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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03. 2023

이탈리아 여행기 Wrap-up 2부


5일 차: 피렌체 → 로마


 피렌체 민박집에서 먹는 마지막 조식. 전날엔 삼계탕이었는데 오늘은 감자탕이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빨간 국물.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카페 일리로 향했다. 자릿세도 받지 않고 얼음을 따로 받을 수도 있는 곳. 그런데 우리 남편, 아이스 컵이라고 말해버려 아이스 콜드브루를 받아 온 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편을 뒤로하고 두오모를 마지막으로 보러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 건축물을 어떻게 오래 기억하지 기차 시간에 쫓겨 초조한 마음으로 생각하다가 "나도 두오모처럼 시간이 지나도 기품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하고 다시 남편에게로 뛰어갔다.  


안녕, 두오모. 봐도 봐도 신기한 오묘한 우아한 건축물.

 기차가 약간 연착됐지만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사장님 여동생이 하시는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나와보니 도시 곳곳이 문화유적이다. 그리고 북중부에 있다가 남부로 오니 확실히 날씨가 덥다는 게 실감이 났다. 줄 서서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보고 뙤약볕에서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을 구경했다. 티켓 받는 곳을 헷갈려 동분서주한 남편.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온다. 남편이 고생할 동안 나는 인포메이션 센터 근처에 앉아 조금이나마 숨을 돌렸다. 그 사이 처량한 표정을 한 외국인이 지인과 연락을 해야 한다며 잠깐 핸드폰을 쓸 수 있느냐며 부탁해 온다. 하지만 차마 내어주지 못했다. 해당 메시지 앱이 나에게 깔려 있지 않기도 했고 소매치기 천국인 이곳에선 남편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팔라티노 언덕을 보면서 먼저 포로로마노로 이동했다. 공부를 하고 갔으면 좋았을걸. 신전과 개선문이 막 흩어져 있는데 정말 사람이 살던 마을이구나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이어 예약한 시간에 맞춰 콜로세움에 직접 들어와 보니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본 원형경기장은 미니사이즈였다는 게 느껴졌다. 고대 로마 유적 중 가장 큰 원형경기장의 위엄이 느껴졌다. 5만 명이 입장할 수 있었고 신분에 따라 자리가 층층이 구분돼 있고 기둥 모양도 달랐다. 가장 가까운 1층은 귀빈석, 가장 높은 4층은 천민의 자리였다. 바닥이 미로 모양으로 뚫려 있었는데 이곳에서 검투사와 맹수간 목숨을 건 혈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갔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던 '포로 로마노'.


 저녁엔 여동생 부부분께서 소개해준 맛집에 갔는데 맛이 썩 좋진 않았다. 중국 분이 하시는 집 같았다. 로마의 초등학교 주변 거리를 걷는 게 더 좋았다. 근처 엠마뉘엘 공원을 산책하며 주민들이 탁구 치는 모습을 구경했다. 야외에서 spritz 2잔 마신 뒤, 콜로세움 야경을 보러 Colle Oppio 공원에 올랐다. 한 여자가 앉아있는 벤치 옆에 자리를 잡았는데 알고 보니 밀라노에서 온 바텐더였다. 그녀도 심심했던지 먼저 우리에게 '여기 야경 좋지 않냐'라고 말을 걸어온다. 공원 문 닫는 시간까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날도 점점 어두워졌다. 바텐더 월급이 짠 것이 불만인 듯했다. 지금은 잠시 로마에 1달 정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는 최근에 기사를 쓰고 온 베를루스코니 총리 얘기까지 번졌다.


6일 차: 바티칸, 로마


 드디어 바티칸 투어. 사람이 정말 많았다. 박물관에선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장소인 시스티나 성당에선 목을 내빼면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중앙제단 뒤쪽 벽면을 장식 중인 최후의 심판을 오래 바라봤다. 청장화는 모두 나체로 그려졌었는데 논란이 일자 미켈란젤로의 제자가 인물들에 옷을 그려 넣는 작업을 맡았고 이후 자괴감에 자살까지 했다고 한다. 예술은 예술인데 그냥 뒀어도 좋았을 걸. 사진 찍지 말라는데 꼭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안내하는 분들이 조용히 하라고 계속 외치셨지만 쉽지 않다.  


 남편이 16년 전 가지 못했던 그 성베드로 대성당. 세상에서 제일 큰 성당이라고 한다. 면벌부라는 것을 팔아가면서 건립기금을 마련했고 종교개혁을 부르는 신호탄이 됐다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대하고 화려하단 말로는 부족했다. 점심을 먹고 불굴의 우리는 쿠폴라에 오르기로 했다. 계단을 밟고 성 베드로광장과 바티칸 시내를 내려다봤다. 교황이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뷰가 궁금했는데 이런 느낌이겠구나. 오후 돔을 통해 떨어지는 빛줄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오후 5시 미사도 보고 스위스 근위병도 보고, 그렇게 우리는 오후까지 오래도록 바티칸에 머물렀다. 괴한의 습격을 막기 위해 유리로 막혀버린 피에타도 오래도록 느껴보았다. 남편은 16년 전 가지 못한 숙원을 모두 해소한듯 했다. 기뻤다.


사실 분수 색깔도 아름다웠지만, 가운데에 있는 조각상이 더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16년 만에 다시 온 판테온과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까지. 판테온은 고대 로마시대 건축물인데 후에 성당으로도 이용됐다. 나보나 광장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기했고 남편은 트레비에서 또 한 번 동전을 던졌다. 그때 두 개를 던졌기에 평생의 연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야! 트레비 분수 색깔은 오묘해서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분수 색깔도 예뻤지만 가운데에 있는 조각상이 우아해서 눈에 들어왔다.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과 그 주변에 반신반어인 트리톤이 두 마리의 말을 이끌고 있다.



7일 차: 포지타노, 폼페이  


 오늘은 남부투어를 하는 날이다. 아말피 해안도로를 따라 포지타노 도착. 해변이 생각보다 좁았고 우리는 근처에서 레몬색 돗자리를 펴고 나는 발을, 남편은 몸을 담갔다. 신나 하는 남편을 멀찍이서 바라보았다. 나는 지중해 돌멩이를 이번에도 수집했다. 예전에 니스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가 자기는 해변으로 여행 올 때마다 돌멩이를 수집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예쁜 마을이었지만 시간 제약 때문에 맘이 쫓겼다. 그래도 투어 덕에 편하게 이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방문한 폼페이.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그대로 묻혀버린 도시였다. 여전히 곳곳에서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사창가라든지, 공중목욕탕이라든지 현대인들의 욕구와 본능과 옛사람들의 그것이 별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도시였다. 돌아와서 쿠팡플레이에서 하는 폼페이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도시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생활을 더 실감 나게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슬펐다.


 로마에서 급하게 때운 적이 많아서 마지막 날 밤 한 끼는 제대로 먹자고 해서 찾아 간 Ornelli Black Angus Steakhouse. 1kg에 콜라와 와인까지 20만 원 정도 나왔다. 베네치아에서 아낀 곤돌라 값이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주일 여행을 차분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근처 공원에서 또 와인과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남편이 멀리까지 peroni 맥주를 사러 갔다 왔지만 나는 그만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비싼 걸 먹었지만 비건인 친한 선배가 신경 쓰여 인스타그램에 자랑하진 못했다.


8일 차: 로마 마지막날


 민박집 사장님과 마지막 커피타임을 가졌다. 대화가 썩 통하진 않았다. 뭔가 마음이 많이 지치신 듯했다. 티키타카가 더 됐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도 I라 말주변이 부족했다. 사장님이 사 주신 카라멜 마끼야또. 우리나라처럼 단 음료가 아니라 에스프레소에 우유 살짝 첨가한 커피였다. 근처 라 사피엔차 대학교 산책으로 마무리했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명문대학교였다.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 걸려있던 우크라이나 국기. 전쟁의 여지는 없다라는 이탈리아어 말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전날밤 느끼한 것을 먹어서 그런지 밤새 화장실에 들락날락해 버렸다. 우리는 커피 투어로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바리스타 출신 가이드님께 추천받은 타짜도르 커피, 그리고 산미가 조금 있다는 산트 유스타치오 더 커피 두 곳 모두에서 커피콩을 구매했다. 이로써 일리 커피 포함 이탈리아 3대 커피집을 모두 뚫었다. 젤라또 맛집이라는 지올리티에 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맛도 먹었다. 커피투어를 하면서 판테온과 트레비분수도 다시 마주했고 베네치아 광장도 지나쳤다. 콜로세움을 바라보면서 좀 쉬다가 공항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하지만 망할 터키항공이 연착되면서 다음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 이스탄불에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뛰었고 가방 속에 있는 물까지 터져가면 겨우 last call에 오를 수 있었다. 자기네 비행기들 때문에 연착이 됐기 때문에, 들여보내주는 승무원들도 할 말이 궁 해 보였다. 어찌 됐든 몸은 무사히 한국 땅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짐이 안 왔다. 조회는 안 되지만 아마 이스탄불에 있을 거라고. 이틀 뒤 짐은 우리가 출근한 사이 집 앞으로 도착했다.    





 이탈리아는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여유롭게 여행하다기보단 열심히 쉼 없이 돌아다녔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나라였다. 사실 그동안 남들과 다른 곳에 가고 싶어서 이탈리아를 피해왔는데 남들이 가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다음엔 남편이 좋아하는 스코틀랜드에 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고대 로마제국을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 이 글도 역시 후루룩 기록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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