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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Apr 07. 2020

달이 밝은 밤이다

하루 1000자

  ‘달이 밝은 밤이다’라고 뻔히 시작하는 글에 첫 문장 아래 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목줄에 목이 막혀 말을 하지 못해서 허공에다 손을 모아서 허우적거린다. 나는 그런 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너의 신호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보며 짧은 목줄을 땅을 끌며 불안한 마음을 보이듯 이리저리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흩날리는 먼지는 달빛에 반짝였고 너는 기침한다.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야. 그래서 너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어 라고 말했고 너는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너와 나는 반복되고 지겨운 행동을 계속했다. 나는 다리가 저려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서서 형광등을 끄기 전에 너를 잠시 바라봤다.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련이 남아 보였다. 나는 불을 껐고 달빛만 남아 온전히 밤을 채웠다. 너는 조용히 옆에 있던 컨테이너 밑으로 들어가 달빛을 피해 몸을 웅크렸다.

  사실 이 글에서 너와 나는 없었다. 달빛도 없었고 목줄도 없었다. 당신이 생각했던 너는 개도 아니었을 것이고 나는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 글을 뱉었고 형상을 다듬었다. 너는 이런 나의 글에 항상 각주를 달고 ‘달이 밝은 밤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너의 글에 제목을 달고 인용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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