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무에타이 1일 차

by 인문규

오늘은 평소에 준비하던 게 전부 끝나고 이제 부사관 면접만 남아서 너무 할 게 없었다.

빡빡하게 지내던 4개월이 지나고 하루 쉬자니, 답답해서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다.

물을 끌어올리는 기계를 수리하는 거였는데, 물에 닿는 부분이 녹슬어서 쇠로 된 칫솔 같은 거로 녹을 벗겨내는 작업이었다. 앞뒤로 팔을 움직일 때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2시간 정도 그렇게 작업을 하다가 조금 답답해서 조금 위험하지만 그라인더로 작업을 하니 훨씬 편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심장이 불안해져서 아버지한테 말하고 약을 먹었다. 이 공황장애는 진짜 방심하면 다시 나타나는 게 너무 불편하다. 다 나았다고 착각한 내가 바보였겠지.

그라인더 작업이 끝나고부터는 인근에 있는 철물점에 가서 물건을 받아오는 걸 주로 했다. 12시가 좀 넘어서 집에 왔다. 오자마자 밖에 나가서 밥을 먹자고 해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공황장애가 아직 남아 있어서 제대로 먹지 않고 반 정도 버렸다. 아버지는 자꾸 심장 아픈 게 공황도 문제겠지만, 고혈압이 있으니 내과에 가서 심전도 검사를 해보고 오라고 했다. 고혈압이 정말 문제라면 조금 난감할 것 같다.

밥을 먹고 아버지가 카니발 엔진오일 교체하고 에어컨을 수리하고 오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공업사를 가서 기다리는데, 작업하는 직원분들이 뭔가 남자답고 멋져 보였다. 근데 한 20분이면 될 것 같았는데, 1시간이 넘게 소요돼서 2시에 집에 올 수 있었다. 2시부터는 아버지가 시내로 차 심부름을 주로 시켰다(이러려고 수리를 맡기셨나). 이천에서 시내 운전은 차도 막히도 워낙 신호가 많아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근데 실수로 물건을 잘못 사 와서 2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운전이 진저리 났다. 심부름이 끝나니 3시가 좀 가까워졌다. 그래도 그 덕에 아버지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어서 설치까지 5시에 끝낼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자고 간단하게 간장 계란 비빔밥을 먹고 무에타이 도장에 등록하려고 자전거에 탔다. 너무나도 절묘하게 비가 내렸다. 루피 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끌고 도장에 갔다.

도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이전에 다녔던 주짓수장에 절반 정도 되는 매우 작은 크기였다. 아득한 맛이 있어서 좋았다. 관장님은 포근한 동네 일진 형 같은 느낌이었다. 왠지 귀여웠다. 말투도 약간 허세가 있었는데 그게 또 감칠맛이 있었다랄까. 바로 등록하고 관원들을 기다렸다. 3명 정도 왔는데 중학교 정도 되는 애들이었다. 한 명은 운동 내내 딴짓하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한 명은 관장님의 최애 같아 보였는데, 나한테 이것저것 알려주고 적당히 선을 그었다. 한 명은 적당히 할 것만 하고 하는 편이었다. 원하던 분위기였다. 하하호호하면서 다 같이 하는 것보다 각자 할 일 하면서 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원하는 대로 됐다.

운동량은 딱 원하는 만큼이었다. 줄넘기 5분 정도 하고 스쿼트랑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 운동 하나를 하고 기본자세 연습을 배운 뒤 마무리 운동으로 팔굽혀펴기, 윗몸일으켜기를 하고 끝냈다. 기본자세를 알려줄 때 빼고는 관장님은 나오질 않았다. 살짝 날먹 같은 느낌이 강했으나, 6시에 와서 1시간 정도 개인 운동해도 된다고 했으니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었다. 11년 만에 복싱 글러브를 다시 껴보니 기분이 묘했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갈 때가 되니, 비가 멎었다. 오래간만에 아이유 노래를 들으면서 집에 돌아갔다. 내일은 부디 자전거를 타고 도장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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