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래도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남들보다 느리게 걷는 것 같고, 가진 것도 이룬 것도 별로 없어 보이는 삶.
아이 둘을 키우며, 소소하게 글을 쓰며, 하루하루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나.
그런데도 나는, 이 삶을 감히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합리적 낙관주의자다.
현실을 무시하지 않지만, 절망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더 갖지 않아도, 더 높이 오르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지금 이 자리가 의미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미니멀리스트’다.
⸻
1. 많이 가질수록 불안했던 시간
예전에는 뭐든 ‘많아야’ 안심이 됐다.
아이 옷, 장난감, 살림살이, 명함에 써넣을 경력까지.
많이 갖고 있어야 덜 불안했고,
채워져 있어야 나 자신이 덜 초라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을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물건이 늘어나자 청소는 피곤했고,
일이 많아질수록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은 줄었다.
가득 채운 서랍장 속에서
나는 진짜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나는 덜어내는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지, 작정한 건 아니었다.
다만, 숨을 쉬고 싶었다.
‘정리’가 아니라 ‘회복’을 원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시 붙잡는 변화가 있었다.
⸻
2. 덜어낸 만큼 채워지는 평안
물건을 비우자 시간이 보였다.
해야 할 일을 줄이자 아이가 웃는 얼굴이 보였다.
스마트폰을 덜 보니 내 안의 감정이 느껴졌다.
소비를 줄이니 감사가 자랐다.
나는 여전히 ‘합리적’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녹록지 않다는 걸 안다.
돈 없으면 불안하고, 관계는 복잡하며,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위에서 나를 다스리는 분이 계신다는 걸
‘신앙’으로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낙관할 수 있다.
아무 근거 없는 긍정이 아니라,
말씀을 근거로 한 신뢰 속에서의 평안.
그분은 내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3. 미니멀한 믿음, 단단한 삶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다.
아직도 잘 흔들리고, 쉽게 지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내 삶을 이끌고 계신다는 것.
그래서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단순하고 단단하게 살기로 한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며,
아이에게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
4.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낙관할 수 있다
합리적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건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확신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에,
내가 처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선하게 일하실 것을 믿는 태도다.
나는 욕망을 비우는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더 이상 소유나 성취로 내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나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가진 것이 부족해 보여도
저의 삶을 통해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해주세요.
조금 더디더라도,
이 믿음의 걸음을 멈추지 않게 해주세요.”
⸻
작은 낙관이 우리를 살린다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나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그래도 믿는다.
작은 기쁨과 말씀 위에 세운 오늘이
내일로 이어질 것임을.
나는
합리적으로 낙관하며,
믿음으로 단순하게,
감사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