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치즈코/은행나무
문신 지우기
다지마가 말하듯이 ‘어머니의 언어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아버지의 언어를 선택한다면 거기에는 ’거세‘가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의 딸‘로부터 탈피하는 길은 이 양자택일의 선택지 자체를 거부하는 것밖에 없다. (p.205)
우에노 치즈코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설명하고 있는 여성혐오는 가부장제를 이어 온 사회 구성원이 관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차별 의식을 의미한다. 성별 이원제 젠더 질서에서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일상에서 예술 작품까지 여성혐오의 역사와 현상을 깊이 설명하고 있다. 가부장적 질서는 워낙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곤 하지만, 여기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 시대에 페미니즘은 중요한 관심사다. 이 관심은 청소년에게까지 이어져 이른바 ‘의식화’된 중학생들을 제법 만나 볼 수 있다.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문학 수업의 한 장면이다.
학생1 : 그러니까 처녀는 허생원 감상에 빠지라고 이효석한테 이용당한 거네요.
선생 : 허생원이 주인공이니까 그 밖의 인물들은 주변 인물인 거지, 이용이라기보다.
학생1 : 하룻밤 보내고 도망간 남자 말고, 임신해서 집에서 쫓겨나 힘들게 산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죠.
학생2 : 맞아요. 이게 뭐가 낭만적이에요. 하나도 안 아름다워요.
선생 : 그래도... 문장은 쫌... 아름답지 않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다루어야 할 내용이 많은 소설이다. 신화적 원형에서 시작해 감각적 문체까지. 그런데 도통 전달이 안 된다. 허생원에게 버림받은 처녀가 신경 쓰이고, 허생원이라는 무책임한 인간보다 더 나쁜 작가한테 화가 나서 다른 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이 날 수업의 결론은 ‘이효석이 잘못했네.’가 되었다.
뭐든 처음 접하면 더 예민하게 감지하는 법. 아이들은 문학 작품에서 여성혐오로 의심되는 장면들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그러다 보니 온통 지뢰밭이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건강한 소년과 병약한 소녀 구도가 마음에 안 드는 데다, 소년이 성장 과정에서 슬픔을 경험하게 하려고 애꿎은 소녀를 죽인 게 문제고, 김동인의 ‘감자’에서 복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죽었고,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도 도시인의 고독을 설명하기 위해 아내의 주검이 등장한다. 맨날 여자들만 죽는다. 그런데, 이토록 엄격한 잣대에서 살아남을 한국 문학이 과연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뭘 죽이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아이들이 작품 속에서 여성혐오의 요소를 찾아내는 것은 나쁜 작품을 솎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놀이이다. 도처에 널린 여성혐오의 흔적을 찾아내면서 무지하거나 무신경한 어른들을 조롱하는 놀이. 이 얼마나 통쾌한 전복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딸로서가 아닌 자기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예끼 이놈’하고 야단칠 게 아니라,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라며 억울해할 게 아니라,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여성혐오의 흔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박박 밀어 지워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