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수족관 수리점에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한다. 수족관 수리점 번호는 최근 통화 목록 맨 위에 있다.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다. 최근 통화한 사람이 수족관 남자말고는 없다. 여자는 주저하는 말투로 수족관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말한다. 여자의 목소리를 듣자 내심 반가웠지만 남자는 내색하지 않는다. 여자는 수족관 열대어들이 꼬리가 잘려나갔다고 말한다. 남자는 내일 오전 11시경에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괜찮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 가기 위해 미도아크로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남자는 여자의 집 앞에서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다가 초인종을 길게 누른다. 여자가 문을 열어준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듯 여자의 풀어헤친 머리가 젖어있다. 풋풋한 여자의 모습이 오늘따라 선정적으로 보인다. 여자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남자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다. 여자의 머리에서 향긋한 샴푸냄새가 풍긴다.
실내로 들어간 남자는 찬찬히 수족관 속을 살펴본다. 히터 온도도 알맞게 맞추어 놨고, 대청소를 해서 물도 깨끗하다. 대략 50여 마리 정도의 구피들이 유유히 수족관 속을 유영하고 있다. 깊은 해저 속을 연상시키는 수족관 속은 안식과 평화로움이 넘쳐흐르는 바닷속 왕궁처럼 보인다.
-아무 이상 없는데요?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를 바라본다.
-저기 저 측면여과기 옆에 있는 옐로 구피 꼬리를 자세히 보세요. 꼬리가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하잖아요. 안 보이세요?
그것도 못 보냐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에게 황당해진 남자는 다시 측면 여과기 쪽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한다.
-아! 저기 저 엘로우 알비노구피요. 지금 저 녀석은 다른 이상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저 놈은 산란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구피가 산란기가 되면, 잘 먹지도 않고 움직임이 둔해지거든요. 자세히 보세요. 배 뒤쪽 부분이 까맣게 변했죠? 열흘 후쯤 산란을 할 겁니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구피에 대해 설명한다.
-글쎄, 걔 꼬리를 좀 보시라고요.
여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수족관의 유리면을 탁탁 치며 히스테리를 보인다.
-도대체 구피꼬리가 어떻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남자는 황당했지만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여자에게 말한다.
수족관 앞면에 고개를 바짝 들이대고 속을 살피던 여자의 눈에 옐로 구피의 모습이 비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덜너덜하던 옐로구피의 꼬리가 감쪽같이 원상태로 돌아와 있다.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도 분명 꼬리가 너덜너덜했었는데. 여자는 무안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린다.
-지금 수족관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당분간 물고기 먹이는 주지 마세요. 먹이를 너무 많이 주면 물이 오염되어 병이 생기니까요. 그리고 열흘 후쯤에 산란 통을 매달아 놓으세요. 너무 일찍 매달아 놓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새끼를 낳지 않으니 꼭 기억해 두시고요. 다른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주십시오.
여자는 다른 세계에 갇힌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수족관만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벽에 대고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말을 마친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흘끗 여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여자는 하려던 말을 다 못한 사람처럼 얼떨떨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아무래도 좀 이상한 여자라는 생각을 하며 여자의 집을 나온다. 열흘 후에 알비노 구피가 치어들은 낳을 수 있도록 여자가 치어 통을 잘 장착해서 다른 열대어들과 분리시켜 놓을지 걱정스럽다. 기억력이 제로인 구피는 자기가 금방 낳고서도 새끼들을 잡아먹어버리는데, 여자가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남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여자의 집을 나온 남자는 차의 시동을 걸지 못한다. 5년 전, 아내가 떠난 뒤 자신도 물고기만 바라보며 살았다. 아무하고도 말하고싶지 않았고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지냈던 적이 있었다. 남자는 그때의 일이 되살아나 후, 한숨을 내쉰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