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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Sep 08. 2024

4. 사랑을, 주세요.. (2)

****

숙희는 친정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서 아침부터 나가는 길이었다.


승진이를 데리고 가는 것에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며, 승호까지 데려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가능한 한 빨리 다녀올 것이지만, 어떻게 장담할 수 없어서 승호가 먹을 점심을 준비해 놓고 서둘렀다. 저녁에는 승호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미 저녁 시간 집에 온 자신을 그려보고 있었다.


병원의 일정이 예상보다 늦어져서 겨우 저녁 시간 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쳐 잠든 승진이를 등에 업고 집으로 들어선 숙희는 조용한 집안에 인기척을 내었다. 승호가 문을 열고 삐죽 얼굴이라도 내밀길 기대했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다.


승진이를 안방에 눕혀 놓고 승호 방으로 갔다. 승호는 없었다. 그래서 골목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지 잠시 마당 쪽으로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아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른 친구집에 갔다가 올 수도 있기에 늦지 않게 저녁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외투를 벗어 옷장에 걸었다. 그리고 무언가 달라진 옷장 안 모습에 숙희는 보자기로 묶여 있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도둑이 들었나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건 모두 그대로였기에 이상한 생각은 승호로 향했다.


보자기의 묶음은 제대로 묶여 있지 않았고, 그래서 정신없이 열어본 숙희도 몇 통의 편지 봉투로 시선을 두었다. 처음부터 몇 통이었는지 몰랐지만 숙희도 그중 하나를 들었다.


숙희의 소란에 잠이 든 승진이가 깨어났다.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아 멀뚱히 보고만 있던 승진이를 데리고 정신없이 밖으로 나온 숙희는 어딘가에서 승호가 보이길 바라며 골목 안 집들의 대문을 두드렸다.


“혹시, 승호 여기 있어요?”


다들 그런 식으로 처음 온 숙희를 의아해하며 고개만 저었고, 몇 집을 그렇게 다니던 숙희는 오늘은 승호랑 놀지 않았다는 아이들의 공통된 대답에 다리의 힘이 풀리고 있었다.


저녁을 준비하거나 먹던 동네 사람들은 늘 조용히 별말 없이 지나다니던 숙희의 다른 모습에 같이 밖으로 나와 승호를 찾아다녔다.


어느 순간 승진이는 동네 아줌마의 손을 잡고 있었고, 골목 앞 웅성거리는 소리에 슈퍼 아줌마도 궁금해 합류했다. 이 모여 있는 모습의 진상을 파악한 슈퍼 아줌마는 자신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승호가 낮에 미조동을 묻던데. 친구집이라고 했나? 거기 친구집 간 거 아니야?”


“미조동요? 언제요?”


숙희는 자신의 확신이 맞았다는 생각에 다행이었고, 그래서 슬펐다.


“두시? 세시? 하여간 그쯤이었던 거 같던데.”


“승진이 엄마 아는 곳이야?”


“얼른 찾아가 봐 “


숙희는 고개만 끄덕였고,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정신없는 얼굴로 동네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했다. 다들 어서 가보라고 손짓했고, 승진이 손을 잡고 있던 경민이 엄마는 승진이 걱정 말라고 숙희의 뒷모습에 말을 남겼다. 숙희는 무슨 말인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뒤돌아 고개를 꾸벅이며 서둘러 걸어갔다. 거의 뛰어갔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울면 안 된다는 생각에 꾹 눌러 참았다. 미조동으로 갔는지, 아님 길을 잘못 들어 다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승호의 우는 얼굴이 떠올라 자꾸만 길에 서게 했다.


‘승호는 똑똑해서 제대로 갔을 거야. 나는 승호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믿음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승호를 만날 거였다. 만나야 했다. 그럼 잘못했다고 사과할 거였다.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숙희는 처음 본 승호가 떠올랐다. 처음 본 자신을 향해 방긋 웃던 승호가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승호가 좋았다. 승호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픈 엄마에게 제대로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던 승호였고, 엄마와의 추억도 쌓아보기도 전에 엄마의 존재를 잃었던 승호였다. 자신이 승호에게 그 모든 걸 다해주고 싶었다. 숙희는 열정이 가득한 엄마였다.


사고였다. 아니 실수였다. 잠시 한눈판 사이에 뜨거운 물의 증기가 신기했던 승호를 뒤늦게 알아챈 숙희는 승호를 잡았고, 다행히 뜨거운 물이 튀기는 했지만 다치진 않은 승호였다. 놀라서 자지러지게 우는 승호를 달래던 숙희는 자신의 손등의 상처는 알아채지 못했다. 승호에게 미안해 승호를 안고 울었다.


승호가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면,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자신들의 아이도 감기에 쉽게 걸리면서 숙희가 새엄마였기에 안 챙긴다는 소리를 저들끼리 농담하곤 했다. 숙희도 몇 번 들었지만 무시했었다. 어쩌면 계모였기에 승호가 아픈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숙희의 머릿속을 점점 채우고 있었다.


‘남의 애 함부로 키우는 거 아니다.’ 숙희가 이 결혼을 결정했을 때 친정 식구들은 세상에 돌아다니는 속설을 전하며 만류했었다. 그러나 숙희는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쓸데없는 소문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선택했었다. 이 사람이 좋아서, 애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애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숙희를 승호 엄마로 봐주는 것에 관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계모.. 딱 거기였다. 아이가 잘못해도 혼내지 못하던, 가까워지면 선을 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숙희는 자신도 모르게 승호와의 거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예뻐하면 안 될 것 같아 표현이 조심스러웠다. 승진이의 눈을 맞추며 웃고 있던 자신을 승호가 가만히 보던 모습은, 그 모습이 매번 떠오를 때마다 칼처럼 꽂혀 숙희를 괴롭혔다. 승진이를 보고 웃어주는 것도 점점 줄여가던 숙희는 모든 감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그렇게 반짝이던 색을 잃어갔다.


숙희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승호를 만나지 못했다. 점점 어두워져 갈까 봐 두려워졌다. 무서워졌다. 깜깜한 곳에서 길을 잃고 무서워하고 있을 승호를 생각하자 숙희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며 길에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물을 닦고 걸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직은 울어도 안 된다. 쉬어서도 안 된다. 숙희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다시 걸었다.


미조동. 봉투를 꺼내 다시 주소를 확인하고.. 그때부터 지나다니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었다. 정신없어 보이는 여자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피하려고 했다. 숙희의 사연에 다시 다가간 그들이었다.


“혹시 10살 된 남자아이 보셨어요? 그러니까 키는 요만하고, 상고머리를 하고..”


무슨 옷을 입고 있었던지 기억나지 않아,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숙희에게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고 숙희를 두고 지나쳐갔다.


서서히 절망이 더 크게 자리하자 숙희는 큰 소리로 승호를 부르고 있었다. 승호를 끝까지 찾아내지 못한 자신이 그려지자, 사라지고 싶었다.


“이승호, 승호야.”


모든 길을 그렇게 외치며 다녔다. 승호가 못 들을까 봐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드디어 보였다.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승호가 보였다. 그제야 오늘 아침에 내어준 옷이 기억났다.


“승호야.”


승호를 불렀다. 승호에게 달려가야 했는데, 승호를 발견했다는 안도감이 그 자리에 서 있게만 했다.


승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의 승호는 숙희를 보자 벌떡 일어났다.


“…”


승호는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가고 싶었지만, 승진이 엄마라는 생각에 그 말이 그 와중에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에겐 더 이상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울고만 있던 승호에게 숙희가 다가갔다.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하자 눈물이 나고 승호가 가여웠다. 그래서 승호를 위로해줘야 했다.


“이승호, 누가 너 혼자 여기까지 오래, 말도 안 하고.”


생각과 달리 숙희는 승호의 엉덩이를 몇 대 때렸다. 그래야 다시는 안 그럴 거 같아 혼쭐 내줘야 했다. 그러다가 숙희는 자신이 이럴 자격이 있는지 또다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 앞에 당황하고 놀란 얼굴을 한 승호를 한참 바라보았다.


승호의 얼굴에 눈물, 콧물이 가득했다. 숙희를 만나서 반가워하기도 하고, 여기 온 이유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기도 하고, 숙희가 드디어 자신을 때려서 당황하기도 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얼마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둘은 다시 나란히 걸었다. 다시 어색한, 계모와 아들이 되어 있었다.


*****

나무는 승호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줬다. 나무의 손길에, 아니 숙희의 손길에 승호는 멀뚱히 숙희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때려서 미안해.”


‘엄마잖아. 엄마는 그런 상황에서 혼낼 수 있는 거지. 애가 혼자 이 먼 길을 오다니.’


나무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숙희의 마음이 전해져 숙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나무는, 그러니까 숙희는 아주 오랜만에 승호를 안았다.


그렇게 승호는 불러보고 싶었던, 엄마를 말해 보았다. 숙희의 품에 안긴 승호는 다시 흐느끼고 있었다. 너무도 그리웠던 엄마의 품이었다. 엄마의 냄새였다. 숙희와 승호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승호는 같이 걷던 숙희의 신발을 보고 있었다. 친구가 그렇게 신었다면 웃었겠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숙희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승호는 숙희의 상처를 느꼈다. 그래서 두 손으로 숙희의 손을 잡았다. 엄마의 손이 이렇게 좋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승호였다. 엄마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엄마의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골목 입구에 오자 소식이 궁금했던 동네 사람들 몇몇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다들 승호와 숙희를 보고 다행이라고 했고, 승호에게는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멀리 가면 자기들이 혼낼 거라고 농담했다. 승호는 숙희 뒤로 살짝 숨었고, 그렇게 말하는 동네 사람들이 무섭지 않았다.


“승호 엄마, 고생 많았네. 얼른 들어가서 쉬어.”


승호는 ‘승호 엄마’라는 말을 속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 승호 엄마였다.


“승진이는 나중에 집으로 보낼게. 우선 승호랑 들어가.”


대문 앞에서 고개를 내밀며 경민이 엄마가 말했다.


“승호야, 배 고프지? 너 좋아하는 계란말이 해줄게.”


승호는 숙희를 향해 웃었다.


늦은 밤, 오늘의 사연을 전해 들은 승호 아빠는 승호를 안아줬다. 승호는 혼낼 줄 알았던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안자, 아빠가 자신에게 하듯 아빠의 등을 쓸어내렸다.


승진이 대신 승호 옆에 누운 숙희는 승호에게 사진 하나를 건넸다.


“승호를 낳아주신 엄마 사진이야. 승호랑 닮았네.”


사진 속 온화한 얼굴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승호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승호가 한 번도 먼저 물은 적 없기에 꺼내지 않았던 엄마 이야기를, 승호 아빠는 오늘 있었던 일에 진작 전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며 숨겨놨던 사진을 숙희에게 건넸다. 자신이 전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왜인지 숙희에게도  미안할 것 같았다. 뭐가 맞는지 몰랐지만, 숙희에게 전했다. 자신보다는 더 현명하게 전할 것 같았다.


“승호야, 엄마가 그리우면 사진을 봐. 실제로 보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게 조금은 해결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항상 슬프지만, 가끔은 좋아. 그리운 사람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고마울 때가 있는데, 넌 아직 모르겠지.’


나무는 승호의 그리움이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 그리워할 어느 누구도 없는 것보다는,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지금껏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리웠다.


나무는, 그러니까 숙희는 승호를 어떻게 더 위로해 줘야 될지 몰라 사진을 보는 승호를 보고만 있었다.

승호는 일어나 사진을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숙희 옆에 누웠다.


“엄마..”


숙희는 울음이 나올 것 같아 겨우 삼켰다. 그리고 웃으며 승호를 바라보았다.


“오늘 저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숙희는 승호를 꼭 안았다. 승호를 잃었을까 봐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무사히 지나가서,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라고 감사하며, 그렇게 승호를 안았다.


승호는 엄마가 그리워 엄마를 찾으러 갔었다. 길을 잃었고, 다시 엄마를 찾았다. 엄마의 품에서 웃었다.


한참을 걸었던 피곤이 서서히 승호를 잠들게 했다. 승호와 숙희는 아주 오랜만에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꿈 꾸라고 빌어주며.. 더 사랑받고 그래서 나중에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승호가 되길 바라며 나무는 다시 어딘가로 향하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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