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재선 Feb 10. 2016

더러운 정치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헬조선은 저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ㄱ. 우리는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에 대한 이야기죠. 정치하지 않는 우리들, 즉 대중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정치'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마 이 한 문장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사람은 정말 정치적이야.

 이 문장을 들었을 때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도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많을 겁니다. 정치라는 단어의 뜻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 자체로는 선과 악, 긍정과 부정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죠. 하지만 '정치적이다'라는 표현은 대개 계산적이라거나, 인간관계를 악용한다거나, 속을 알 수 없다는 등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ㄴ. 똥물은 스스로 맑아지려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중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분히 냉소적입니다. 이유야 당연하겠죠. '제대로 된 정치인을 본 기억이 없으니까.' 분명 원인은 저들(저는 지금 정치하지 않는 대중들에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을 '저들'이라고 칭하겠습니다.)에게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원인을 제거하는 역할은 대중이 해야 하죠.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대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자정작용'과 똑같은 겁니다. 똥물은 스스로 맑아지려 하지 않습니다. 똥물이 깨끗하게 흐르는 물을 만났을 때 어쩔 수 없이 자정 될 뿐이죠. 더러운 정치는 저들이 하지만, 그걸 다시 맑게 할 수 있는 건 똥물 밖에서 노는 우리들 뿐입니다.


ㄷ. 냉소주의 vs 회의주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정치'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이러한 자정작용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양적으로 소수일 뿐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이 훨씬 더 '상식적'이어 보이는데 왜 자정이 안 되는 걸까요? 저는 그 원인을 '냉소주의'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회의주의'를 제시하고 싶네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저널리스트라는 새뮤얼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에서 냉소주의와 회의주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냉소주의적 심리 : 흑백논리에 기반하여 색안경을 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회의주의적 시선 :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냉소주의와 회의주의 모두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깝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논리에서의 '위치'. 회의주의적 시선은 논리의 '시작'에 위치해 있습니다. 생각의 시작점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고 들어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옳다고 여기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심을 품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때때로 인류의 발전에 티핑 포인트를 만들어 내기도 했죠. 기존의 관습이 절대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시작하니까요.

 반면 냉소주의적 심리는 생각의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A는 나쁘고 B는 착해'와 같이,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이미 결론적인 색안경을 낀 채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니까요. 평소 아니꼽던 친구가 갑자기 선행을 한다면, 그 선행마저도 '뭔가 가식적인 의도가 있는 걸 거야'라며 의심하곤 합니다. 새로운 해석을 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죠. 때문에 회의주의에서의 '의심'과 냉소주의에서의 '의심'은 굉장히 다릅니다. 회의주의에서의 의심이 새로운 결말을 열어두는 '시작의 의심'이라면, 냉소주의에서는  마음속으로 결말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하는 '결론적 의심'이니까요.


ㄹ. 그렇다면 정치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 같아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정치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냉소적이냐, 회의적이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애초에 정치라는 단어 자체에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부' 정치권에서 아주 더러운 모습을 목격하게 되죠.(정치권에서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을 굳이 서술하지는 않겠습니다.) 바로 그 '일부'의 모습을 우리가 냉소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냉소주의적인 심리는 흑백논리에 기반하여 색안경을 끼게 만듭니다. 그리고 생각의 '끝'에 해당하죠. 그래서 냉소주의자들은 더러운 정치의 일면을 바라보고 정치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정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정치권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정치권으로 들어갈 때, '결국 저 사람도 정치로 가는구먼'하면서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인식이 대세가 될 경우,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이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가 정치인이 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됨을 의미하는 거니까요. 때문에 정치권에 깨끗한 물이 새로 유입되기 힘들어지고,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똥물은 스스로 깨끗해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정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깨끗한 물이랑 계속해서 섞이는  것뿐인데 말이죠. 이렇게 더러운 정치를 냉소적으로만 바라보면, 정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ㅁ. 회의주의적 시선이 변화를 만든다.

 반대로 더러운 정치를 회의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회의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색안경을 끼는 것과는 다릅니다. 잘못된 행위가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비판과 의심을 품고 바라보는 것이죠. 그래서 어디까지나 더러운 정치는 '일부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위' 혹은 '잘못 가고 있는  정치'일뿐입니다. 정치 자체를 나쁘게 바라보기 보다는, 잘못된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겁니다. 냉소주의와 달리, 개선의 여지와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가 남아 있는 거죠. 때문에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ㅂ. 헬조선은 냉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는 정치권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더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헬조선'이라는 단어죠.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보면, 대부분 변화에 대한 의지보다는 결과론적인 비난만이 담겨 있습니다.

'헬조선에서는 어쩔 수 없어'
'헬조선을 빨리 벗어나야 해'

 처음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반발로 이 단어가 생긴 것 같았지만, 이는 대한민국 전체에 암울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깔아버렸습니다. 이런 패배주의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지면 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굴까요? 안타깝게도 이 말을 낳게 했던 '저들'일 것입니다. 정치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 인식은 정치 혐오를 낳고, 정치 혐오는 정치에 대한 관심 저하를 낳으니까요. 냉소는 절대 변화를 불러오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죠.


ㅅ. 더러운 정치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회의주의니, 냉소주의니 말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흑백논리로 정치를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더러운 정치'는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 정치 자체가 더러운 것임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변화의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죠.

 둘째는 자조적인 비난이 아니라, 발전적인 비판을 하자는 겁니다. 제 기준에서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자조적인 비난에 불과합니다. 이 단어를 씀으로써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 뿐, 저들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언급하지만, 똥물은 스스로 맑아지려 하지 않으니까요. 저들을 바꾸려면 발전적인 비판을 해야 합니다. 비난은 결론이지만, 비판은 시작입니다.

 우리가 바뀌어야 저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렵겠지만 정치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버려야 합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권에 입문하는 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순수한 의미의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똥물은 비로소 정화됩니다. 그 시작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자면,

똥물은 절대 스스로 맑아지려 하지 않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주의자가 실용주의자에게 배워야 하는 것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