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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선 Jan 24. 2016

진짜 진보를 위한 미디어는 불가능한가.

이상적이라는 것은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사항 : 제가 가진 지식은 굉장히 얕고 좁습니다. 하지만 제가 쓰는 글들은 강한 주장으로 끝날 겁니다. 그러니까 제 주장을 믿지는 마세요.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틀리기 위해서 쓰는 거거든요. 틀리는 것이 두려워 입 닫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아 보였습니다.    ''  .


ㄱ.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란?

 민주주의 사회란, 경제 원칙이 아니라 정치체제의 한 종류를 말하는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존중하느냐, 정부의 개입을 존중하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책 지대넓얕에서 정의하는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정치 방식'이다. 하지만 인구가 5천만을 넘기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다수의 회의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우리는 투표를 하는 것이다. 즉, 투표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렇다면 그 선택은 어디에 기반할까? 이는 경제 원칙에 의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위에서 언급했던 '시장의 자유'냐, '정부의 개입'이냐다. 시장의 자유를 존중하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이 부를 창출하면서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노동 착취, 경제적 격차 심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성장 중심 정책인 것이다. 반대로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면 누진세를 적용해 경제적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된다. 하지만 기업들의 성장 동기가 낮아지고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분배 중심 정책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에게 유리한 '성장정책'을 옹호할 것이며, 진보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분배 정책'을 옹호할 것이다. 사회는 이 두가지 관점이 동등하게  존재해야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ㄴ. 그런데 왜 사회는 보수에 머무는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경제 원책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층은 필연적으로 소수일 수 밖에 없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고용하는 사람이 고용되는 사람보다 수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인 1표제로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수보다는 진보의 표심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이론에 불과하다. 왜냐, 우리 사회에는 '미디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이슈 모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디어가 정말 '팩트'만 전달할까?

 미디어도 하나의 기업이다. 기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익모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디어의 수익모델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기업의 광고'다. 여기서 대기업 운영의 결정권자들은 사회 최상류층이다. 상류층은 기본적으로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성장 중심 정책'을 원한다. 그런데 만약 미디어가 진보적 입장에 유리한 기사를 쓴다면? 당연히 대기업들은 그 미디어에 광고를 끊을 것이다. 때문에 미디어는 '생존을 위해서' 보수의 입장을 전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때 보수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해서 대놓고 보수의 입장을 전달한다거나, 팩트를 왜곡한다는 것은 아니다. 말이라는 것은 똑같은 정보를 전달한다고 해도, 그 상황과 어투, 표정 등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횡포를 신문 1면에 배치하느냐, 뒷 장에 배치하느냐 / 사회 문제가 터졌을 때 스포츠나 연예 기사를 크게 다루느냐 작게 다루느냐 / 세금을 올렸을 때의 장점을 강조하느냐, 단점을 강조하느냐 등에 따라서 팩트를 전달하면서도 얼마든지 한쪽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

 실제로 비교적 진보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겨레나 경향도 앞서 언급한 '진짜 진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 물론 이 견해에는 논쟁의 소지가 많겠지만, 비교적 진보와 보수의 양측 의견이 대등하게 경쟁하는 일부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언론은 크게 봤을 때 보수로 편향되어 있다. 설사 한겨레나 경향이 진짜 진보라고 하더라도, 수익성에서 보수 언론사들을 이길 수 없기에 그 목소리 역시 작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미디어의 역할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보가 언제나 승리할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에서는 진보가 꿋꿋이 기득권을 지키는 모양새로 흘러가게 된다.


ㄷ. 그렇다면 진짜 진보를 위한 미디어란 불가능한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면 민주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다수가 원하는 정책이 실행되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 해결책은 대기업의 돈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생존에 있어서 상류층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진짜 진보' 언론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오늘날 까지의 언론사 수익모델은 '대기업 광고 수주'였다. 과연 진짜진보 언론은 불가능한 이상인 것일까?

 그래, 불가능은 없다라는 고전적 명언을 믿고 한번 그 가능성을 찾아나가 보자. 이 문제의 핵심 요소는 두가지다. 하나는 미디어의 수익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파급력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수익모델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정말 '생존'만을 위한 수익모델만 있다면 더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보수 언론사들에게 파급력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점이 수익모델과 파급력이라면, 해결책도 수익모델과 파급력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최소한의 자본으로도 생계유지가 가능하며, 파급력은 규모와 상관없이 강력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대기업의 영향력으로 부터 독립적인 '진짜 보수 언론'이 가능할 것이다.


ㄹ. 모바일 혁명이 그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내가 제시한 '이상적' 해결책은 쉽게 말하면, 최소비용에 최대 파급력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바로 요즘 언론사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모바일 혁명'이다.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폰, O2O, 공유 경제 등 모바일 혁신은 전세계적으로 '스타트업 유니콘'들을 탄생시켰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의 발전과 사업 환경의 변화로 자본이 많지 않은 스타트업들도 얼마든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으며, 그 서비스가 기존의 대기업만큼 많은 자본을 쏟지 않아도 모바일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내가 제시한 '이상적' 해결책 중 파급력에 대한 부분은 비교적 해소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많은 언론사들도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유통 방식에 대해 고민이 큰 듯하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았다. 바로 최소한의 수익모델이다. 대기업의 광고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독립적 수익모델 말이다.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를 적어 보겠다. 개소리일 수도 있다.

    1. 구독료
    2. 출판
    3. 자체 브랜드를 활용한 부가 상품 판매

 자, 여기서 일단 2번은 이미 많은 언론사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글' 관련 사업 중, 그나마 컨텐츠 판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번은 어떠한가. 1번은 수많은 언론사들이 시도했으나 실패를 거듭한 모델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짜 진보 언론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수많은 서민들과 최소 수혜자 계층이 '깨닫는다면' 기꺼이 일정 수준의 금액을 지불할 것이다.(물론 이상적인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자체 브랜드를 활용한 부가 상품 판매다. 언론사가 딱딱한 모습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브랜드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수익화가 가능한 사업 중,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캐릭터 시장이다. 언론사가 무슨 캐릭터냐 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미디어 중 컨텐츠 면에 있어서 가장 모바일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웃스탠딩은 이미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딱딱하고 똑똑해 보이게 전달해야만 미디어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캐릭터와 문체로 증명하고 있다. 캐릭터 외에 이미지를 활용한 제품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자신들의 로고를 달고 가방이나 옷을 판매하는데 그 판매량이 세계적으로 어마어마 하다. 물론 이들은 지금 이야기하는 뉴스 전달형 미디어라기 보다는 특정 타겟을 목표로 한 잡지에 가깝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ㅁ. 이상적인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좇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는 수많은 전문가 분들이 보기에 이상적인 '개소리'로 보일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사도 브랜드를 만들 수 있으며 전략을 잘 취한다면 구독료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독일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광고 없는 미디어가 출범하기도 했다. 이런 이상적 해결책의 실마리는 결국 '컨텐츠'의 질이다. 질 낮은 컨텐츠에 구독료를 지불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언론사의 브랜드화라는 것도 본질인 컨텐츠가 안 좋다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인간은 언제나 이상을 좇으며 발전해 왔다. 이상적인 이야기를 개소리로만 치부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결국 우리는 제 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왕이 한 말을 전달하려 몇날 며칠을 달려야만 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의 언론사들이 하고 있는 역할도 인간의 이상적 상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짜 진보' 언론사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그러한 이상을 우리는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을 향해 가는 길목에는 신기술을 활용한 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컨텐츠의 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불가능 하니 하지말아야 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아름다우니까 좇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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