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 엄마가 된 온도] 1. 배 속의 계절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나는 엄마가 되었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나는 엄마가 되었다


봄 공기가 아직 차가웠던 어느 날, 하얀 막대 위에 선명하게 그어진 두 줄이 나의 세상을 바꾸어 놓았어. 처음 시도한 시험관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 선 하나가 엄마아빠의 감정을 올렸다 내렸다 했지.

하담아, 네 처음 이름은 ‘새콤달콤’이었어.

엄마 뱃속엔 두 개의 생명이 있었고, 엄마가 힘들지 않을까 싶어 한 친구는 다음에 오려고 했는지 잠시 머물다 떠났어. 그리고 네가 ‘콤콤이’가 된 거야. 그날 이후 엄마의 하루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고, 작은 숨결 하나에도 마음이 일렁였어. 임신 초기는 회사와 병행하느라 믿기지 않을 만큼 빨리 지나갔다가, 출혈로 잠시 휴식을 가지기도 했어.


너를 가진 순간부터 몸이 낯설게 변하고, 먹던 음식들이 갑자기 낯설어졌지. 아침마다 반복되는 입덧 속에서 너의 존재가 느껴져 참 신기했었단다. 신기하지 않니? 손톱만큼의 존재가 엄마 뱃속에 들어와 감정 소용돌이 속 폭풍의 눈이 되었다가도, 엄마의 체력을 약하게 했다가도 동시에 세상 누구보다 강하게 만들었다는 게.

4개월쯤 집 근처 아울렛을 갔는데, 회전교차로에서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어. 그때 눈앞은 캄캄했고, 병원 가는 내내 네가 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단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아이는 생각보다 강하니까, 엄마가 더 강해져야 해요.”라고 말씀하셨고, 엄마는 그날 이후 더 강해져야겠다고 결심했지.

아, 그리고 그때 너가 남자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단다. 뿅! 하고 나오는 초음파 속 너의 모습.


조심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들이 쌓였고, 너를 만나기 전부터 너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갔단다. 아빠와 함께 처음으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고,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바람과 바다 사이를 걸으며 너에게 좋은 공기와 햇살을 보여주고 싶었어. 한없이 평화로운 하루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너의 움직임은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그렇게 가을이 되니 너와 만날 날을 더욱 기대하게 되었어.

감사하게도 재택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 엄마는 일과 병행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 덕분에 하나와 네찌랑도 출산 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일과 육아, 육묘의 경계 사이에서 점점 엄마로 자라는 법을 배우고 있었지.


너와 만날 날이 점점 다가오던 그때, 너의 작은 발이 내 안에 톡 하고 움직이는 순간이 그렇게 좋았던 것 같아.
하루에도 수십 번 너의 움직이는 리듬을 아빠와 함께 기다렸고, 그때마다 꺄르르 웃는 순간들이 많았어.

집 안엔 작은 옷들이 늘어갔고, 너를 맞을 준비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어. 때론 정신없는 집 같기도 하다가,
앞으로 더 따뜻해질 날들을 기대하니 설레기도 했단다.


봄의 설렘, 여름의 불안, 가을의 기다림, 겨울의 기적처럼.


설렘으로 만나 기적으로 나타난 너에게, 10개월 동안 함께한 모든 계절이 너와 만날 그 한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졌어. 4계절을 너와 함께 보낸 이 순간들이 훗날 다가올 육아의 밑거름이 되어 바닥처럼 내리치는 순간에도 기억하기를.

기대만큼 육아가 쉽지 않고, 상상만큼 예쁘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를 기다리며 자라던 그 봄의 온도,

너의 발차기가 전해지던 여름의 기적, 아빠와 웃던 가을의 풍경, 그리고 너를 품은 겨울의 온기. 이 모든 계절이 내게 준 선물은 ‘너’였고, 그 선물 덕분에 다시 일어날 힘을 배웠어.


너를 기다리며 자라던 시간, 그건 결국 나 자신이 엄마로 태어나는 시간이었단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
아들, 하담아.

2022년 12월 너를 만나기 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