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네 살이던 해 둘째를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네 살은 정말 어린데, 그땐 다 큰 줄 알았다.
첫째가 감기에 걸렸을 때, 최대한 둘을 떨어뜨려 놓으려고 애썼다.
그런데도 동생이 보고 싶다며 자꾸 다가오고, 나는 안 된다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혼을 냈다.
결국 둘째는 한 달도 되기 전에 감기에 옮았다.
고열이 날까 봐 밤새 물수건을 짜서 이마에 올리고, 옷을 벗겨 닦이며 지냈다.
옆방에서는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며 기침을 하다 울어버리는 첫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달려가서 토닥이고, 잠들겠다 싶어 다시 방을 나서면 또 울고.
“엄마는 동생 간호해야 돼. 오늘은 아빠랑 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늘 무거웠다.
둘째를 보다가도 첫째의 기침 소리만 들리면 바로 옆방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양쪽 방을 오가며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됐다.
둘째 출산으로 미뤄두었던 박사과정 종합심사도 다시 준비해야 했다.
그 시기, 나에게 숨 돌릴 시간은 새벽밖에 없었다.
잠투정이 심한 둘째는 밤 11시는 되어야 잠들었지만, 나는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그 시간에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버텼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든 시절이었다.
5년이 흐르니 아이들이 컸다.
그동안 찾지 못했던 내 시간이 생겼고, 잠도 다시 찾아왔다.
하루 6~7시간 자고, 아침 7시쯤 자연스럽게 눈을 뜬다.
한창 새벽기상을 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알람을 맞춰도 끄고 다시 잠들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첫째가 갑자기 열이 났다.
전날까지만 해도 코만 조금 막혔고, 주말이라 남편이 사 온 회와 막걸리를 먹고 기분 좋게 잠들었다.
열이 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이상하게 새벽 3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주 생생하게.
불안한 마음에 바로 첫째 방으로 갔다.
이마를 만져보니 뜨거웠다.
체온을 재보니 38도가 넘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1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계속 체온을 재고,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이마에 올렸다.
차가워진 발을 주무르는데, 이번엔 둘째가 엄마를 찾으며 깼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바로 아는 그 감각이 신기하다.
둘째를 달래서 재우고 다시 첫째 방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병원 접수를 하고,
둘째는 유치원에 보내고 첫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하원 후에는 둘째가 첫째와 놀고 싶다며 따라다녔지만,
열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도 정신이 또렷하다.
이럴 때면 내가 얼마나 빨리 잘 깨어나는 사람인지,
밤을 새워도 이렇게나 괜찮은 사람이 되는지
, 나는 엄마구나 깨닫는다.
엄마가 되고 없던 능력들이 많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