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문과생의 코딩 도전기
코로나19 전에도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코딩 수업은 꽤 있었다. 그때는 진짜 개발자로 전향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회사 내에서 개발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데이터 분석을 목표로 배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 올해부터 비대면 생활이 가속화되면서 각종 온라인 서비스 트래픽이 늘다 보니 개발자 수요가 많아져서 '개발자로 전향하겠다', 혹은 '나만의 서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걸 목표로 코딩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더 늘은 듯하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는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있었다는 점. 나도 타이밍이 좋아서 지난 12주 간 오프라인 강의로 웹 개발 기본을 배웠고, 지금은 온라인으로 추가 수업을 듣고 있다.
대면 수업으로 시작, '멋쟁이 사자처럼'
베트남에 오기 전 4년 간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지만 (부끄럽게도) 정작 회사 다닐 때는 코딩을 배우고 싶다는 생을 단 1그램도 하지 않았다. 그건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회사에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었고) 나는 협업에 필요한 정도만 대략 알고 나머지 시간은 내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정리해야 할 게 항상 산더미였음)
그러다 지인 분이 베트남에서 하는 멋쟁이 사자처럼 직장인 반 2기를 같이 듣자고 하셔서 (할인에 홀랑 넘어간 것도 있었음) 이 기회에 해보자며 선뜻 수강신청을 했다. 첫 목표는 '이 기회에 코딩이 뭔지 감만 익혀보자'라는 아주 가벼운 거였는데 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나서 (+ 기획자 직업병이 도져서)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완성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4년 간 회사 다니면서도 안 했던 코딩 공부를 베트남에서(?!) 하다니. 그렇다고 내 사고 체계가 프로그래밍에 특화(?)되어있냐고 하면 절대 아니고, 학창 시절부터 소문난 수포자(....)에 100% 찐 문과 전공만 들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베트남의 '멋쟁이 사자처럼'은 한국인 선생님이 한국어로 대면 수업을 해 준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적지 않은 수강료였지만 첫날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어서 놀랐고, 내 나이가 30대 중반인데 어린 축에 속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게다가 나 빼고는 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직장인 분들. 프리랜서인 나와 달리 매일 풀타임 근무를 하고 따로 시간을 내서 수업을 들으러 올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었다. (존경....)
'멋쟁이 사자처럼'의 대면 수업은 5월 말부터 12주 간 진행되었고, HTML/CSS부터 시작해 자바스크립트, 파이썬, 장고까지 배우는 과정이었다. 수업은 주 2회, 하루에 3시간씩, 3군에 위치한 한국계 코워킹 스페이스 세미나실에서 진행됐다. 조금씩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점에서 뿌듯함은 있었지만 사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먼저 좋았던 건 한국인 선생님에게 모국어로 대면 수업을 들을 수 있고, 모르는 건 바로바로 질문할 수 있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 선생님이 봐준다는 것. 또 나와 수업을 같이 듣는 동료들이 있어서 나의 어려움을 공감해주고, 같이 모여서 공부할 수도 있으며 질의응답 시간에 좀 더 많은 내용을 흡수할 수 있었다. 혼자 듣거나 온라인이었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을 것들이 많을 테니까. 대면 수업과 별개로 복습을 위해 복습 강의 파일이 올라와 있어서 이해가 안 된 건 집에 가서 또 들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문법이 생소해서 이 구조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들이 쓴 문장에 내가 아는 것만 바꿔서 넣어보고 응용하다 보면 익숙해졌을 텐데 그때는 이 모든 게 처음이라 '저 문장이 왜 저렇게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버거웠다.
매 수업 시간마다 작은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게 목표였고, 차근차근 따라 하면 무조건 완성이 될... 것 같지만 의외로 한 줄 칠 때마다 에러 폭발. 사람이 쓰는 외국어는 문법 좀 틀려도 상대방이 알아듣지만 컴퓨터는 점 하나만 잘못 찍어도 모른다고 에러 메시지를 뱉어낸다. 누군가는 명확해서 이게 좋다고 하지만 나는 '컴퓨터가 정말 똑똑하다면 인간의 실수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냐?' 라며 화를 내기 십상이었다. (....)
수업 과정 마무리는 해커톤으로 했다. 원래라면 하루 밤을 새워서 완성해야 하지만 다들 현업이 있는 직장인인 관계로 따로 시간을 내서 주말마다 미리 코딩을 하고 해커톤 당일에는 최대한 자신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보통은 팀을 짜고 역할 분담을 했지만 나는 '내가 꼭 만들고 싶은 것'이 있어서 1인 팀을 자처했다. (고생길 오픈)
나름 서비스 기획자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내가 개발은 못해도 어떤 기능이 공수가 많이 드는지 정도는 대략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 만들 수 있게 핵심만 남기고 전부 걷어내서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2주 안에 내가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지 못했다.
처음 수강 신청할 때는 12주만 지나면 나도 코딩 좀 할 줄 알게 되는 건가, 싶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코딩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고 무언가를 만드는 데 방법이 딱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남들이 한 걸 갖다 쓰려고' 해도 검색어에 뭘 넣을지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1만 시간까지는 아니어도 무언가를 제대로 배워서 만들어 내기에 72시간은 한참 부족했다.
이걸 미리 알았다면 내가 완성하고 싶은 서비스의 기능을 더 간결하게 만들었을 텐데. 내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역시, 뭘 제대로 하려면 수업만으로는 안되고 따로 공부를 또 해야 한다는 걸 제대로 느낀 순간이었다. 비록 12주 안에 서비스 완성은 못했지만 나는 올해 내에 꼭 서비스를 완성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목표를 정했다. 일단 공부를 더해서 기초를 다지고 서비스를 다시 수정해 보는 걸로.
외국에서도 코딩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스파르타 코딩 클럽'
한창 유튜브 코딩 강의를 보면서 독학하던 중에 추석 연휴를 맞아 '스파르타 코딩 클럽'에서 무료로 파이썬 강의를 제공한다는 걸 알게 됐다. 광고 타게팅이 얼마나 정밀하던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끝도 없이 강의 들으라고 광고 노출이 엄청났음.
온라인 수업에 대해 확신이 없었지만 일단 무료라고 하니 맘 편히 등록! 그리고 나름(?) 파이썬 경험 자니까 어렵지 않겠지, 하고 또 자신만만하게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강의 중에 기사 크롤링은 멋쟁이사자처럼에서도 했던 건데 왜 자꾸 에러가 나는지... 스스로 자괴감이(....)
좋았던 점은 100% 온라인 강의라서 수업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영상을 뒤로 돌려서 설명을 들으면 된다는 것. 그리고 코드 타이핑하면서 오타가 정말 많이 나는데 그런 자잘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코드 복사 기능이 있는 것도 좋았다. 대면 강의할 때는 선생님 코드 보면서 치는데도 오타가 오조오억 개 나서 그때마다 에러가 나는데 여기서는 그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게 해 놨다. (물론 복사해서 써도 에러 오조오억 개 났음)
온라인 강의인만큼 질의응답은 슬랙으로! 이 슬랙을 보니 사람이 몇 천명이 들어가 있는데 나름 반이 나눠져 있어서 활발하게 질의응답이 오가고, 튜터분들이 꽤 빠른 시간 안에 답변을 주셨다. 남들이 물어본 거 내가 또 물어볼까 걱정이라면... 슬랙에 미리 검색하면 됨. 그렇게 스스로 찾아서 해결한 에러도 많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역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 헬스장 가는 거랑 마찬가지로 내 몸을 일으켜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루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고...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스스로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온라인 강의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듯하다.
운이 좋아서 베트남에 사는데도 한국의 코딩 교육을 대면 강의로 들을 수 있었고, 최근 온라인 강의까지 들어보니 장단점이 명확하게 갈린다. 하지만 방법의 차이일 뿐 결론적으로는 내가 알아서 공부하고 자주 만들어봐야 한다는 것. 갈고닦지 않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12주 공부 마쳤을 때는 '와 이제 해방이다!'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뭘 할 수가 없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에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렇게 어렵다는 스스로 학습....!)
난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꼭 완성하고 싶은 서비스가 있는데 빌딩을 세우는 게 아니고 일단 움막이라도 지어보는 게 목표다. 지금은 재료는 있는데 기둥을 못 세운 상태라고 해야 하나... 집이라고 부를 순 없으니 어디서든 기둥 세우는 법을 배워서 나만의 움막을 지어보려고 한다. 나중에는 빌딩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