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라는 그럴듯한 변명
어릴 적 나의 부모님은 책을 쉽게 사주시지는 못했다. 친구들 집에 가면 있던 동화책 전집은 나에게 감탄의 대상이었고, 오디오로 들을 수 있었던 책들은 진짜 신세계였다. 그래서 자주 가서 읽고 들었고, 아마 조금은 귀찮아하며 미움을 좀 받지 않았을까 싶다.
중고등학교 때는 문학을 가까이하는 친구들이 많아 빌려 읽기도 하고, 용돈을 모아 직접 사보기도 하는 등 조금은 능동적으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읽은 책은 대부분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이었고, 사춘기를 길게 겪고 좀 많이 F인 나답게 감정이입을 심하게 해 힘들게 읽어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어릴 적의 결핍, 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그때를 보상해 주기 위해 책을 모았다. 처음엔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이었고, 어느 정도 읽고 나자 작가 한 명씩 파고들기도 했다. 가능한 모든 책들을 구입했고, 지금 좀 많이 후회하는 중이다. 결핍이 이렇게나 무섭다..
사실 성인이 되고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한 적이 있었다. 매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그래서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건 인내심이 꽤 필요했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덮은 적이 많았다. 그렇게 지내던 나는 무언가에 도움을 받기 원하는 순간이 왔고, 그때 다시 책을 찾게 되었다.
쉽게 시작하기 위해 수필을 먼저 접했고, 법정 스님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선택은 좋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심리적으로도 도움을 받았고 글이라는 것에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 후 읽은 책은 기욤뮈소였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 우연히 서점에서 봤고, 그 당시 나는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그 책이 너무도 궁금했다. 그리고 기욤뮈소의 책 특징인 챕터 하나마다 적힌 문장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것도 있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해 나온 기욤뮈소의 책을 읽었다. 그의 책 분위기랑 크리스마스는 잘 어울렸고, 현실을 잊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책 읽기, 책 모으기는 파울로 코엘료, 오르한 파묵, 커트 보니것.. 코니 윌리스, 캐롤라인 냅..
후회한다. 그럼에도 아직 온라인 서점 앱을 지우진 않았고, 그나마 최근엔 자주 들어가진 않았다. 가지고 있는 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많은 책을 중고로 팔고.. 가족들에게 내가 다시 책을 사면 그때는.. 미안하지만, ‘난 개다’ 선언했다. (개나 강아지를 키우진 않지만, 그들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다만 관용적으로 그렇다는 걸.. 하여간 미안하다.)
요즘은 현실이 힘들어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댄다. 그 괴로움을 대신 이렇게 글로 적으며 해결해보고 있다. 딱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만둘까 싶지만, 몇 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금도 적고 있다.
그러니까 결론은, 취미는 책 모으기고.. 이제는 취미를 바꿔야 한다는 걸 심하게 깨달았다는 것.
-> 어제 난 ‘왈왈’ 했다. 책 제목을 검색하다가 알림에 뜬 어릴 적 그렇게 갖고 싶었던 만화책이 출간되었다는 글에.. 바로 결제를 해버렸다..
->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기욤뮈소의 책을 읽지 못했다. 왜 안 나왔을까? 사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이후로 매번 기대만 하며 읽어 내고 있는 중이다. 이제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없는 걸까? 하여간 기다린다.
(그의 책 평이 어떤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뭐, 나에겐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같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