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이끈 발길, 어느 날의 기록
꽤 지난날의 어느 아침에 와 있다.
기억은 어젯밤 읽은 윤석산 시집 『밥 나이, 잠 나이』의 연보로부터 시작된다. 군 근무 시절, 신춘문예 투고와 낙선의 기록.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두 분이 서로 다른 작품을 밀며 팽팽히 맞서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두 작품을 모두 버렸다는 일화였다. 그때 한 작품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심사위원이 바로 서정주 시인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어제 브런치스토리에 발행한 시 「新나중미부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그리고 곧이어 지인의 권유를 받았다는 아내와 함께 ‘질마재 시인마을’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생각은 이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아, 질마재라는 고개 주변에 시인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구나.’
시인마을로 가는 길.
톨게이트를 통과해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고속도로에 대한 막연한 상념이 밀려왔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의 초입에 선 듯한 생경한 느낌. 어쩌면 고속도로가 속도를 내는 이유는, 삶의 미래도 역류도 아닌 그 어디쯤을 재촉해야만 하는 운명의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젊은 날의 시간과는 달리,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오늘은 가파르게 흐르는 시간과 나란히 어깨를 걸고 동행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녹색 유도선을 따라 고창담양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큼지막한 필암서원 이정표 위로 차진 반죽을 뚝뚝 뜯어낸 손수제비 모양의 솜털구름이 유유자적 떠 있었다. 터널을 지날 때는 잠시 잊었던 삶을 상기하게 되고, 또 하나의 블랙홀을 통과하는 경험을 했다.
분홍색 유도선을 타고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 나는 푸른 하늘을 보며 어딘가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을 홍매화를 떠올렸다. 선운산 톨게이트를 나와 한가로이 시골길을 달렸다. 질마재를 넘기 전, 왼편에 자리한 창내저수지를 지나다 잠시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섰다.
꽃샘추위의 매서운 봄바람이 수면 위에 일으킨 ‘물꽃의 무리’. 윤슬 혹은 물비늘이라 불리는 그 반짝임이 눈부셨다. 그 차가운 바람이 내는 빛을 대면하는 동안, 한 구절의 시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 서정주, 「자화상」 부분
저수지의 물비늘을 일렁이게 하던 그 봄바람이, 시인을 키웠다는 ‘팔할의 바람’과 겹쳐 보였다.
재를 넘는 동안 주변에 시인들의 집은 보이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너머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을 질마재를 굽이굽이 넘어 한 마을에 도착했다. 부안면 선운리이다. 앞에는 부안과 고창 사이를 깊숙이 파고든 내해 곰소만이 펼쳐져 있고, 나머지 삼면은 산과 그 줄기가 포근하게 둘러싼 곳이었다.
하얀 톤의 단층 건물에 ‘질마재 시인마을’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붙어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다 그만그만한 시골 마을에서 단연 눈에 띄는 시멘트 구조물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소요산 자락에 위치한,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를 개보수해 운영 중인 ‘미당시문학관’이다.
질마재 시인마을을 찾아온 길에서 우리는 뜻밖에 미당의 숨결을 만났다. 방문객이 많지 않은 고요한 공간에서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를 받는 행운을 누렸고, 미당의 시문학을 호흡하며 하루를 채웠다.
돌아오는 길, 이른 저녁을 먹으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댓글을 확인했다. 한 소설가가 남긴 글이 눈에 들어왔다.
“......서정주의 「신부」를 연상케 하는 머나먼 그리움의 이야기.......”
나는 답글을 적었다.
“이심전심일까요. 질마재 시인마을의 미당시문학관을 다녀오는 길이네요. 그곳에도 「신부」가 벽에 걸려 있던데요.”
이 모든 것이 단지 우연이었을까.
미리 계획하지도, 감지하지도 못했지만, 지나온 시간을 복기해 보니 누군가 미리 정해 놓은 길을 다녀온 것만 같다. 어젯밤의 독서부터 오늘의 뜻밖이었던 여정, 그리고 돌아오는 길의 대화까지,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