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른 출발선 앞에 다시 멈춰 서다
2025년 12월 9일 오전 11시
세 명의 엄마들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엄마'들의 수다에는 늘 '아이'들이 빠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학령기 아이들을 기르기에 , '입시'이야기는 거의 숙명처럼 따라붙는다.
한참 열을 올리고 얘기하다가, 셋 다 커피 한잔을 들이켜고는 약속한 듯이 한숨을 쉰다.
세 개의 한숨이 가게를 가득 메운다.
식사를 하던 다른 손님들도 모두 그 의미를 알고 있는 듯, 속으로 따라 한숨을 쉰다.
백세 시대에 태어나서 이십 년 남짓 보낸 시간으로 평생이 결정되는 건 너무 가혹하다.
그렇지만, '남다른 출발선'을 포기할 수도 없다.
미래가 불안하기에, 부모는 늘 아이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지.
어느덧 첫째는 입시의 최전선까지 자라버렸다.
요즘 첫째의 불안은
'망했어', '나는 레전드 과포자야' , ' 공부 하나도 안 했어.'
같은 말들로 흘러넘치고 있다.
고등학교 입시에서 진한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대학 입시는 더 큰 산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르지 않을 수 있구나.
인생이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도 하는구나.
너무 어린 나이에 몰라도 될 걸 알아버린 내 아이.
나는 아이의 곁에서 기나긴 몸부림을 모두 다 지켜봐야 했다. 그건.. 정말 너무 괴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가장 힘든 건 아이였겠지만.
어느새 둘째도 내년엔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수학선행이 시작되는 시기라, 보통 그 나이를 입시의 출발점으로 본다.
첫째와 지지고 볶았던 세월이 떠오른다.
지금의 둘째와 비슷한 나이였다.
경주 불국사 입구에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엄마, 불국사의 입구는 여기가 아니야. 반대로 가야 해."
라고 엄숙하게 말하던 첫째의 얼굴.
우리는 정말 좋은 시간을 열심히도 보냈는데.
그 추억들이 '입시'앞에서는 모두 헛것이 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기억들이 선명한데, 첫째에게 그 시간들은 지금 어떤 장면으로 남아 있을까.
둘째에게 수학 문제집을 풀라고 하면서도, 마음속이 복잡하다.
'이게 맞는 걸까'
...
...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세 엄마는 다시 커피잔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애들이 너무 불쌍해요. 그렇다고 안 시킬 수도 없고..."
결국 셋은 또다시 '입시'이야기에 빠져든다.
"그 학원은 어때요?"
"아, 우리 애는 거기 안 맞아서 나왔어요..."
"그럼 여기는요?"
"거기 상담 한 번 가볼까?"
......
.....
둘째가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책상 옆에 놓인 책을 슬며시 가져와 몰래 읽는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잠시 내버려 둬 본다.
오래전, 경주에서 책을 들고 길을 안내하던 첫째가 바로 거기,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그 눈빛을 마주하는 날을 바라보는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