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는 왜 그리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
지금도 제주시 그곳의 스님이 운영하는 찻집을 기억한다. 혼자 들어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유는 분명했다. 행동에 관한 나의 오래된 질문에 누군가가 힘을 다해 답해 주었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지만 스님께 보였을 것이다. 우는 기운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으니까.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행동의 문제를 겪고 있었다. 스마트폰, PC, 음식에 관련된 중독적 습관들로 20년 이상 고통받아 온 것이다. 하나하나 밝히고 싶진 않지만 이 세가지로 해낼 수 있는 자기 파괴적인 일들이 아주 많다는 점은 언급하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답해 주었던 이의 조언을 실천하는 일에도 나는 실패했다. 고통은 이어졌다. 비유하자면 그 질문을 낳은 문제가 넘쳐나는 피를 뒤집어쓰고 눈을 뜨고 있었다. 그 눈은 나의 눈이었다. 문제는 해결을 요구했고, 포기한다면 그 눈 부릅뜬 사람은 죽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자살이란 단어는 오랫동안 머릿속 한구석에 태연히 머물렀다.
그리고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의 일부는 남아 있으나 중심은 해결되었다. 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요가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몸을 사용하는 마음챙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해결책이 꽤나 단순하다는 사실이 특별해 보였다. 그리고 이 문제로 20년간 받아야 했던 고통만큼, 실패했던 노력의 크기만큼 기뻤다. 오랫동안 앓아오던 질병이 치유된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에게 거대했던 문제를 대체로 해결하고 보니 왜,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정리하고 싶어졌다. 오랜 순례길을 되돌아보는 순례자가 본인의 여정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하는 심정이 이러할까? 이 책이 그 그림이라면, 나는 결정했다. 그림을 보는 이들이 자신의 중독적 습관을 해결할 특별한 방법을 화폭에서 발견하도록 그리겠다고. 그것이 불가피했던 순례길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방법일 테니까.
따라서 나의 포스팅은 오직 독자의 중독적 습관 해결을 돕기 위해 전개된다. 그 목적을 위해 하나의 해결책을 집중하여 조명할 것이다. 둘보다 하나가 실천하기 쉽다. 이미 검증된 지혜에 기반한 해결책이 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근거와 직관으로 파헤친다. 그 외에 다른 전략도 언급하겠지만 그 부분은 짧을 것이고 강조점이 아니다.
나의 중독, 그리고 그 해결의 근거 밝히기. 그러나 그 해결이 완전하지 않은 이유도 직시하기. 이것이 이 연재가 시작된 이유이고 나아갈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