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어떤 곳이에요?
이 질문은 곧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신애가 종찬의 배려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냐 하면 당연히 아닐 것이다. 땅을 구해준다며 발품 팔아준 것, 함께 교회에 다녀준 것, 병원에 데려다준 것, 몸을 노리는지 돈을 노리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속물 같을 뿐.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어주었던 것, 그 존재감은 다른 행위 없이도 신애를 비추는 밀양이 된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살 수 있다.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참지 못해 미용실을 박차고 나온 신애를 보며, 끝까지 그를 용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기대어 나온 용서는 구원이 될 수 없기에 계속 분노했으면 좋겠다.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아주 나중에는 분노가 분노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실컷 분노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강렬한 감정을 식혀줄 곳도 있었으면 좋겠다. 기나긴 생애 중에 잠시 쉬어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앞에 존재하는 종찬일 것 같아서, 종찬이 거울을 들어주어서 안심이 되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날리는 마당 구석에도 햇빛이 든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신애가 결국 살아낸다.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위로는 칼보다 날카롭다. 어떤 연민은 나를 발가벗긴다. 어떤 시선은 마주 보지 않아도 거북하고 어떤 믿음은 신성하면서도 모순되기 그지없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이토록 지저분하게 완성되기도 한다.
이런 사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