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없을 때, 가장 영리하게 #노션투자전략분석 #노션성장스토리
“ 투자자들이 우리를 쫓아다녔어요. 이반이 예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아트페어 티켓을 들고 무작정 회사에 온 투자자도 있었죠. 우리가 자주 가는 식당을 찾아온 투자자도 있었고요. ”
- 악샤이 코타리 노션 COO, 롱블랙 인터뷰
- 노션 CEO 이반 자오의 회고
노션의 시작은 2013년 샌프란시스코다.
창업자 이반 자오(Ivan Zhao)와 사이먼 라스트(Simon Last)는 단순한 노트 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오는 어린 시절부터 코딩을 배우며 자랐고, 앨런 케이(Alan Kay),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 같은 컴퓨팅 혁신가들의 철학에 깊이 매료되어 거창한 비전을 품었다.
모든 사람이 코드를 몰라도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하자.
노션의 초기 아이디어는 비개발자도 앱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자오는 이를 '소프트웨어계를 위한 레고(Lego for software)'라 불렀다. 누구나 블록을 조립하듯 자신에게 필요한 툴을 창조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First Round Capital, 론 콘웨이(Ron Conway) 등 실리콘밸리의 유명 엔젤 투자자들로부터 약 200만 달러의 초기 자금을 유치했다. 제품 비전이 워낙 독특했기에, 전통적인 VC 라운드 대신 ‘친구, 가족, 지인의 투자’ 위주로 모인 이 돈은 노션의 첫 엔진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첫 도전은 무참히 실패했다. 스스로 “제품이라 부르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였다. 2016년 세상에 나온 노션 1.0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강력한 기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익숙한 경험’이 먼저라는 사실. 노션은 이 뼈아픈 교훈을 온몸으로 배웠다.
- 노션 CEO 이반 자오의 회고
초기 노션은 기술적 시행착오까지 겹쳤다.
당시 구글의 웹 컴포넌트 프레임워크를 활용했는데, 버그가 끊임없이 터졌다. 사용자 콘텐츠가 유실되는 심각한 사고까지 발생했다. 결국 노션은 핵심 코드를 전면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짜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5년, 돈은 바닥났다. 샌프란시스코의 살인적인 임대료와 인건비는 회사를 파산 직전으로 내몰았다.결국 남은 자금을 모두 긁어모아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하루 종일 코딩에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
바로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을 정리하고 생활비가 절반 이하로 드는 일본 교토로 떠난 것. 그들은 함께하던 동료 직원들마저 모두 내보낸 후, 오직 창업자 두 사람만이 남아 고립과 집중의 길을 택했다.
이것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실리콘밸리의 ‘성장’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제품의 본질에만 몰두하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었다. 두 창업자는 교토의 작은 아파트에서 1년여 간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기, 그들에게 VC 투자자는 없었다. 오직 ‘사용자가 정말로 사랑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과, 이반 자오의 어머니가 빌려준 비상금 15만 달러가 전부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노션의 가장 진정한 의미의 ‘시드 라운드’였을지도 모른다.
2018년, 안정성이 뛰어난 React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 구축된 노션 2.0이 탄생했다.
이번에는 단순 노트 앱을 넘어서 데이터베이스와 보드 기능까지 통합한 올인원 협업 툴이었다. 노트와 위키뿐 아니라 할 일 관리, 프로젝트 관리, 인재 채용 관리까지 하나의 툴로 가능해졌다.
IT 제품 커뮤니티 ‘프로덕트 헌트(Product Hunt)’에 공개되자 기적이 일어났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이달의 제품 1위’에 오르며 전 세계 사용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몇 년간의 고립과 집중이 만들어 낸 ‘제품의 본질’이 시장과 완벽하게 조응한 것이다.
노션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에버노트 대체제', '슬랙+위키 결합'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소규모 스타트업과 생산성 애호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자발적인 초기 열성 사용자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직원 수는 고작 10명 남짓이었지만, 사용자 피드백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빠른 속도로 제품을 개선했다. 2019년 말, 노션은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유료 구독 모델로 흑자 전환까지 성공했다.
노션의 투자 유치 역사는 실리콘밸리의 일반적 공식과 다르다.
수년간 벤처캐피털(VC)의 제안을 거의 받지 않았다. 투자자를 쫓아다니기보다 제품 개발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2019년, 노션은 약 1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지만, VC 주도 라운드가 아니라 전환사채(컨버터블 노트)를 주식으로 전환한 정리 성격이 강했다. 그럼에도 기업가치는 8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노션은 대형 투자를 받지 않고도 이미 유니콘에 근접한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것이다. COO 액샤이 코탸리는 당시 노션이 12~18개월째 흑자 상태였기에 자금 압박은 없었다고 했다.
당시 노션은 12~18개월째 흑자 상태였기에 자금 압박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노션은 2010년대 후반까지도 투자 유치에 매우 신중했고, 회사에 이사회조차 두지 않을 정도로 외부 간섭을 최소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4월, 노션은 드디어 대규모 벤처 투자를 받아들인다.
Index Ventures의 주도로 5천만 달러를 유치하여 회사 가치는 20억 달러로 뛰었고, 명실상부한 ‘유니콘’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노션은 이때도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신뢰’를 위해 투자받았다고 밝혔다.
우리에게 5천만 달러는 필요 없는 돈이다.
노션은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고
설령 사업의 절반이 날아가도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투자를 받은 이유는, 코로나 위기로 시장이 불안해지자 고객들에게 ‘우리 회사는 안정적이며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불과 2%의 소액 지분만으로 5천만 달러를 확보하고 경영권 간섭은 일절 허용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이는 투자를 생존이 아닌, 고객을 안심시키고 장기적 비전을 향한 신뢰를 구축하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노션은 이듬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할 도약을 한다.
2021년 10월, 노션은 Coatue Management와 Sequoia Capital 주도 하에 2억 7,500만 달러를 유치했다. 기업가치는 100억 달러(약 13조 원). 이제 노션은 명실상부 데카콘이었다.
이 자금은 단순히 생존이나 신뢰를 넘어 '시장 지배와 글로벌 확장'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노션은 전 세계 20만 개 팀, 2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IBM, 삼성 같은 대기업도 노션의 고객이 됐다.
투자 유치 자금으로 노션은 더 큰 시장 확장과 제품 발전, 그리고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그 증거가 바로 인도 기반의 Automate.io(2021년 인수)나 캘린더 앱 Cron(2022년 인수) 같은 M&A였다. 이 투자는 노션의 ‘야망의 크기’가 달라졌음을 시장에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이었다.
향후 10년 내 모든 소프트웨어 회사가 노션의 경쟁자가 될 것이다. 결국 노션은 어떤 종류의 툴이든 만들어낼 수 있거나, 그들과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생존 자금부터 신뢰 구축, 그리고 시장 지배를 위한 자금까지. 노션은 각 단계마다 투자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고, 필요한 만큼의 연료만을 정확한 타이밍에 주입하며 성장했다.
노션의 성공은 유니콘을 꿈꾸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몇 가지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노션은 투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흑자 전환을 이뤄낸 대표 사례다. 불과 10여 명의 팀으로 수백만 사용자를 서비스한 '작은 배' 지향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며 덩치를 키우는 전형적 방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돈이 더 많아도 성장 속도가 빨라지진 않는다'는 노션의 철학은, 투자의 효율성이 제품의 완성도와 비례함을 증명했다.
모든 성공의 중심에는 창업자 이반 자오의 뚝심 있는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드러난 자신의 언어를 통해 노션의 핵심 가치를 끊임없이 설파했다.
투자 유치에 대해서는 '건강한 투자 유치는 헤드라인을 장식함으로써 우리의 성장하는 고객 기반에게 노션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안심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며, 자금 확보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조달한 자금을 10년 이상 갈 안전자산처럼 여기며, 무분별한 확장을 경계하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노션의 이야기는 투자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투자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대신, 그들이 먼저 찾아와 줄을 서게 만들었다. 빠른 성장 대신, 자신들만의 속도와 철학을 고집하며 판을 바꿨다. 이것은 가장 똑똑한 플레이어들이 모인 실리콘밸리에서, 노션이 어떻게 그들만의 힙한 자세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투자를 ‘필요해서’가 아닌 ‘선택해서’ 받은 기업, 이게 노션의 힙한 본질이다.
투자는 생존을 위해 부여잡는 동아줄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닥부터 단단히 언덕 위에 올라선 자만이, 더 높은 정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 필요 없는 힘’을 먼저 길러내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 힘을 바탕으로 가장 유리한 타이밍에, 가장 영리한 목적으로 투자를 활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노션이 유니콘 생태계에 보여준 ‘13조 원짜리 자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