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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6. 2023

파란, 기억여행자 1

기억을 멈추기로 작정한 것처럼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계속되는 상대의 말에 마치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아... 어...’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벽에다 말을 해도 이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대방의 대답을 두고 나는 고개만 푹 숙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 채 앉아있는 나를 두고 상대는 일어나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카페 한 구석 테이블에서 화가 나는 것인지, 슬픈 것인지, 안타까운 것인지 자신의 감정도 알 수 없는 지금의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한참을 머그잔만 만지다가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다시 현관문을 닫고, 방문을 열고 다시 방문을 닫고 자기 세상 속으로 들어가 침대에 머리를 박듯이 쓰러져 누웠다.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어서, 그대로 다시 나가야 할 판이었다. 머리라도 빗어야 할 것 같아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하는데, 문득 어제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제 무슨 일로 이렇게 그대로 침대에 누웠는지 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찾아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지갑을 찾아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집을 헤집듯이 찾아보았다. 있을 만한 곳에 있지 않았다. 


기억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아무것도 기억하려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머리가. 그대로 멈추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현관문고리에 겉옷이 걸려 있었다. 옷 주머니 안에 지갑, 핸드폰이 있었다. 술이라도 먹고 인사불성이 된 것이었나? 뒤죽박죽 된 자신의 흔적에서 적절한 이유를 찾아보았지만, 이럴 다 할 핑계를 찾을 수 없었다. 카드 결제내역을 확인하면서도 카페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말을 했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다. 집안으로 들어와 보니 방문 앞에 신발이 이상하리만큼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겉옷을 가지고 소파에 앉았는데, 뭔가 부스럭 종이 소리가 났다. 주머니에 엉거주춤 끼어져 있는 광고전단지였다. 근처 자주 가던 식당이 리뉴얼을 했다며 할인 행사를 한다는 광고였다.

그러다 갑자기 회사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가 시간, 날짜, 요일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벽시계를 보고 천천히 앉았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광고 전단지를 무심결에 쳐다보았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만큼 정성을 다한 사골 국물!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겉옷을 입으며 일어나 회사가 늦은 것처럼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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