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깨달음 그리고 ego
삶의 질은 높아진 반면 심리적 행복지수는 오히려 반감되는 상황이다. 의식주와 별개로 서로 비교된 삶으로 인해서 위축되거나, 우월성을 성공의 목표로 인한 압박감 등으로 오기도 한다. 또한,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 살아남기 위해, 인류와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만든 환상인 경우도 있다.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엉뚱한) 행복을 추구하거나, 또는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진리 추구나 깨달음(견성)에 관심을 두기도 한다. 이러한 관심들은 정보화 시대로 인해, 많은 심리/철학/종교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을 쉽게 접하게 된다.
문제는 잘못된 정보의 홍수로 인해 깨달음에 대한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첫째, 완전히 와전된 깨달음
깨달음이야 일상생활 속에서도 알게 된 것들을 말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영적 도약을 위한 깨달음(견성)을 구분해, 수행을 통해 세상 또는 삶에 대한 이치를 알게 되는 깨달음 말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으로 대충 헤아리거나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럴듯하게 해석해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잘못된 지식이나 철학이 진실인양 왜곡하는 것이다.
둘째, 알긴 아는 것 같은데 지혜가 부족한 깨달음
깨달음에 대한 앎이 언뜻 자리 잡긴 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해 에고가 생각으로 깨달았다는 착각으로 인해 거만해지고 겸손치 못해 여전히 에고의 속사임에 휘둘리게 된다.
셋째, 깨달으면 끝일 거라는 생각에 수행을 하지 않거나 미흡해, 에고에게 여전히 끄달리는 경우
부처님 또는 이전에 깊은 수행으로 깨달으신 분들은 내면의 힘이 강해 에고라는 괴물 같은 변화무쌍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근기가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단순한 앎으로써 관성처럼 탐욕과 감정의 분노와 무지와 어리석음에 쉽게 노출되고 끌려가는 것이다.
넷째, 세상을 바로 보는 정견
실제 본질을 논할 때와, 어느 것과 비교할 때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연기적인 현상들을 알아가지 않고, 극히 일부분을 안 상태에서 전부를 아는 것처럼 바로 보지 못하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 머리로만 알고 몸과 마음으로 체득이 되지 않은 경우
많은 지식이 쌓이고 깨달음에 대해서 의문이 풀려도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마음은 따로 논다. 한방에 마음이 확 바뀌어 잘만 따러 주면 좋으련만, 경험이 없거나 약해서 체득되지 않으면 쉽게 흔들린다. 완전히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알게되 무지에서 깨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는한 쉽지 않다.
이러한 잘못된 깨달음이나, 부족한 지혜는 에고의 거만함과 편협된 생각과, 겸손치 못한 행동은 심하게는 사이비 종교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소식했다고 남을 우습게 본다거나, 남보다 우월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에고의 농락에 속는 것이다. 에고가 오히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괴물화 악마화 되는 것이다. 또는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판단과 분별인 에고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이다.
오래된 무의식을 닦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감정이 일으키는 대로, 육체의 오감이 미치는 대로 끌려가고 휩싸이면 괴로움/걱정/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필요한 지혜를 얻지 못하면 잘못된 행복과 불행의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오르락내리락 정신 못 차리게 된다.
경우에 따라 일이 잘 풀리거나, 인생이 잘 흘러가 편안할 때는 모르다가도 막상 인생이 꼬이면, 깨달음이 다 해결되지 않는 다는걸 다시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은 외부와 상관없이 내면이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돌아가 수행을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로 알아 깨달음과 수행을 더 함으로써 깊이에 따라 100번 화를 낼 것을 30번, 20번... 5번... 점점 줄어들게 되며, 석 달 열흘 괴로울 것을 50일, 30일 3시간, 또는 0.1초의 순간의 깨어남의 전환은 바로 없앨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아울러 세상의 이치나 본질도 조금씩 알고 보이게 된다.
깨달음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어렵다는 생각이 가로막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는 대단한 것처럼 말하거나, 참나를 알았다거나,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잘못된 망상을 가지면 되려 역효과를 부르고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러한 생각 분신이 만든 에고 세상의 착각에 빠지기 쉽다.
깨달았다는 에고(ego)가 잘못 자리를 잡으면, 괴물화된 에고에 조정당하기 쉽다. 그에 따라 악마 같은 사이비가 우상화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깨달음 못지않게, 또는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음 후 수행이다. 깊이 물든 무의식적 습관과 잘못된 생각들의 관념과 잘못 듣고 배우고 세뇌된 통념들을 알아채고 바꾸는 작업이다. 이러한 것들을 바꾸지 않거나 이치를 모르면 운명이 숙명처럼 고착화될 수 있다.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갈고닦는 일(보림/거듭남)을 게을리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이치를 습득하지 않으면, 가짜 행복과 불행에서 헤어날 수 없다. 또는 나온다 해도 일시적일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