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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숭이 Aug 06. 2021

2021080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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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수요일,

예상보다 일찍 자러간 우리 아기.

밤 10시 쯤 잠든 나무를 침대 벽쪽으로 눕힌다. 일기를 쓸 때까지는 남편이 나무 옆을 지키고 있는다. 나는 아기 옆에 자고, 남편은 다시 방바닥 생활 시작. 한 달동안 침대에서 쉴 수 있어서 편했을 텐데, 다시 바닥으로 내려간다. 그의 배려와 수고로움 덕분에 우리 셋은 대구라이프도 잘 적응하겠지. 새벽 2시 40분, 7시 55분에 맘마를 먹고도 잘 자는 우리 아기. 에어컨과 선풍기가 필수인 여기에서, 찜통같은 더위를 잘 이겨내보자.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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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계속 뒤척이던 나무는 결국 깨어버렸다.

남편이 나무를 거실로 데려나가고, 나는 다시 눈을 붙였다. 목이 걸걸하게 가라앉을 정도로 자고 일어났으니까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해 볼까나. 어제못 먹인 이유식을 데워왔다. 고구마가 들어간 죽이니 잘 먹겠지? 오늘도 타이밍 실패. 너무 배가 고팠는지 눈물을 쏟았지 뭐. 점심을 준비하던 남편은 분유 타주랴, 달래주랴 바쁘다 바빠. 그래도 닭고기고구마적채죽 140ml과 분유 70ml을 먹었네. 아유 기특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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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를 죽을 먹는 그 남자는 오히려 내 밥을 챙겨주었다. 대패삼겹살을 마늘이랑 굽고 깻잎이랑 쌈장을 예쁘게 플레이팅을 했다. 밑반찬까지 싹싹 긁어먹었더니 배가 부른데, 커피는 마시고 싶네. 세탁기는 두 번 돌아가고, 설거지와 젖병소독, 남은 짐 정리 등등 할 게 왜 이리 많은지.. 심지어 물건들은 꼭 동시에 떨어지더라. 젖병세정제, 아기 유산균, 분유, 이유식 쌀가루.. 우리가 살 것들은 제쳐두고 아기 것만 쏴악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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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 큐브가 있어서 든든한 이숭이.

이유식을 만들어야지! 오늘은 어떤 걸 만들지 책을 펼쳐놓고 고민에 빠진다. 소고기 육수를 실온에 해동시키는 사이에 소고기 핏물을 뺐다. 소고기감자양송이죽을 만들기 위해 재료들을 다 넣고 끓이고 있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감자인 줄 알고 넣었던 건 닭고기였다. 알아차리자마자 튀어나온 말. ‘아.. 망했다’. 한 끼 죽에 고기가 두 가지라 꽤 많이 난감한 상황. 결국 감자만 추가해서 넉넉하게 끓이긴 했지만 마음은 씁쓸하네.. 이어서 닭고기, 양파랑 시금치를 넣어 죽을 끓인다. 큐브 라벨링을 잘 해야겠다.. 반성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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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감자채전이랑 같이 밥을 먹었다.

남편이 산 채칼은 감자를 휙휙 돌려가며 채썰어주는데 신세계였다! 다 먹고 외출 준비를 하는 우리. 낮에 인생역전! 로또 이야기를 하다가 복권을 사러 산책을 가기로 한 것. 가는 길에 순후추컵라면이랑 젤리를 사고, 로또랑 긁는 복권을 샀다. 어두운 길이 무서운지 우는 나무를 안고 집으로 온다. 얼른 목욕을 시키고, 한 명씩 아기를 보면서 후다닥 씻고 왔다. 대망의 복권을 꺼내볼 시간. 남편은 안경이 부러졌으니, 내가 대신 확인해주기로 한다. ‘꽝!’이라며 옆에 놔두니까, ‘안 보인다고 사기치는 거 아니제?’하고 말하네.. 낄낄낄. 당첨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의심하고 서로를 못 믿는 사이가 됐네.. 껄껄껄.. 어쨌든 만원 중에 천원짜리가 4개나 당첨됐다며 좋아하는 거 보면 나는 굉장히 소박한 사람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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