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시간의 기록이 보여주는 유한한 나의 존재
개념미술의 거장 온 카와라의 <I Got Up>, <I Went>, <I Met>, <I Am Still Alive>, <Today> <One Million Years> 시리즈 모두를 함께 볼 수 있는 전시가 홍콩 타이콴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On Kawara: Rules of Freedom, Freedom of Rules, 23 May - 17 Aug, 2025
홍콩에 와서 그동안 봤던 가장 인상 깊은 전시를 고르라고 하면 이번 타이콴 컨템포러리의 온 카와라 전시를 고르겠다. 작가는 2014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죽은 후 10년 이후에 개인전을 열어달라고 했다. 원래 살아계실 때도 인터뷰도 안 했고, 여러 가지로 독특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시를 둘러보았다.
잘 정돈된 작가의 시간들을 보면서 문득 사후 10년 이후의 전시라는 개념 자체가 무한한 시간을 기록하면서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던 작가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부터 2000년대까지 텔레그램으로 전달되었던 <I Am Still Alive> 시리즈의 확장판처럼 말이다.
시간에 대한 응답으로 열리고 있는 전시의 큐레이팅도 작품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이번 전시에서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I Got Up>, <I Went>, <I Met> 시리즈와 1970년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I Am Still Alive> 시리즈, 1966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이어진 <Today> 시리즈, <One Million Years>, <Pure Consciousness>까지 작가의 모든 시리즈를 볼 수 있다.
작품들은 단조롭지만 압도적이다. 불필요한 요소들이 제거된 정제된 큐레이팅도 작가가 말하는 존재와 시간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준다. 투데이 시리즈 제작 영상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공간도 인상적이다. 슬라이드가 넘어가는 소리가 지루한 시간의 감각을 깨운다.
+ 시리즈 작품들을 보면서 상상해 본 온 카와라의 하루
작품을 본 어른(나)은 단조롭다고 생각했고, 작품을 본 아이(아들)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엄청 바빴을 거라고 말했다
작가는 10년 이상 동안, 매일,
- 아침에 일어나서 깨어난 시간을 확인하고 엽서에 “I Got up at….”라는 문장을 고무도장으로 찍은 다음 친구나 미술계 지인에게 엽서를 보냈다.
-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사서 읽은 기사를 공책에 오려 붙이고 메모하여 파일에 스크랩했다.
- 캔버스를 꺼내 그날의 날짜를 머무는 도시의 언어로 그리고 일지(날짜, 배경색, 크기, 작품수)를 작성하여 파일에 스크랩했다. 당일 완성을 못하면 폐기했다(50년 이상, 약 3000점)
- 오늘 하루 만난 사람의 이름을 타자기로 기록하고 파일에 스크랩했다.
- 오늘 하루의 동선을 파일 규격에 맞춰 인쇄한 지도에 표시하고 파일에 스크랩했다(어떤 날은 빨간색 점만 찍혀있다).
- 그리고 가끔 나는 살아있다고 친구에게 전보를 보냈다.
PLACE 타이콴 컨템포러리(JC 컨템포러리 갤러리)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물, 타이콴 내부에 위치한 동시대/현대미술 갤러리로 스위스 건축사인 헤르조그 앤 드뫼롱(Herzog & de Meuron)이 디자인했다. 비영리로 기관으로 주로 실험적인 동시대 시각예술을 선보이는 만큼 상업 갤러리들의 전시보다 주제와 작가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전시는 주로 1층과 3층에서 이루어지고 2층에는 Artists’ Book Library와 카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