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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빨리감기로 돌려보는가?

미디어 시크릿 : 넷플릭스와 유튜브 뒤에 숨겨진 비밀들

넷플릭스와 유튜브 플레이어의 차이점과 공통점?



2019년, 넷플릭스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바로 ‘1.5배속’ 기능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균 재생속도인 1배속을 기준으로 좀 더 빨리 볼 수 있는 ‘1.25배속’, ‘1.5배속’ 재생 기능이 새로 생겼다. 넷플릭스와 더불어 유튜브의 재생속도 기능도 함께 살펴보자. 유튜브 플레이어에서는 넷플릭스보다 좀 더 확대된 ‘1.75배속’, ‘2배속’의 속도로 더 빨리 볼 수 있다. 자막서비스 또한 설정한 재생속도에 맞춰서 싱크를 맞추기 때문에, 좀 더 빠른 속도로 영상을 재생하더라도 자막 기능이 영상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새로운 영상 소비 문화에 있어서 재생속도 기능과 자막 기능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이유이다.


2_7_넷플릭스 1.5배속.jpg 넷플릭스 속도(1x) / 출처 : 넷플릭스



재생속도 기능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는 기능이 ‘10초 앞으로’, ‘10초 뒤로’ 기능이다. 이 기능은 영상화면의 우측과 좌측의 더블터치(빠르게 두 번 터치)를 통해 10초 간격으로 빨리감기가 가능해서 ‘스킵 버튼’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영상을 소비하는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1.5배속과 스킵을 하며 보는 이유는 뭘까?



영상은 장르에 따라 정보성 콘텐츠인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있고, 스토리와 재미 중심의 콘텐츠인 드라마, 예능의 콘텐츠로 구분할 수가 있다. 장르별로 빨리감기를 하며 보는 성향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최근에는 위

장르뿐만 아니라 영화 장르까지도 빨리감기로 보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장르를 불문하고 빨리감기를 하며 보는 이유가 뭘까?


일본의 유명 칼럼리스트 이나다 도요시는 저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요즘 소비자들이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20251010_011027.png 유튜브 재생속도(2x) / 출처 : 넷플릭스



우선, 작품이나 콘텐츠가 너무 많다. 국내 방송사와 해외 방송사, 영상스튜디오, 수많은 OTT 서비스를 시작으로 유튜브와 틱톡까지. 길고 짧은 수많은 영상들이 최고 인기작이라는 타이틀로 쏟아지고 있다. 플랫폼별로 그날의 인기 순위도 매일매일 바뀌고, 그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액제 요금제를 통한 기간 내 무한제공이라는 영상 소비 문화가 빨리감기를 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시간과 인터넷 환경만 제공된다면 한 편이라도 더 많이 보고 싶게 만드는 정액제 요금제가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빨리감기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시간에 대한 가성비이다. 우리는 돈보다 시간이 더 소중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몇 십 권의 전집을 읽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정보성 콘텐츠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탄탄하게 쌓아가는 시리즈물 드라마의 경우도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기꺼이 빨리감기를 통해 가성비 높은 소비를 선호한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파악하고 중요한 장면만 집중해서 본다거나, 결론을 먼저 확인하고 돌려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모든 영상들을 빨리감기로 보지는 않는다.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영상은 ‘감상’ 모드로 보게 되며, ‘콘텐츠’라고 여겨지는 영상은 ‘소비’ 모드로 보게 된다. 즉 작품이냐, 콘텐츠냐에 대한 구분이 집중해서 볼지 빨리감기로 볼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흔히 ‘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소비 모드가 아닌 감상 모드로, 1.5배속이 아닌 1배속으로, 한 번이 아닌 반복해서 보는 사용자의 소비 문화도 주목할 만하다.


끝으로, 빨리감기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쉽게 만들어진 영상 제작 형태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배우들의 대사와 독백들이 모두 자막으로 처리되고, 그 자막만 읽어도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흔히 영화를 볼 때 소비자 입장에서 쉬운 작품, 어려운 작품이라는 평가기준은 대사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감독, 연출가의 숨은 의도와 배경, 상황 등이 많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로 구분되곤 한다. 작품성이 높은 어려운 영화일수록 영화를 분석하고 평가하며, 숨은 의도를 알려주는 2차 영상이 많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작품들은 자막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평이한 수준으로 제작되고 있다. 배우의 눈빛이나 내면 연기가 아니라 대사로 거의 모든 장면들이 처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자막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와 의존도가 커지면서 생긴 제작 환경의 변화가 있다. 빨리 이해하고 결론짓기 위해서 자막서비스는 더욱 더 대중화를 추구했고, 그런 대중화로 인해 제작 난이도 또한 더욱 이해하기 쉬운 수준으로 변하고 있다. 결국 영상의 패스트푸드화가 발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재미가 없는데도 본다고?



물론,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만으로 빨리감기 문화의 타당성을 완전히 증명하기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콘텐츠 소비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사내 스터디 모임에서도 이것을 주제로 선정해서 토론을 했었다. 빨리감기로 돌려보는 소비자들의 새로운 소비 형태에 대한 저자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일단 사회적으로 패스트 문화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 작품 안에서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면은 집중해서 보지만, 주인공이 아닌 배우들의 장면이나 전체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장면이라면 과감하게 스킵하거나 1.5배속, 2배속으로 넘어간다. 10회가 넘어가는 드라마의 경우, 한두 회차를 통으로 건너뛰면서 생략한 채로 이어보기도 한다. 이는 음식의 맛을 즐기거나 영양가를 고려하기보다는 그저 배를 채우거나 빠른 시간 안에 식사를 해결하려는 패스트푸드의 소비 방식과 닮아 있다. 지나친 패스트푸드 습관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알면서도 식습관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는 중독성까지도 닮았다.


빨리감기로 돌려보는 소비자들의 새로운 소비 형태에 대한 두 번째 생각은 타인과의 공감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공감 지상주의이다. 영상 콘텐츠를 보는 목적과 이유에 있어서 주변인과의 공감이 최우선시된다. 내가 얼마나 즐거웠고, 감동을 받았으며, 슬피 울었는지, 또는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나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제적인 공감 지상주의,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다수와의 커뮤니티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사회적 불안감이 빨리감기를 통해서라도 많은 내용을 손쉽게 이해하려는 미디어 소비 형태로 이어진 것이다.


이들은 결말을 빨리 알고 싶어서 스포일러가 있는 리뷰글을 찾아 미리 읽기도 한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듯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영상 소비로 인해 1인당 OTT 시청 편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시청하는 영상 작품 수는 점점 많아지지만 오히려 깊이는 없어진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빨리감기를 하는 마지막 주요한 이유는 TV에서 스마트 기기로의 디바이스 변화이다. 모든 영상을 TV로 보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연령대 높은 소비자들은 PC, 스마트폰, 태블릿PC보다는 TV 디바이스를 통한 영상 소

비량이 월등히 높다. TV의 경우 소리를 들으면서 1.5배속이나 2배속으로 시청하는 빨리감기 기능이 없다. 10초 앞으로 또는 10초 뒤로 이동하는 스킵 기능도 제공되지 않는다. 스마트기기를 주로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의 영상 소비 니즈가 기능으로 반영되고, 또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전 세대들은 1.5배속을 “정신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1.5배속을 즐겨보는 세대들에게 1배속은 뭔가 답답하거나 지루한 영상 속도로 느껴질 수 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1.5배속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젊은 세대들의 영상 점유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보편화되어 가면서 빨리감기 문화는 지금보다 더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다. 또는 새로운 니즈를 반영한 영상 소비 형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왜 빨리감기로 돌려보는가?”에 대한 원인이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이번 장을 통해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정리하면 보고 싶은 작품이나 콘텐츠가 너무 많고, 시간적 가성비가 너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으며, 깊이를 중시하지 않고 다소 쉽게 만들어진 영상 작품들이 빨리감기의 주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인 패스트문화, 타인과의 공감 지상주의, TV가 아닌 디지털기기로의 기술혁신, 그리고 그 혁신으로 인한 영상 소비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 빨리감기의 소비 형태를 재촉한다. AI시대가 도래하면서 한 사람의 수준 높은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빨리, 많이보다는 깊고, 폭넓게 바라보며 이해하고 사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Q. 왜 사람들은 빨리감기로 돌려보는가?


그 이유는 콘텐츠 과잉 시대에 더 많은 것을 짧은 시간 내에 소비하려는 시간 가성비추구, 타인과의 공감을 중시하는 사회적 압박, 그리고 스마트 기기를 통한 시청 편의성 때문이며,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문화와 기술적 발전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네이버블로그]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나다 도요시, 감상에서 소비로

https://blog.naver.com/mspark77/223153111232



참고서적

• [현대지성]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나다 도요시> 2022.11.10






[저자소개] <미디어 시크릿> 넷플릭스와 유튜브 뒤에 숨겨진 비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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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미디어 시크릿> 넷플릭스와 유튜브 뒤에 숨겨진 비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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