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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Sep 01. 2024

2. 인생 연장 프로그램 (2)

나무에게서 나온 말에 제안자는 나무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는 어느 곳에도 가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에서 사라질 거예요.”


나무는 천국도 싫었다. 자신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바랐다. 지금껏 있던 모든 것에서도, 앞으로 가능한 어떠한 기회에서도.


나무는 자신을 바라보는 제안자의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자신의 결심을 전했다.


“전 살면서 바랐어요. 이 선택을 할 거라고요. 그래서 지금껏 죽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아니, 사라지기 위해 잘 살아왔다는 게 웃기지만.. 상상해 왔던 이 말을 할 수 있어서 전 너무 행복해요.”


나무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왜 그 선택을 하시죠? 지금껏 이런 제안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최고의 선택을 하던데요.”


“그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안 힘들까요? 그건 또 모르는 일이죠. 안 그래요?”


세상일은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건 맞을 거였다. 정해진 건 삶과 죽음이 있다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있고 그것 역시 우리의 예상과 다를 때가 많았다. 그랬기에 최고의 선택을 한 누군가들도 인생의 고난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며 언제든 겪어야 되는 거였다.


“전 더 이상 안 겪을래요. 여기서 그 모든 걸 끝낼게요.”


“음.. 아쉽지만, 나무씨의 의견이 그렇다면 최종 결정을 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앉아 계시면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큰 결정을 내리고 나자 살짝 긴장이 풀린 나무는 죽음을 얘기하던 순간을 잊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라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되뇌자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리고 불현듯 하나 둘 떠오른 얼굴에 기분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래 살아가라고, 사주가 안 좋으니 이름이라도 생명력 강하게 지어야 된다고 생뚱맞게 ‘나무’라고 지은,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던 아빠와 모두가 주는 사랑을 받을 줄 몰랐던 엄마, 그리고 좋아하기도 미워하기도 했던 언니와 동생, 그리고 몇 없던 친구들.. 나무는 혼자서 그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모든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살짝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얼른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절차를 마무리짓던 제안자는 방으로 들어온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살짝 심각해지던 그 얼굴에 나무는 조금 불안해졌지만, 자신의 바람이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닐 것이기에 잘못될지도 모를 거라는 의심을 곧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나무씨, 약간의 문제가 생겨 다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나무는 자신의 의심이 현실이 되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싫어요. 안 된다고 하지 마세요. 저는 그 선택을 할 거예요.”


나무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걱정하는 표정을 들키면 좀 전의 결정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다.


“나무씨, 여기 영상을 봐주세요.”


그리고는 나무 앞에 흰 벽을 가리켰고, 곧 그곳에서 영상이 나왔다. 좀 전의 삶의 세계에서의 나무의 모습이었다. 나무는 그 장면을 보자 다시 손에 땀이 차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의 절박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전체적인 장면을 보자 더욱 무서웠다. 어떻게 저 순간 자신이 손을 내밀었는지 스스로가 놀라웠다.


“저는.. 저는 손을 놓지 않았을 건데.. 아닌가요?”


혹시나 여학생과 자신의 죽음이 스스로의 잘못일지도 모를까 봐 살짝 두려워졌다.


“지금부터는 나무씨의 속마음이 들릴 겁니다. 잘 들어주세요.”


나무는 침을 삼키며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다가오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저의 죽음을 아파하지 않을 거예요.”

‘학생이 잘못되는 걸 볼 수만 없어. 그런데 슬프게도 나도 그래.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파하지 않을 거야.’>


<“어떻게 그걸 장담해요? 가족들 친구들 다 서운하게.”

‘어쩌면 생각보다 아무도 서운해하지 않을 거야. 지금 나도 그런 걸.’>


나무는 당황했다. 그 순간에 자신이 저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기에 들리는 자신의 속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꼭 잡아요. 내가 어떻게든 살려줄게요.”

‘혹시, 이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 나도..’>


나무는 자신의 속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렇게 죽음을 생각했던 자신이 떠올라 서글퍼졌다.


“나무씨, 저 순간의 나무씨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나무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죠? 죽음을 택했기에 지옥으로 가야 되나요?”


나무는 잠시, 아주 잠깐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지금껏 들어온 지옥은 너무도 지독한 곳이었기에 얼른 그 생각을 지워야 했지만, 지금 자신의 죽음에 어느 정도 스스로의 의지가 지분으로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 상황에서, 혹시나 운이 좋아 지옥 대신 환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건 더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나무는 죽음이 간절했을지도 몰랐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애써 무시해 왔지만 이 결단의 순간이 되자 삶이 자신 없었다. 다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선물일지도 모를 삶의 기회를 선택하기가 두려워졌다.


“나무씨의 지금껏 했던 결과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나무씨가 마지막에 가진 마음에 이의제기가 있어서 공정한 절차를 나무씨도 거쳐야 됨을 말씀드립니다.”


나무는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 침만 꼴깍 삼켰다.


“나무씨의 선택은 유지됩니다. 다만 약간의 임무가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앞의 흰 벽에 화면을 다시 보여주었다.


[49:51]


“이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다시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나올 줄 알았던 나무는 숫자의 등장에 궁금함을 느껴 먼저 물었다.


“지금껏 지켜본 바로는 삶과 죽음의 선택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늘 삶에 만족하다가 순간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고 늘 죽음을 생각하다가 사소한 감정에 삶의 의욕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는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늘 죽음을 생각했었던 것 같았다. 죽지 못하는 죽음을, 죽지 못해 살아왔었던 것 같았다.


“늘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간절함은 99에서 100이 되는 순간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희가 통계를 내어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마음은 50:50 그 팽팽함을 지키다가, 죽음으로 살짝 치우치는 49:51이 되는 순간에 죽음에 대한 그 간절함이 더 강력하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괜찮을 거라고 믿었지만 버티고 있던 그 노력이, 그 찰나에 힘을 잃었다는 생각에, 그러니까 그 1의 움직임에 스스로 무너졌던 겁니다.”


나무는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의 그 순간을 떠올렸다. 팽팽하게 버텨오던 생과사에서 순간적으로 기울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1이 넘어가 균형을 잃어서였는지, 99에서 100으로 채워져서였는지 알 수 없던 그 순간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팽팽한 순간이 무너졌고, 스스로 그 선택을 했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럼, 저의 임무라는 건 뭔가요?”


“49:51이 될 사람들을 설득하여 50:50으로 만들 것. 다시 말해 인생 연장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겁니다.”


나무는 제안이 너무 의아했다. 60:40 정도로 해도 불안할 것 같은데, 50:50 이라니까.


“50:50으로 만드는 게 나무씨의 임무입니다. 그 이상을 선택하는 건 그들 각자의 의지입니다.”


나무는 가장 쉬울 줄 알았던 삶과 죽음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저는 할 수 없어요.. 저는 저도 살게 하지 못했는걸요..”


나무는 인생 연장 프로그램에 자신이 없었다.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건 순간적인 마음이 아님을 자신의 경험으로 알기에 나무는 자신이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그들을 살아가게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제안자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듯 나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가 많이 생각해 보고 선택하기를..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무는 제안자를 바라보지 못하고 조용히 물었다.


“나무씨가 마음을 정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어떤 것도 정하지 않으면요? 그럼 이 상태로 계속 있게 되나요?”


제안자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저희들은 기다립니다..”


나무는 미안한 듯 시선을 살짝 내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럼 저는, 그러니까 삶의 세계에서 저는 어떻게 되나요? 끝도 없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있게 되는 건가요?


‘누군가의 짐이 되는 건 끔찍했고, 그렇게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게 지내는 것은 너무 싫었다.’


제안자는 따뜻한 눈빛으로 나무를 향해 웃었다.


“여기 시간과 삶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나무는 안심이 되었고, 짧은 숨을 내쉬었다. 문이 열리고 안내자가 문 입구에 있었다. 나무가 제안자를 바라보자 제안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무 말이 오고 가진 않았지만 나무는 안내자를 향해 걸어갔다.


걷던 나무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못한 것, 다른 사람이 하도록.. 그러니까 삶을 살아가도록 설득해 본다면.. 내가 선택한 죽음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무는 자신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간절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제가 해볼게요. 인생 연장하게 설득해 볼게요.”


제안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는 다시 어딘가에서 용기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삶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그러나 곧 나무는 자신의 감정에 불편함을 깨닫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는 꼭 나의 마지막 선택을 이룰 거야. 그것만 생각하며 지금껏 버텼으니까..’


나무는 어떤 것도 자신의 결심을 방해하지 못하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눈앞에 안내자의 손짓이 보였다. 나무는 안내자를 향해 걸었다.


‘꼭 그들을 설득해서 나의 임무를 완수할 거야. 그리고 사라질 거야. 영원히.’


나무의 등뒤로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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