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아닌 동사로 살아가기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니까

by 제이피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니까
- 멀츠 에스테틱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욕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투영한 목표에 '해외여행', '10만 유튜버', '두쫀쿠'와 같은 다양한 라벨을 붙이곤 하죠. 이 이름표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래의 명사라는 점입니다.


"되고 싶은 모습이니 미래의 명사로 부르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욕구를 '미래의 명사'로만 가둘 때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선 명사는 닫힌 결과물입니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오직 성공과 실패, 두 가지뿐이죠. '해외여행'이 목표라면 결과는 '갔다' 혹은 '못 갔다'로만 나누어집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든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실패했다'는 패배감에 젖게 됩니다.


또한 고정된 목표가 먼 미래에 놓여 있으면 현재와의 괴리가 생깁니다. 그 간극이 너무 아득해 보여 감히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거나,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지금의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 에너지를 갉아먹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의 욕망을 미래의 명사가 아닌 현재의 동사로 바꾼다면 어떨까요?


첫째, 막연한 환상이 현실의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유튜버'라는 명사는 자유롭고 화려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의 동사들을 들여다볼까요? 소재 발굴, 촬영, 편집, 그리고 소통. 어쩌면 지루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르는 이 '동사'들을 견디고 행하는 것이 진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이 즐겁게 느껴지거나 남들보다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면 목표는 더 이상 구름 위의 꿈이 아닌 곧 손에 잡힐 현실이 됩니다.


둘째, 행동 자체가 목표가 되므로 '0 아니면 1'이라는 성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즉각적인 만족감을 얻고, 이런 실천이 쌓여가는 성장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스티븐 기즈가 <탄력적 습관>에서 말했듯, 100%의 완벽함이 아닌 10%, 50%의 유연한 목표를 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히 나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모든 행동의 주체가 바로 '나'가 된다는 점입니다. 명사로 된 목표들은 종종 타인이 정한 정답이나 사회적 평균 같은 외부 기준일 때가 많습니다. 남과의 비교는 늘 외줄 타기처럼 위태롭죠.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을 목표로 삼는 것은 남의 눈치가 아닌, 오직 나를 만족시키는 일입니다. 이러한 동사들이 쌓일 때,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핵심 가치가 선명해지고 나의 본질은 더욱 확장됩니다.


그래서 멀츠 에스테틱스의 광고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것이 진짜 나 다운 아름다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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