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감상을 나눌 때면 취향을 들키는 재미가 생긴다.
함께 전시회를 감상한 뒤 엽서를 고를 때 내 곁에 서 있던 지인은 나지막이 말했다. '역시,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구나.' 별 생각없이 기억에 남는 작가들의 그림을 툭툭 고르던 나는 그 목소리에 가만히 미소지었다. 눈에 들어온 작품들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나 역시 안다. 굳이 말로 하면 애매해져버리는 감각. 그저 내 마음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때로 속내를 들킨듯한 기분은 약간의 부끄러움을 낳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조용한 지인의 목소리에서, 내 취향과 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 까닭이다.
종종 한 친구와 영화를 본다. 취향의 교집합 안에서 영화를 고른 뒤 상영시간에 맞춰 만난다. 영화를 볼 때 주로 커피 한 잔만 들고 들어가는 나와 달리 친구는 팝콘을 꼭 챙기는 편이다. 한 번은 친구가 '영화 볼 때 원래 잘 안 먹어?' 하고 새삼스레 물은 적이 있다.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오래 전에는 필수 준비물 마냥 소중하게 팝콘을 안고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러다 아마 매점에 들르는 것이 슬슬 귀찮아졌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영화관에 들르는 횟수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보고싶은 영화를 찾아서라도 일부러 작은 영화관까지 구석구석 찾아다녔던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무렵에는 '굳이'가 훨씬 많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어렵게 얻은 휴일에 굳이 일찍 일어나 조조영화를 본다던가, 눈여겨 보던 맛집에 가서 혼밥을 한다던가, 이제 절판된 책들을 어찌어찌 검색해서 굳이 먼 데까지 사러간다던가,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부는 날에 괜히 마음이 들떠서 플라타너스 나무가 잘 보이는 카페 창가를 굳이 찾아간다던가.
대체로 '굳이'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은 내가 아름답다고 감각하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저 지적허영심이나 자만심을 채울 행위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예전보다 '굳이'의 범위가 조금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좋게 말하면 취향이 선명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취향의 폭이 좁아진 것일 테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의 시간은 늘 그런 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누군가와의 교류는 점점 더 중요해져 간다.
같은 그림을, 같은 영화를 보고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느낀다. 당신의 눈동자에 비친 저 장면이, 당신의 귓가에 스며든 저 음악이 과연 어떤 식으로 당신 안에서 파동을 만들어내는지 나는 모른다. 외부의 자극이 내게 만들어내는 감상과 인상을 당신이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오래도록 대화를 나눌테지만 결코 서로의 감각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타인이 '당신'일 때 우리가 전혀 보지 않던 뭔가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의 감각에 아름답지 않던 뭔가를 '당신'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 우리는 별 감흥 없던 그 장면과 소리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대부분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 없으나, 아주 가끔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부분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당신이 클로버를 좋아한다 말하면 늘 무심히 지나쳤던 잔디밭을 괜히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오늘 집에 돌아와 전시회장에서 '굳이' 고른 엽서를 주욱 펼쳐놓고 가만가만 나의 취향을 가늠했다. 오늘 함께 했던 지인처럼, 내 오랜 친구들도 이 엽서들을 보여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까. 만약 그렇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사실 오늘 전시회에서 본 그림 중에 너희를 떠올리게 한 것들도 있었다고. 그저 '나'였다면 지나쳤을 그림들 앞에서 나는 '너'를 생각하며 꽤 오래 그 앞을 서성이기도 했다고.
문득 한 달 전의 일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러 만났던 그 날, 키오스크로 팝콘을 사는 친구 옆에 멀뚱히 서 있다가 나도 괜히 팝콘을 한 번 주문해봤다. 약간 배가 고픈 시간이기도 했다. 팝콘과 거리를 둔지 꽤 되어 뭐가 더 맛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일단 그나마 알 것 같은 캬라멜 팝콘을 고른 뒤 아이스 얼그레이 티를 함께 주문했다. 친구는 나의 메뉴선정을 보더니 너무 특이한 조합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캬라멜은 달잖아? 음료수까지 달게 먹을 수는 없는 걸? 어두운 영화관에서 친구는 제가 고른 갈릭팝콘을 내게 권했다. 오. 맛있었다. 캬라멜 팝콘과 얼그레이티의 조합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굳이' 찾게 될 것 같은 맛은 아니었다.
팝콘에 대해서라면, 아마도 나는 갈릭팝콘과 사이다의 조합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굳이' 아름다움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취향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