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별 다른 시선과 의사결정 과정의 차이

원고 마감의 후의 단상

by 위혜정


같은 커피를 마셔도 맛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유독 신맛의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브라질 커피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고소한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에티오피아 커피의 신맛이 크게 당기지 않는 것처럼요. 생산지가 다른 커피 생두는(물론 로스팅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재현되는 고유한 맛과 향이 다릅니다. 각각의 개별적인 향미는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해주어야 하는 고윳값이라고 해야겠지. 아주 오래된 저가의 생두가 아니고서라면 식음인들이 가진 호불호에 따라 맛이 있고 없고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 글, 혹은 책의 기획을 바라보는 출판사 편집장님들의 시선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같은 원고로 정반대의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존재하는 이유이지요. 출판사 별로 주력 분야가 다르기도 하고, 편집장님들마다 글을 바라보는 시선과 선호의 방향이 다릅니다. 초기 원고 투고 후 바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결국은 나의 글이 책으로 이어지는 연은 닿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글을 알아봐 주는 출판사가 반드시 존재하리라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입니다. 내 글은, 고유한 존재값을 가지므로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요.


원고를 마감하고, 드디어 편집장님께 최종본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매번 원고 작업을 끝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하는데요, 이번 작업은 살짝 우여곡절이 있어서 감회가 남다릅니다. 기획을 구두로 컨펌받고 진행한 두 번째 작업이라고 할 수 있

거든요. 책작업을 함께 하면서 출판사 편집장님과의 소통 가운데 쌓인 신뢰가 기획안 없이 계약을 할 수 있는 견인차가 되어주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쓰고 싶어서 머릿속에 대충의 얼개를 짜두었지만 눈앞에 계약된 책 원고들을 마무리하느라 실재적인 작업에 착수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사실, 그 과정에 다른 출판사에서 한번 거절당한 가슴앓이의 시간도 끼어있답니다.



작년, 계약된 원고를 마무리하고, 누구나 알만한 대형 출판사 딱 한 곳을 찍어서 기획안을 보냈습니다. 바로 다음날 편집장님께 연락이 왔고요. '기획안 하나로 이 출판사의 벽을 넘다니!' 흥분과 설레는 마음으로 편집장님과 대면 미팅을 했습니다. 대면 미팅만 하면 계약에 파란불이 켜지는 줄 착각을 했더랬어요. 안타깝게도 출판사 내부 회의를 거친 후의 최종 결과는 'No'였답니다. 어떤 기획으로든 앞으로 편하게 연락 달라고 하시며 다음번에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위로(?)의 메일이 도착했어요. 부푼 꿈만큼이나 실망감이 컸습니다. 정중했지만 결국 그 결과는 '거절'이었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계약할 것도 아니면서 왜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게 한 건지 서운한 마음이 살짝 들었어요. 얼마 후, 대형 출판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서운함을 지워낼 수 있었습니다. 올해 초, 한번 더 대형 출판사로부터 출간의뢰를 받고 대면 미팅을 하게 되었거든요. 한 사람이 아닌 두 분의 편집장님을 만나 뵈었어요. 규모가 큰 출판사는 팀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대형 출판사의 경우, 투고된 원고를 검토하기도 하지만 편집장님들이 직접 원고를 기획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 저자를 물색하여 컨택한 후, 저자와 편집장 간의 1차 회의를 진행합니다. 그러고 나서 원고의 방향성과 시장성에 대해 내부 팀원들 간의 검토가 이어지고요. 오롯이 단 한 명의 편집장님이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눈 후, 최종적으로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촘촘한 거름망의 과정이 있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전에 가졌던 서운함 대신, 나의 기획을 알아봐 주는 다른 출판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망 쪽으로 무게를 옮기게 되었어요. 그 후, 또 다른 책이 계약되는 바람에 잠깐 꺼내었다가 퇴짜 맞은 아이디어를 다시 뒤로 묵혀두게 되었지만요.





계약된 원고가 마무리되고, 잠시 여백의 시간 동안 '묵혀두었던 기획을 다시 꺼내볼까?' 하는 마음이 빼꼼히 올라왔습니다. '그냥 시도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좀더 익숙하고 안전한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한번 작업을 해보았던 출판사 편집장님께 컨택을 하였어요. 운이 좋게도 거절당했던 아이디어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셨고요. 같은 기획에 대해 완전히 다른 피드백을 받다니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감사하게도 출판사 선의뢰로 개인저서를 계속 출간하다 보니, 첫 책의 투고에서 겪었던 수많은 거절의 기억들이 희미해졌던 것 같아요. 그때에 상당한 좌절감을 겪었거든요. '내 원고가 이런 대우밖에 받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일까?', '계속 투고를 하는 게 맞을까?' 스스로에 대한 불신감에 힘들었어요. 이번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 아이디어가 정말 별로인가?'라는 자기 불신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님을 알게 되었어요. 원고나 기획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장님들의 시선과 선호도의 차이를 고려해야 된다는 사실을요.




편집장님과 카톡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기획했던 내용을 말씀드렸어요.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날 바로 기획회의에서 팀원들과 소통해 주셨고요. 그 이후에 편집장님과 이번 책의 전체 방향과 틀을 잡는 회의를 거쳤습니다. 시간이 흘러 원고가 드디어 마무리되는 시점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간 머릿속에 묵혀두었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될 날을 앞두게 된 것이지요.




원고에 쏟는 정성은 언제나 최선입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수 있어요. 잘 되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습니다. 책 출간 자체가 판매의 보증수표는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맛있는 커피를 알아봐 주고 기꺼이 찾아와 주는 고객 덕분이겠지요. 많지 않아도 단 한 사람의 '오케이'면 충분합니다. 만인의 연인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나의 원고나 기획을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안아주는 딱 하나의 의미 있는 상대(출판사)를 만나면 되는 것이고, 그 책을 찾아주는 딱 한 명의 독자가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혹시, 외부의 반응으로 인해 자신의 아이디어나 글에 의심이 드시나요?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누군가에게 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어떤 커피를 좋아하느냐는 각자의 선호도이지 내가 가진 향미의 부족함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수많은 프랜차이즈 커피 속에서 차별화되고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나만의 고유한 풍미를 가진 커피를 내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만의 글, 스스로를 믿어주며 건필하세요! 결국, 나의 글이 닿게 되는 한 사람의 누군가를 위해서 말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교사 1정 연수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