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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Sep 29. 2024

장다리꽃 (1)

1부/ 떠난 후에야 알게되는 것들

냉동실에서 꺼낸 엄마의 시신은 뼈와 가죽만 남아 처절하리만치 앙상했다.

가족들은 통유리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가 엄마의 팔을 펼치자 주삿바늘 자국으로 퍼렇게 멍들어 있던 양쪽 손목이 드러났다. 남자는 나무 막대처럼 뻣뻣한 엄마의 팔과 몸을 알코올에 묻힌 거즈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남자의 행동은 기민하고 침착했다. 엄마의 배는 쭈글쭈글하게 오그라져 있었다. 그곳은 빈 황무지처럼 음습하고 피폐해 보였다. 살아생전 자식들을 어루만지던 손은 뻣뻣했고, 자식들을 보고 웃음 짓던 엄마의 얼굴은 남자의 손놀림에도 무표정했다. 엄마의 시신 위로, 아기처럼 울음을 터트리던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엄마는 병문안을 갈 때마다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손을 놓아버리면 마치 무시무시한 지옥의 늪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듯 그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호사들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마지못해 내 손을 놓아주고서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엄마의 얼굴을 외면하며 뒤돌아서서 종종걸음을 쳤다. 엄마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문에 기대어 서서 그러고 있었다.
 

"새벽에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돌아가셨더래."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묻어있었다.

새벽에 엄마의 부음을 들었을 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일을 맞이한 것처럼 담담한 마음이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아직 새벽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희뿌연 방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즈께 밤에는 느그 아부지가 꿈에 보이드라. 하얀 옷얼 입고 노랗게 핀 장다리꽃 옆이서 자꾸 손짓을 안 허냐. 나넌 있는 힘을 다흠서 느그 아부지 있는 곳으로 갔제이. 나가 다가스먼 또 멀찌감치 떨어져서 어서 오라 글고……. 뭔 걸음이 그리도 빠르등가 따라가기가 오지게 되등마. 참말로 무슨 꽃이 그리 끝도 없이 피어 있등고이, 사방 벌판에 노란 장다리꽃이 끝도 없이 드란 말다. "
 

내가 마지막으로 노인 병원을 찾았을 때, 엄마는 말했다. 병실 창 너머에 시선을 두고 있던 그 눈빛은 텅 빈 듯 공허해 보였다. 어쩌면 그때부터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남자는 물건에 묻어있는 오물을 닦아내듯 엄마의 시신을 꼼꼼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평생을 힘겹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거무스름한 색깔로 거즈에 묻어 나왔다. 몸을 닦아낸 남자가 숱이 빠져 듬성듬성 남아 있는 엄마의 흰 머리칼을 이마 뒤로 빗어 넘겼다. 머리칼을 뒤로 넘기자 뼈만 남은 얼굴이 드러났다.

남자가 엄마의 몸을 한지로 싸기 시작했다. 엄마의 오른발은 바깥으로 휘어진 채 굳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으로, 발가락 사이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남자는 억지로 발가락을 오므려 한지를 뒤집어씌웠다.



“이제 고인과 마지막입니다. 저승길로 가시기 전에 마지막 인사하십시오.”


엄마의 몸에 노란 삼베옷을 입힌 남자가 창 너머에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굳어버린 엄마의 얼굴을 감싸 안고 중얼거렸다.

“차라리 잘 된 거야, 엄마. 이제 다 잊고 편히 가세요.”

가족들이 퇴장하자 엄마의 얼굴에 노란색 수의가 씌워졌다. 이제는 영영 볼 수 없을, 그 마지막 순간이 견디기 힘든지 동생이 꺽꺽 울음을 삼켰다.

잠시 뒤에 다른 남자가 오동나무로 된 관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엄마의 유체를 흐트러지지 않도록 묶었다. 유체는 긴 나무토막 같았다.

유체를 관에 옮긴 남자 중 하나가 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고인의 유품이 있으면 떠나실 때, 같이 보내도 됩니다. 유품이 있으면 가지고 나오시지요.”

나는 화장대 서랍에 간직해 두었던 엄마의 은비녀와 참빗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한평생을 자식들에게 주기만 했던 엄마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하찮은 것들뿐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한지에 싸서 관에 넣고는 관 뚜껑을 닫은 뒤 위에 하얀 천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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