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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lay Sep 19. 2018

춘천을 걷다 1

봄내길 2코스. 물깨말구구리길 @ 구곡폭포, 문배마을, 봉화산길


 춘천에는 '봄내길'이라는 예쁜 이름의 걷기 좋은 길, 일곱 곳이 있습니다. 걷기 좋은 계절 '가을', 춘천 곳곳에 소담스레 펼쳐져 있는 봄내길을 직접 돌아보고 있답니다. 춘천의 호수와 철길, 오솔길을 따라서 다양한 길 여행을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춘천에 살면서 처음 맞이하는 가을이다. 작년 가을에는 파업으로 인해 본가에 가 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춘천의 가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다. "춘천은 봄도 예쁘지만, 가을도 봄에 버금간다"고, 춘천 사람들에게 귀 아프도록 들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유난히도 푸른 하늘과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초록빛 숲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새벽 방송을 마치고 남은 업무를 하고 나면 이른 오후면 퇴근한다. 한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도서관이나 미술관, 박물관, 카페 등을 오고 갔지만 이제는 스르르 부는 가을바람이 나를 숲으로 이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숲보다는 강이 좋았다. 막힘없이 뻥 뚫린 강가에 앉아 있노라면,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지금도 강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초록빛의 숲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 하면 '나이 든 증거'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지만, 어떤 친구는 "나도 그렇다"며 초록빛 숲이 그렇게 좋다고 동조해 주기도 한다. "친구야, 너도 나이 든 거야."


 이런 나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숲으로 이끈 노래가 있다. '까맣게 태우던' 여름 한낮을 보내고, 선선한 가을이 보낸 편지 같은 노래. 대학시절 페스티벌에서 본 적 있던 '좋아서하는밴드'의 '여름의 끝, 가을편지'라는 곡이다. 늦은 오후에 초록빛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나른한 멜로디에, 맑고 투명한 여성 보컬의 목소리, 그리고 한 편의 시 같은 노래 가사.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지금, 딱 듣기 좋은 노래다.


가만히 귀 기울여 봐요
여름의 끝을 알리는 작은 바람 소리
가만히 귀 기울여 봐요
온 힘을 다해 부르는 매미의 노래를

이 마음도 알아봐 주오
스르르 부는 바람아 나를 반겨주오
까맣게 태우던 여름 한낮 지나가면
어느새 달 끝에도 가을이 오네

파란 하늘 둥둥 떠있는
새하얀 구름 속에 그림을 그려요
그리움이 번져가나요
예쁘게 그려봐요 사랑하는 사람

- 좋아서하는밴드 '여름의 끝, 가을편지' -





 여름 내내 날씨가 시원해지면 춘천을 걸어서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에서도 뉴스를 진행하며 알게 된 '봄내길' 코스를 돌아보고 싶었다. 춘천시는 춘천의 아름다운 길 7곳을 '봄내길'로 명명해 운영하고 있다. 봄과 가을에는 걷기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이번 가을에는 부지런히 7개 코스를 모두 완주하고 싶다는 작은 목표를 세웠다.


 그 첫 번째 코스로 강촌 관광의 핵심 코스, 구곡폭포를 중심으로 한 2코스, '물깨말구구리길'을 선택했다. 최근에 비가 많이 내려 구곡폭포가 장관을 이룬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고, 초심자도 비교적 쉽게 걸을 수 있는 가벼운 코스였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우리말 같지 않은 '물깨말구구리'! '물깨말'은 '물가 마을(강촌)'을 뜻하는 토속어고, ‘구구리’는 구곡폭포의 옛 이름이다. 다시 말해 강촌의 옛말 '물깨말'과 구곡폭포의 옛 이름 '구구리폭포'를 합쳐서 ‘물깨말구구리길’이라고 한다. 길 이름에서 보이듯 구곡폭포에서 시작해서 상류에 있는 문배마을을 거쳐 다시 구곡폭포로 돌아오는 7㎞ 남짓 되는 짧은 길로 2시간 30분 소요된다.


 물깨말 '강촌'은 구곡폭포를 중심으로 하는 관광지로 자연 풍광이 좋아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나에겐 고3 수험생 시절 무궁화호를 타고 친구들과 당일치기 일탈을 한 곳이기도 하고, 대학시절 여자 친구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강촌은 추억이 있는 그리움의 공간이다.

 가수 나훈아 씨 팬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공간일 수 있는데, 나훈아의 히트곡 '강촌에 살고 싶다'의 작사가 고 김설강 선생이 춘천에서 서울로 가던 중 산기슭에 자리 잡은 강촌역 풍격에 매료돼 배를 타고 들아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노랫말을 지은 것이 바로 '강촌에 살고 싶네(김설강 작사, 김학송 작곡, 나훈아의 노래)라고 한다.


출처 : 춘천 봄내길 걷기 여행 공식 홈페이지 http://www.bomne.co.kr/



[TRAVEL TIP] 봄내길 2코스. 물깨말구구리길
 폭포와 숲, 춘천의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다. 대중교통(강촌역)으로도 접근이 쉽다. 구곡폭포 주차장을 출발해 구곡폭포, 문배마을, 봉화산길 돌아 다시 구곡폭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7.26km로 성인 기준 2시간 ~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걷기 무난한 코스지만, 구곡폭포에서 문배마을로 넘어가는 일명 '깔딱 고개'는 꽤나 가파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운동화나 트레킹화 등을 신는 것이 좋다. 2018년 가을 기준으로 입장료는 2천 원(성인 기준). 하지만 2천 원 상당의 춘천사랑상품권(지역에서 쓸 수 있는 화폐)로 돌려준다.




구곡폭포 관광지 입구(좌), 구곡폭포 가는 길에 만난 개울(우)


물깨말구구리길의 시작점. 구곡폭포 주차장에 도착한 뒤 매표소에 다다르면 입구부터 '숲이구나'라는 느낌이 확 든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졸졸졸 흐르는 개울 소리, 여름의 끝을 알리는 선선한 산바람, 눈을 맑게 해주는 초록빛 나무들의 움직임. 여기에 호흡할 때마다 내 몸에서 들고 나는 상쾌한 공기까지. 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구곡폭포 주차장에서 구곡폭포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크게 힘든 구간도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다만, 무릎이 약한 어르신들에게는 구곡폭포에 다다랐을 때 마지막 100개 정도 되는 계단이 조금 힘이 들 수도.


 구곡폭포까지 가는 오솔길은 산림욕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울창한 숲 속에서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과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게 된다. 나무가 왕성하게 자라는 초여름에서 가을 사이, 맑고 바람이 적은 날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가 산림욕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한다.


구곡폭포 (2018.9.4.)


 50m의 깎아지른 봉화산 바위 벽을 타고 내리며 시원한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구곡폭포는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빙벽 타기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에 꽤나 많은 비가 내려 구곡폭포의 물살이 어느 때보다 거세다.


[TRAVEL TIP] 구곡폭포
 구곡폭포는 봉화산(해발 525.8m)이 품고 있는 생명수가 아홉 골짜리를 휘돌아 흘러내리고,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거리는 아홉 줄기의 사뿐한 물 내림, 그 조화로운 물소리가 아름다운 단아한 폭포다. 폭포에 이르는 황토 오솔길과 시냇물을 벗 삼아 폭포에 이르면, "꿈, 끼, 꾀, 깡, 꾼, 끈, 꼴, 깔, 끝'의 쌍기역(까) 아홉 가지 구곡 혼을 담아 갈 수 있다. 아홉 가지 구곡 혼의 의미를 찾아보며 걸으면 재미가 두 배가 된다.





 구곡폭포를 돌아 나와, 구곡폭포 입구에서 오른편 등산로를 따라 4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문배마을'이 나온다. 문배마을로 가는 길은 '깔딱 고개'로 불릴 정도로 생각보다 길이 험하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걸어도 숨이 차오를 정도로 꽤나 가파르다. 이 길을 오를 계획이라면 제대로 된 운동화나 트레킹화 등을 신는 것이 좋겠다.


점점 하늘과 가까워진다 @ 문배마을 깔딱 고개




문배마을 종합안내도


 가파른 깔딱 고개를 넘으면, 산에 포근하게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외진 산마을이다. 6.25 때는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고. 그만큼 외진 마을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동막골'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문배마을 전경(좌), 문배마을 연못(우)



[TRAVEL TIP] 문배마을
 문배마을은 지금부터 약 200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이 지역 산간에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크고 과수원 배보다는 작은 문배나무가 있었고, 마을의 생김새가 짐을 가득 실은 배형태였기에 문배라는 자연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70-8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면, 이곳이 딱이지 않을까.
 원래 농사를 짓는 집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9가구 정도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산채비빔밥, 백숙, 촌두부 등의 토속음식을 판매하며, 심지어 콜드브루, 카페라테 등을 파는 카페도 있다. 저녁 6시쯤 되면 문을 닫으니 방문하기 전에 연락해 보는 것이 좋다. 또, 구곡폭포의 수량을 조절하는 생태연못도 만날 수 있다. 


문배마을에서 만난 귀여운 강아지




봉화산길에서 올려다 본 가을 하늘


 문배마을을 가로지르면 올라온 곳과는 반대로 비교적 걷기 무난한 임도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봉화산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너비의 임도로,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주변 자연을 그대로 즐기면서 걷기 좋다. 구곡폭포 주차장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도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도토리. 오랜만이야.





 다시 돌아 내려온 구곡폭포 주차장. 구곡폭포 입구에는 숲 속에 여럿 가게들이 있는데 매표소에서 받은 춘천사랑상품권으로 간식을 사 먹으면 딱이다.


 약 12,000걸음, 총 걸린 시간 2시간 30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기 딱 좋은 트레킹 코스다. 올가을 매주 1개 코스 걷기를 목표로, 총 7개의 봄내길을 모두 걸어보고 싶다. 7개의 봄내길을 모두 걷게 되면 가을은 더욱 무르익어 있겠지. 올여름이 너무 더웠기에, 선선한 가을이 무척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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