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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10. 2023

파란, 기억여행자 2.

원한다면 해드려야지요.

음식점 문을 열었다. ‘딸랑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저 혼자입니다.      


창가로 안내해 드릴까요?     


창가로 아담한 테이블이 몇 개 보였다. 환한 햇살이 창가에 가득했다. 창문 너머 보이는 길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일요일 오전 10시. 이런 시간에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처지가 왠지 처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무시될 만큼, 배가 고팠다. 아침을 매번 잘 챙겨 먹는 편도 아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배에 힘이 빠지도록 허기가 졌다.      


설렁탕 하나 주세요.     


네, 리뉴얼 기념으로 김치 부침개를 드리는데, 드시겠어요?     


네, 주세요.     


입에서 살짝 웃음이 지어졌다. 이 웃음이 어색했다. 공짜 김치 부침개에 이렇게 까지 기분이 좋아지나? 이 웃음은 내가 짓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고, 기대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다. 

내 몸이 웃는 것이었다. 나를 이끄는 것은 내가 아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믿었던 내 몸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질질 끌고 다녔던 몸은 이제 지치고 지쳐 기억조차 내쳐 버리고 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렁탕이 나왔다. 뽀얀 국물이 뚝배기 그릇에서 하얀 김을 내고 있었다. 손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뽀얀 국물과 밥을 날랐고, 입은 한껏 받아 들어 오물오물 바쁘게 잘게 부수었다. 식도는 넘실넘실 움직이며 위 안으로 맛있는 것들을 날랐다. 포만감이 점차 들면서, 바삐 움직였던 손과 입과 위는 점차 속도 조절을 하였다. 반짝 반짝이며 바삭 거리는 부침개도 먹었다. 한 그릇이 비워지자 이제야 고개가 들어졌다.      


창가 옆, 장식장이 눈에 띄었다. 장식장 안에는 다양한 모자들이 있었다. 모자들의 화려한 색과 독특한 모양에 이끌려 일어나, 장식장 앞에 섰다. 모자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장식장 문을 열어 모자로 손을 뻗었다.

     

손님! 만지시면 안 됩니다!     


주인아주머니의 다급한 소리에 놀라,     


아! 죄송합니다.     


아차, 싶었다. 이렇게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평소 나의 모습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 파란색 벨벳의 동그란 창을 가진 모자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저 파란 모자를 한번 써 봐도 될까요?     


저기 있는 모자들은 그냥 보통 모자가 아닙니다.      


보통 모자가 아니면?      


지금은 손님도 많고 제가 바쁘니 자세하게 말씀을 못 드리네요.


궁금하시면, 이따 밤에 와 보세요. 원한다면 해드려야지요.     


주인아주머니는 접시에 반찬을 바삐 담으면서 말했다. 어느새 식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밤... 이요?     


주인아주머니는 실망스러워하는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계를 가르치며 말했다.      


오후 아홉 시쯤? 늦지 않게만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계산을 하고 식당 문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오후... 아홉 시... 기억할 수 있겠지? 아홉 시... 아홉 시... 아홉 시... 오후 아홉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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