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는 동네에서 유명할 정도로 폭력이 심했다. 동네 이웃들과 다투기 일쑤였고 엄마는 상대방을 찾아가 사과하는 게 일상이었다.
성인이 돼서 엄마에게 들었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와 할아버지의 다툼으로 구치소에 다녀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아빠와 우리 가족은 다행히 큰 사건 사고 없이 잘(??) 살았다. 아니다. 아빠를 제외한 엄마, 형, 누나 그리고 나의 인내심이 대단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그 폭력의 정도가 더 심해졌다. 아빠 특유의 취했을 때 가족들을 쳐다보는 눈빛과 표정이 있는데 그럴 때면 근처에 있으면 안 된다. 아빠를 피해 내 방에 있을 때 아빠가 내 방으로 오는 발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한 번은 초등학생 때 아빠 심부름으로 맥주를 사 오다가 넘어져서 맥주병이 깨지면서 손등을 다쳤는데 아빠는 깨진 맥주병을 아까워했다.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 지금 나의 왼 손등에 찢어진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꿰맨 자국이 아니라 새살이 돋아나 붙은 흔적이다. 병원을 간 기억이 없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집 문을 열 때 비닐봉지에 담긴 맥주병끼리 부딪히는 그 소리가 너무 싫었다.
'오늘도 마시는구나, 오늘도 힘겨운 밤을 보내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너무 싫고 무서웠다.
술을 마시고 난폭해지면 우리는 아빠가 빨리 잠들기를,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쓰러지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 겨우 잠잠해지면 잠든, 쓰러진 아빠가 깰까 봐 모든 언행을 조심해야 했다. 그래도 아빠가 잠들어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늘 그랬듯 출근을 하지 못했고 엄마는 회사에 전화해 사정하기 바빴다. 엄마가 어렵게 깨워서 출근시키면 바로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연하게도 아빠는 한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해 본 적이 없고 이직을 밥먹듯이 했다.
나는 비록 학생 때였지만 우리 가족에게 폭력을 일삼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우리 가족을 너무 힘들게 했던 아빠가 사라졌으면,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래야,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던 아빠가 죽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빠가 죽었다.
아빠 나이 78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