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가 나가자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남자가 밟고 다녔을 바닥을 걸레로 힘주어 닦아낸다. 욕실 창문을 열고 세제를 풀어 욕실 바닥도 씻어낸다. 수족관 청소로 욕실 바닥에는 물비린내가 진하게 풍긴다. 여자는 제브라디오가 낳아 놓은 알들을 아무렇지 않게 씻어내 버리던 남자의 무감각한 행동이 끔찍할 정도로 싫다. 더군다나 남자는 자꾸 자신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기까지 했다.
여자는 집 안을 환기시킨 뒤 문을 닫고 수족관 속의 구피들을 바라본다. 활짝 펼쳐진 빨간 스커트를 입고 무용하는 발레리나처럼 화려한 레드알비뇨구피가 바닥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온다. 구피는 여자의 어머니가 유난히 좋아하던 열대어였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지 얼마 안 돼 여자는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아파트를 정리하던 날, 부동산 중개인이 혼자 사실 건가요? 물었다. 여자가 대답하지 않자 중개인은 다시 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고 현장에서 바로 사망했고, 중환자실로 이송된 어머니는 의식불명이었다. 여자는 규칙적인 심장박동이 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았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것뿐이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일주일 뒤 숨을 거두었다.
작년 여름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평수에 비해 몸집이 큰 수족관이 골칫거리였다. 수족관은 사람 하나가 들어가도 남을 만큼 크기가 컸다. 어머니가 아끼던 것이어서 쉽게 버릴 수도 없고, 그냥 그대로 들여놓자니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더구나 열대어에 대한 상식이 없었던 여자는 관리 소홀로 열대어들을 거의 죽이고 말았다. 수족관을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여자는 구피 30마리와 네온테트라 20마리를 더 사서 넣었다.
샤워를 마친 여자는 물끄러미 욕실 거울을 들여다본다. 김이 서려 있다. 손으로 문지르자 거울이 맑아진다.
여자는 자신의 손을 본다. 손끝이 투명해졌다. 착시 현상인가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손가락 끝이 유리처럼 맑고 혈관이 비쳐 보인다. 여자는 거울에서 눈을 돌려 목을 본다. 목에서도 이상한 현상들이 생겼다. 가느다란 선들이 목 양쪽에 생겼다. 숨 쉴 때마다 미세하게 틈이 벌어지며 벌름거렸다. 틈이 벌어져 있어도 전혀 아프지 않다. 오히려 편안하다. 그날밤, 여자는 욕조에 물을 받고 목까지 담갔다. 숨쉬기가 편안하다. 언제부터였을까. 투명해진 손가락 혈관이 보이고 가느다란 뼈가 보였다. 여자는 물속에 손을 담갔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편하고 나른한 행복감이 몰려왔다.
오늘도 수족관 속의 열대어와 여자만이 방 안을 지키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소리들은 살아서 움직인다. 수족관에서 기포가 올라오며 보글거리는 소리가 집안의 정적을 메운다. 여자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그것들은 배반하지 않았고 갑자기 떠나지도 않았으며 그저 투명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유영할 뿐이다.
그날 밤, 여자는 욕조에서 잤다. 욕조에 적당한 온도의 물을 받아 놓고 누우면 편했다. 침대는 딱딱하고 차가웠지만, 물은 부드럽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 같았다.
수족관 형광등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온다. 벽에 수족관 물결 그림자가 반사된다. 여자는 밤이 되어도 불을 켜지 않는다. 수족관의 불빛만이 여자의 방 안을 비추고 있다. 여자가 수족관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열대어들이 몰려든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열대어들을 바라보고 있던 여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는 달리 이곳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아늑하고 편안하다. 여자의 눈앞으로 가로 줄무늬의 제브라디오가 휙 지나간다. 어찌나 활동성이 좋은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파란색 형광물질을 달고 다니는 네온테트라는 알록달록한 것이 군형을 이루며 아주 멋지게 어우러진다.
그 많던 구피가 5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녀석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수족관을 들여다보고 있던 여자의 시선이 흔들린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여자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때, 덩치가 큰 블루그라스구피가 옐로구피를 뒤쫓기 시작한다. 여자는 어제, 옐로구피가 측면여과기 옆에 숨어 있는 것을 보았다. 옐로구피는 먹이를 먹으러 나오지도 않았다. 먹이를 던져주면 불안한 듯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달려와 허겁지겁 먹고는 잽싸게 다시 그곳으로 가서 숨는 것이었다.
옐로구피는 블루그라스구피를 피해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블루그라스구피는 옐로구피를 쫓아다니며 꼬리를 물어뜯는다. 여자가 블루그라스구피를 매섭게 쏘아본다. 여자의 눈길을 받은 블루그라스구피가 멈칫하더니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여자는 수족관 아래로 몸을 낮춰 살짝 숨는다. 아니나 다를까, 블루그라스구피가 다시 옐로구피를 추격하며 쪼아댄다. 길었던 옐로구피의 꼬리지느러미는 확연히 짧아져 있고 등지느러미가 너덜너덜해졌다.
여자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수족관에 비친다. 다른 열대어들까지 옐로구피를 쫓아다니며 상처 난 곳을 뜯어먹는다. 옐로구피와 여자의 눈이 마주친다. 옐로구피가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헐떡인다. 여자는 수족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옐로구피를 들어내려 한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여자가 수족관 속을 휘젓자 열대어들이 놀라 달아난다. 잔잔하고 고요하던 수족관의 질서가 갑자기 깨지며 아수라장이 된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