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에 실려 온 계절의 인사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으레 머릿속을 스치는 풍경이 있다. 벽난로 안에서 타오르는 장작불, 두툼한 스웨터, 그리고 창밖으로 고요하게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같은 것들. 하지만 이곳, 남반구의 호주에서 크리스마스는 전혀 다른 색채로 우리를 찾아온다.
12월의 호주는 계절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여전히 캐럴이 흐르지만, 사람들의 차림새는 가볍기 그지없다. 산타클로스는 루돌프가 끄는 썰매 대신 서프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르며 나타나고, 아이들은 눈사람 대신 해변의 고운 모래를 쌓아 '모래 사람(Sandman)'을 만든다.
초록색 트리 위에 쌓인 것은 솜뭉치가 아니라 눈부신 태양 빛이다. 처음에는 이 이질적인 풍경이 어색해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이내 깨닫게 된다. 계절의 온도가 어떠하든 무언가를 축하하고 소중한 이를 떠올리는 마음의 온도는 변함없다는 것을.
호주의 크리스마스 점심 식탁은 무겁지 않다. 오븐에서 갓 꺼낸 뜨거운 로스트 치킨 대신, 얼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싱싱한 **타이거 프론(Tiger Prawns)**과 굴이 주인공이 된다. 마당 한쪽에서는 바비큐 그릴이 달궈지고, 지익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스테이크 향기가 이웃집 담장을 넘는다.
백미는 역시 디저트다. 하얀 머랭 위에 생크림을 듬뿍 얹고, 그 위에 새빨간 딸기와 패션프루트를 올린 '파블로바(Pavlova)'.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하게 부서지는 식감 뒤로 여름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번진다.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원한 화이트 와인 한 잔까지 곁들이면, 비로소 '아, 정말 크리스마스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뜨거운 열기 때문일까,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유독 느릿하게 흐른다. 긴 휴가를 맞이한 사람들은 해변에 파라솔을 펴고 누워 책을 읽거나, 잔디밭에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눈다. "Merry Christmas"라는 인사 뒤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No worries"(걱정 마/ 걱정 없어)라는 대답이 따라붙는다.
추위에 몸을 웅크릴 필요가 없는 이곳에선 마음조차 활짝 펴지는 기분이다. 완벽한 장식이나 화려한 파티가 없어도 괜찮다. 반바지 차림으로 가족들과 비치 볼을 차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나누는 것. 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평화가 바로 호주가 선사하는 크리스마스의 진면목이다.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계절이 거꾸로 흐르고 풍경이 바뀌어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의 반짝임은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는 중이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충분히 포근하고, 코끝이 시리지 않아도 충분히 낭만적인, 12월의 AUSSIE CHRISTMAS(오지 크리스마스)다.
(*Aussie'(오지)는 호주 사람(Australian)을 가리키는 친근한 속어이자 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