원을 나섰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오빠를 보니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중절 수술을 검색하고 후기를 살피고 비용을 찾아보았다. 나는 미성년자가 아니기에 혼자 병원에 갈 수 있었고 수술도 가능하다고 나왔다. 다만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필요한 항목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다. 사는 게 힘들었다. 고민 없이 편하게 살고 싶다.
출근하니 다들 살 빠진 나를 보며 부러워했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이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어도 괜찮을까. 아직 시간은 있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한참 일하고 있는데 사무실 동료가 음료 주문받는다며 메모창을 올렸다.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동료는 내 주문을 보고 맞는지 물었다.
“아니, 커피광이 뭔일이래.”
“이제부터 줄여 보려고.”
“잉? 가능할까?”
웃자고 하는 물음에 벌컥 화를 낼뻔했다. 숨을 쉬면서 겨우 참았다. 내가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널 뛰는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썼다. 퇴근하면서 한잔 하자는 직원들과 헤어져 집으로 왔다. 지하철을 나오자 온갖 냄새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시장 골목길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뀌었다.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쉬면서 빠르게 걸었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할까.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 병원에 가자. 수술하고 사람답게 살자. 원래 내 삶으로 돌아가자. 그게 나를 위한 최선이야.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사촌오빠가 저녁을 산다고 하여 나갔다. 그 자리에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있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은 후 한 사람은 가고 사촌오빠와 동료 두 사람과 함께 호프집으로 갔다. 오빠의 동료들은 돌싱(돌아온 싱글)이었다. 오빠를 포함한 한 사람은 아이가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이가 없었다. 이혼한 이유들은 다 달랐다.
재수라는 사람은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이혼했단다. 아이야 늦게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 자신은 아이를 원하는데 아내가 원하지 않았단다. 나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아이가 그리 중요한 문제였냐고? 그 사람은 말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서로 자신의 상황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준비가 안 된 거죠. 저도, 그 사람도 이기적인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술을 한 잔 마시더니,
“야, 아이 없이 이혼한 게 그래도 훨 나아. 나나 혁이 봐라. 애 키우랴, 일하랴. 이게 온전히 사는 거냐. 죽을 맛이지”
모두 그 말에 공감하듯 잔을 부딪쳤다. 마시고 싶은 맥주는 마시지 못하고 음료수만 마시니, 사촌 오빠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내 주량을 알고 있으니까. 몸이 좋지 않아 오늘은 참는다고만 했다.
보통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에 대한 험담만 쏟아내기 바쁜데 그렇게 하지 않는 그 사람이 괜찮아 보였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내가 먼저 전화 해서 만났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호감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은근히 잘 맞았다. 좋아하는 음식도 비슷했고 영화 취향도 비슷했다.
그렇게 서로를 안 지 한 달이 다 되어갈 즈음, 그가 내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살아보는 건 어때요?”
“네? 같이 살아보자고? 동거?”
나는 그의 의향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물었다.
“저랑 자고 싶다는 말이에요?”
그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그 말이 아니고. … 함께 살아보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안한 말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이미 결혼이라는 걸 해 봤고, 실패도 했잖아요. 진서씨를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또 실패할까 두렵기도 하고, 연애만 하는 것과 생활을 공유하는 건 다른 것 같아요. ……그 사람하고 연애할 때는 아무 문제 없었거든요. 결혼을 하니, 이것저것 부딪치는 문제들이 튀어 나오더라구요.”
살아보자는 그의 말에 바로 좋다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전에 내 상황을 고백해야 했으니까.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제가 너무 앞서간 건가요?”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물을 마셨다.
“저도 재수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모로 잘 맞고, 만나면 기분이 좋아요. 재수씨의 제안, 받아들이고 싶지만 지금 제 처지를 먼저 말할께요.”
그 사람은 뭐든 말해 보라는 자세를 취했다. 말을 해야 하나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지만 … 숨길 수는 없는 일이니…….
나는 예전의 남자친구 얘기를 하면서 지금 임신 중임을 밝혔다. 그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왜 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어요?”
“……그 사람과의 관계는 이미 끝났어요. ……헤어지고 나서 임신인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건 제 몫이에요. 병원에 갈까 말까 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저는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
그 사람은 대답 대신 차를 마셨다. 동거를 제안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겠지. 그러나 그의 얼굴에 놀람은 있었지만 나를 비난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몇 주가 되었는지 물었다. 8주를 넘기고 있었다. 병원에 갈 수 있는 날이 임박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예전처럼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는 않았다.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어쩌면 그가 나를 받아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를 원할까.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편하자고 바라는 이기심임을 안다.
내가 만약 미스코리아 뺨치게 예쁘고 늘씬했다면 가능할까. 돈이 아주 많다면 가능할까.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 할 남자가 과연 있기는 하나. 나는 왜 내 문제를 남자들의 아량이나 이해심으로 치부하면서 남자들의 문제로 만들려고 하지. 나에 대한 합리화이다. 내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돌려서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임신 9주차가 되면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구토가 줄어들고 냄새가 그리 역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뭔 일이지? 혹시 사라졌나? 그게 말이 되니. 뱃속에 있는 게 어떻게 사라지니. 네가 간절히 원하면 사라질 수 있는 거야? 바보 같은 질문이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커피 양을 줄이고 술을 마시지 않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말에 진료하는 병원을 찾았다. 망설이다가 수술에 대해 물었다. 의사는 임신주기를 확인하고 초음파로 상태를 점검했다. 검사를 마치고 마주한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착상이 안전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산모분의 경우, 사실 임신이 어려울 수 있는 케이스에 속해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의사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임신이 처음이시죠?”
“……예.”
의사는 한참 뜸을 들였다. 나는 의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산모분의 경우, 나팔관 하나가 막혀 있어요. 나팔관 유착이라고도 하는데, 근위부 막힘과 원위부 막힘이 있어요. 쉽게 말해서 근위부는 한쪽이 막힌 것이고, 원위부는 둘 다 막힌 경우에요. 산모분의 경우 근위부 막힘이에요. 원위부 막힘보다 낫기는 하지만 자연 임신이 쉽지 않아요.”
의사는 여기까지 말하고 내 표정을 살폈다. 이게 뭐지? 수술 여부를 위해 왔는데 임신이 어려운 몸이라고 하네. 나는 어떨떨 하여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산모분이 수술을 하면 ……앞으로 임신이 어려울 수 있어요. ……무슨 말이지 이해하시죠?”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수술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 수술과 상관없이 영원히 아이 없이 살 수 있는지를 물어야 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먼저 수술을 했다고 치자,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할 수 있지만 아이는 가질 수 없다. 미래의 남편은 흥쾌히 괜찮다고 할까. 나는 괜찮을까. 과연 가능할까. 요즘 합의하에 아이 없이 사는 부부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선택을 한 것이다. 아이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낳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을 영위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가정하면,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아무 일 없이 비밀을 유지하며 다닐 수 있을까. 아이를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데 그게 누구일까. 나의 부모님은 아이 낳는 걸 찬성할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지 않을까. 주변의 시선은? 나는 그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나중에 아이가 왜 자신을 낳았느냐고 하면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가정해도 행복한 결말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건 내 선택이지만 그 책임감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갔다.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냈다. 아버지는 운동하러 간다고 나갔다.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물었다.
“엄마, 나 낳고 키우는 거 힘들지 않았어?”
엄마는 뭔가 생각하는 듯 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처음엔 힘들었지. 그러나 네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고 좋았어. 꼬물꼬물한 게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그래? ……내가 만약 애를 낳으면 어떨까?”
“뭐가 어때야. 당연히 예쁘겠지. ……결혼하게?”
“어? ……아니.”
“그럼 뭔 얘기야?”
“말 그대로 내가 애기를 낳으면 어떨까 물어 보는거야.”
“알기 쉽게 말해. 당최 뭔 소리인지…….”
당황하듯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여기서 멈추어야 할까, 아니면 …….
“며칠 전에 병원에 갔는데 내 나팔관 한쪽이 막혀서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네.”
“난 또 뭐라고. ……어려울 수 있다는 거지, 안 된다는 건 아니잖아. 다른 병원에 가면 또 말이 달라질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 너는 아직 결혼도 안 했잖아. 뭐 하러 미리부터 임신을 걱정해.”
엄마는 아무 일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
“엄마, 사실 ……지금 임신 중이야. ……수술하려고 했더니 …그러면 영영 못 가질 수도 있다고 해서 어쩔까 고민이야. ……어떻게 할까?”
엄마는 내 말에 먹던 과일을 바닥에 떨구었다. 포크도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엄마의 눈이 커지면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잠시 보다가 시선을 거실 창으로 돌려 베란다 너머를 보았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서로 말없이 한참을 있었다. 엄마가 힘겹게 말을 했다.
“사실이야?”
엄마는 재차 묻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속이 상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도 울었다. 내가 지금 뭔 일을 하려는지 실감이 났다. 내가 지금 처한 현실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였다. 내가 해야 하는 선택지가 지옥의 나락으로 가는 질이었다.
나와 엄마는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다. 우리의 울음이 끝나면 다른 현실이 존재할까. 세상이 우리의 울음으로 바뀔 수 있을까. 내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내 선택이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왜 지금 울 수밖에 없을까. 물음표가 아닌 진한 느낌표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