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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촉수 Dec 27. 2020

언니, 참지 마

통증의 비교급

보호자와 헤어지고 수술실로 가는 중간 단계에 수술 대기실이 있다. 보호자와 헤어진 것도 아니고, 함께 있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공간. 투명 유리문 너머 그의 실루엣이 보이던 바로 그 공간. 수술 환우가 들어올 때마다 열린 자동문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그. '자기야, 나 아직 여기 있어' 그 말에 폭풍 오열하던 바로 그 공간. 나를 달래주려던 맘씨 고운 간호사를 쩔쩔매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공간.


2018년 4월 17일. 큰 수술이라 맨 마지막 순서로 배정되었다. 수술 소요시간은 3시간 반이라고 했다. 회복실에서 대략 한 시간 가량 머물다 병실로 올라왔다. 네 시간 반. 그는 어딜 그렇게 돌아다닌 걸까. 만보에 가까운 그의 걸음수. '성공적'까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코로나 19 훨씬 이전이라 병실엔 환우와 보호자 말고도 문병객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나는 모든 방문을 사절했다.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문병객을 위로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괜찮아. 뻔한 거짓말하기 싫었다. 시누이가 그에게 전화해서 가족끼리 어려울 때일수록 의지하고 도와야 하는 거라고 따지듯 훈계했다. 의지하고 돕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이라 흥, 콧방귀 뀌고 말았다. 나는 마음이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다. 제스처 몇 번으로 마음의 짐을 털어내려는 사람을 피했을 뿐이다. 매일 새벽 병실 청소하는 도우미 아주머니. 그가 없는 평일, 나를 간병해주던 간병도우미. 하루 세 번 식사시간이면 식판을 가져다주시는 분. 유쾌하고 솔직했던 간호사. 그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하다고 내 마음을 표현했다. 진심을 알아봤을 뿐이다. 틀에 박힌 뻔한 제스처 없이도 가슴을 울리는 사람들.


민경이. 40년 묵은 친구들. 나의 늙은 친구, 선생님. 일상을 함께 해준 그녀. 나의 만류에도 두 번이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울 언니.

지난여름. 병실에서.
언니. 참지 마

수술하는 동안 그의 핸드폰으로 몇몇 지인들이 연락했다. 수술은 들어갔는지. 수술은 끝났는지. 병실엔 올라왔는지. 아파하는지. 힘들어하는지. 민경이가 그에게 보낸 카톡을 읽었다. 장문의 카톡이었다. 단문을 주로 쓰는 아이였다. 글 길이에서 그 아이의 안타까운 마음이 읽혔다. 절절한 마음이 보였다. 나를 너무 잘 아는 그 아이.


언니는 통증을 참을 거예요.
언니는 그런 사람이에요.
내색하지 않을 거예요.
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진통제 아끼지 말고 맞게 해 주세요.
제발 참지 않게 해 주세요.


통증을 견디고 참을 나에 대한 염려였다. 쓸데없이 참는 건 자신 있었다. 통증과 고통에 내성이 생겨버렸다. 어느 정도까지 참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견뎌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아이는 아주 작은 통증도 참지 말라고 당부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그 아이 말대로 했다. 참지 않았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엄살 피울 때마다 엄마는 자신이 겪은 통증의 강도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라떼는 말이야~. 당장 아파 죽겠는데, 30년 전 엄마 통증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인지. 엄마는 나를 위로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보다 더 아팠던 자신을 알아달라는 걸까. 당신과 비교하면 내 통증 따위 별거 아니라는 걸까. 신경질 났다. 통증이 '나'로 둔갑해버렸다. 통증을 알아주지 않았을 뿐인데, 나를 부정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 너 아프구나. 그 한마디가 고팠다. 통증을 인정해주면 그만이었다. 엄마의 통증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내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다. 각자의 아픔만 부여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엄마를 통해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을 줄여줄 수 없다는 것만 확인했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비교했다.


저 사람을 봐. 너는 얼마나 다행이니.

저런 사람도 있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도 있어. 너는 얼마나 행복하니.

살아있으면 된 거야.


'죽지 않는 것'이 삶의 목표는 아니라고 어떤 분이 그랬다. 숨 쉬고 살아있어서 다행인 건 맞다. 삶을 즐기고 싶었다. 삶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고 싶었다. 삶이 건네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암 환우도 '살아 있는' 상태보다 나은 삶을 원한다. 암 환우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한다. '건강하기'는 필수다. 삶의 목표가 그건 아니다. 그 이상의 삶을 원한다. 욕심일까?


자꾸 옆 사람이 가진 행복과 불행을 곁눈질했다. 저울질했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며 불행했고, 나보다 덜 가진 사람을 보며 안도했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었다. 그럴수록 불행해진다는 걸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암 환우가 되자 이번엔 다른 사람의 통증을 곁눈질했다. 행복이나 불행처럼 통증은 상대적이지 않았다. 통증엔 비교급이 없었다. 언제나 내 통증이 최상급이었다. 알지만 비교했다. 못된 습관. 이번엔 타인의 통증과 비교하며 행복하고 불행했다. 이런, 빌어먹을. 죽음이 등 뒤까지 쫓아와도 개선되지 않는 나란 인간.


낯가림 심한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광경을 병원 대기실에서 종종 목격했다. 방금 대기실에서 만난 환우분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허물없이 얘기를 주고받았다. '질병'이라는 공통분모가 경계심을 풀어줬다. 동병상련. 그들은 이름과 거주지는 묻지 않았다. 질병의 종류와 병기, 회복상태로 통성명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건 잠깐이다. 곧 통증 베틀이 붙었다.


아, 당신은 나랑 같은 수술 했는데 나보다 더 아프군요. 그럼 제가 더 행복한 거네요.

비슷한 시기에 수술했는데, 당신은 벌써 회복되었어요? 그럼 제가 더 불행하군요.

어머. 당신은 아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어요? 나는 벌써 파마도 했는데. 그럼 이번엔 제가 더 행복한 거네요.


환우들은 누가 더 행복하고 불행한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비교하면서 우울해하고, 기뻐했다. 희망과 절망을 사이좋게 주고받았다. 시트콤보다 더 웃긴 일이 다큐로 벌어지는 곳이 진료실 앞 대기실이었다.


민경이. 그 아이가 말했다. 통증을 참지 말라고. 재활의학과 의사가 말했다. 아픈데 참을 필요 있나요?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정신 차려보면 참고 있었다. 타인과 비교하며 상처 받을 필요 없다. 그것도 알고 있다. 언젠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능한 날이 오겠지. 나로 인해 행복하고 아프지 않은 날. 그 날이 언젠가 오겠지.


근데, 머리숱은 언제나 풍성해지려나?

설마, 이게 끝이라고? 어흑...

다른 사람들은...

됐다. 비교하지 않기로 했잖아.


지난여름. 병원 휴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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