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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4. 2022

달이 뜨기 전에 3

3. 실패

최종 합격자 발표는 일주일 뒤에야 나는 것이었지만, 나는 더 빨리 합격여부를 알 수 있었다. 그 학교에 근무하는 선배로부터 이른 아침 전화가 왔다. 불합격의 소식을 그렇게 덤덤히 전하는 말투가 있을 수 있는지 서운함이 들었다. 선배는 괜찮다고 처음 한 번인데, 자기는 몇 번은 떨어져 봤다고 했다. 나의 힘없는 말투와는 다르게 선배의 상기된 어조가 전화기 너머 작은 방안을 울리게 했다. 마음이 텅 비는 기분에 허기조차 잊게 했다. 


좁은 방 안에서 한 동안 멍하게 앉아 있다가, 언뜻 구두 생각이 났다. 이 모든 것이 구두 때문인가? 구두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그럴듯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답을 미루고, 구두를 고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안에서 지나가던 길에 구두 수선 방을 본 것 같았다. 사실 평소에는 거의 구두를 신지 않았기 때문에, 구두를 고치러 갈 일 도 없었다. 이 구두도 산 지 꽤 되었다. 나의 퉁퉁 부은 얼굴과 빨간 눈이 문 앞 거울 안에서 못생기게 어른거렸다. 하지만, 이 시간에 내가 아는 사람을 학교에서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화장도 하지 않고서 방을 나섰다. 흔들거리는 구두를 한 손에 들고, 한 겨울에 터덜터덜 때가 묻은 여름 운동화를 신고 학교로 걸어갔다. 눈길에 몇 번을 넘어질 뻔했다. 그렇게 걸어가면서도 구두 수선 방이 열려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더구나 방학 때이고, 또 오전 10시이다. 학교 안에 학생들도 없는데, 영업을 이리 일찍 시작하실지 모르겠다. 나는 달리 할 일도 없어 일단 가보기로 했다.


힘없는 걸음에 따라 간신히 붙어있는 구두 굽이 흔들거렸다. 마치 나를 너무 탓하지 말라는 듯 나도 아프다는 듯 흔들거렸다. 혹시나 아는 얼굴을 마주칠까 조바심을 내며 후문을 지나 학생 문화관 앞으로 다급히 들어섰다. 이제 이 길 마지막을 돌면, 구두 수선 방이 나오고 아는 사람을 마주칠 일은 없어지게 된다. 그런 아주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어디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기였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머뭇대는 나를 붙잡고 인사를 한다.


“ 아침부터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 근데,,,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울었어?”

“ 아.. 하하.. 별일 아니야.. 넌 어디 가는데?”


난 재빨리 화재를 바꾸려 했지만, 이 야속한 친구는


“ 아.. 너 거기 안됐구나.. 야,, 거기 들어가기 쉽지 않아... 몰랐어?”

“ 아.. 그렇지... 뭐 나도 많은 기대는 안 했어...”


어떤 말이든 빨리 대답하고 지나가고 싶었다. 동기의 말은 선배의 말과 거의 비슷했다. 나 같은 인간이 들어가기에는 어려울 것이니, 실망하지 말라는 위로. 나는 그저 쓴웃음으로 답했다.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최근 만나게 된 의사 남자 친구 이야기를 늘어놨다. 남자 친구를 위한 선물을 사러 가는 길이라며, 나를 툭툭 친다.


나보다 키가 큰 친구는 내 어깨를 그렇게 두드리더니 여유 있게 인사를 하면서 유유히 사라졌다. 마치 내가 그 실패의 자리에서 영원히 있어주기를 바라는 말뚝을 박는 듯했다. 한 번의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듯 한 이 사회 속에서 나의 실패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점점 멀어지는 동기와는 다르게 나는 잠시 그곳에 서 있었다. 나의 시선은 발끝으로 가 있었다. 여름 신발의 숨구멍 속으로 찬바람이 차갑게 스며들었다. 짙은 회색빛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땅이 나를 꼭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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