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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4. 2022

달이 뜨기 전에 5

5. 달이 뜨기 전에

이제 구두 밑으로는 진득한 본드 칠을 하신다. 기계 옆에 달린 통에서 오랜 세월 본드가 묻은 붓이 내 구두 밑을 여러 번 지나간다. 왼쪽에 있는 가스버너가 켜진다. 약한 불로 맞춘 버너 옆으로 구두가 비스듬히 서서 그 불을 맞이한다. 나의 얼어붙었던 마음도 조금씩 녹는 것만 같았다.  


그 약하게 켜진 불에 멍히 눈을 고정하다가, 구두 수선방 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이 좁은 공간은 효과적으로 기계와 부품 상자들이 들어차 있었다. 한 치의 여유 공간이 있기보다, 빼곡한 공간 활용이 지혜롭게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의 오래된 둥근 의자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삐걱되는 소리를 냈다. 아저씨의 바쁜 움직임이 내는 소리였다. 버너의 불이 제 역할을 할 동안 아저씨는 다른 손님의 구두를 쉴 사이 없이 매만진다. 어느새, 그 구두도 모양을 달리한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불을 쬐고 있던 내 구두를 들어 살펴본다. 구두에 두 엄지손가락으로 망설임 없이 딱 제자리에 고무판을 갖다 대신다. 그리고 자연스레 삐져나오는 본드를 닦아내며 주변을 정리한다. 구두 굽과 구두 겉창도 자연스럽게 연 결된다. 구두를 거꾸로 틀에 놓고 작은 못을 박는다. 못에 따라 고무판이 더 조여 진다. 단단하게 조여진 겉창은 튼튼해 보였다. 드디어 말끔하게 구두가 새 모습을 찾았다. 나는 여름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신었다. 따뜻한 감촉이 발을 감싼다. 시험으로 지쳤던 마음과 그리고 불합격의 아픈 마음조차 따뜻하게 감싸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시 덥지 않은 위로 같지 않은 위로보다 이 따뜻함과 정돈됨이 나에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나는 새 구두를 산 사람처럼, 땅바닥에 신발을 몇 번 두드려보았다. 말끔해진 신발은 내 발에 딱 맞았다. 내가 구두를 이리저리 살피는 동안 아저씨의 핸드폰이 울린다. 아저씨는 전화를 받는다. 누군가의 안부를 물으며 아저씨는...


“지금 당장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될 거야.”


 아저씨는 내가 건넨 돈을 한 손으로 받고, 거스름돈을 다시 건네며 통화를 이어간다.


“ 암...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최고지.” 


마치 나에게 해 주는 말 같았다. 아니 나에게 해 주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따뜻하게, 아주 다정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말을 뜻밖의 장소에서 듣는다.


나는 다시금 구두를 바라본다. 이 구두가 고쳐진 것처럼 어느 사이 마음의 상처가 다 나은 것 같았다. 구두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반짝인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겨  구두 수선 방을 힘차게 나가 선다. 발걸음이 당당해졌다.


오늘 밤 달이 뜨기 전에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달빛을 맞으며 공부도 다시 하고, 때로는 여러 잡념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그리고 누군가 그리워할 준비를 하는 원래의 내 모습이 다시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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