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계획을 미리 세울 때 새로운 배움에 대한 것을 넣으려고 한다. 도서관 등에서 진행하는 강좌 중에서 마음을 끄는 것을 선택해서 일정에 담는다. 그것이 끝났을 때의 스스로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삶의 보람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작지만 또 한 단계 오른 거라는 마음에 시작도 하기 전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달 일찌감치 선택했던 것은 동화창작과정이었다. 강의 첫날, 부드럽고 느긋한, 매끄럽지 않지만 진심 가득한 목소리로 강의를 진행하셨던 분은 80대 가까이 되신 소설가이며 동시와 동화 작가님이셨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령대가 꽤 있는 온라인 상의 문우들을 향해 동화창작은 결코 어렵지 않다는 말씀을 느린 목소리로 이어가셨다.
그림책, 환상동화, 생활동화, 청소년 소설, 전래동화 등으로 동화를 정리해서 말씀하셨고, 생활동화 중에서도 길지 않은 손바닥만큼의 분량을 쓰는, 이른바 손바닥 동화를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동화창작과정의 목표라고 말씀하셨다.
인천 월미도 근처에 가면 동화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동화마을이라고 하니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았고, 이런 곳을 아이도 없이 중년의 어른들이 가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차를 주차하기 전부터 들었다. 코로나로 여행이 자유롭지 않으니 찾다 찾다 이런 곳까지 오게 되는구나 잠시 푸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입구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과 동화마을 입구의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아이들보다 어른이 훨씬 많았다. 차이나 타운과 이웃해 있어서 두 곳을 함께 보고 즐기려는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연령층도 폭이 넓었고 다양했다.
'그래, 동화적 감성을 어린아이들만 즐기란 법 있을까.'
어느새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찾은 사람들은 어른들이 더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동화가 그려진 벽과 나무, 기둥은 물론이고 캐릭터를 완성해 놓은 곳이라면 어디든 활짝 웃으며 사진에 담고 있었다. 집도, 간판도, 벽도, 작은 기둥 하나도 모두 동화적 감성으로 포장된 마을이었다.
서울의 이화벽화마을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향해 호소문을 써 놓았던 것을 잠시 떠올렸다. 이곳이 별 탈이 없는 것을 보면,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주만들이 동화의 세계를 넉넉히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동화창작과정의 작가님의 말씀처럼 동화마을 사람들에게 동화는 편하고 친근한 것 같았다. 삶과 어우러진 동화적 공간, 그 자체가 한 편의 동화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안내하는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 음식을 파는 분들, 다양한 상품을 파는 가게의 주인들은 동화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낯선 세계에 뚝 떨어진 앨리스나 걸리버나 어린 왕자나 그들의 친구는 아니었을까. 콜라병을 손에 든 북극곰과도 친구가 되고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의 손도 잡고 나무와 새에게도 말을 건네는 동화속 인물들과 동화된 새로운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동화는 곧 환상이라고 생각해왔다. 동화에 접근하려면 독특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낯선 시공간, 과장과 변형, 신기하고 신이한 능력의 부여,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된 성격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들이 이번에 공부한 동화창작과정은 물론이고, 동화에 접근하게 하는데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마치 동화마을처럼, 생활에 바탕을 둔, 한 컷의 사진처럼 삶의 짤막한 단면 자체가 동화인 글이라면 지레 겁을 낼 필요가 없었겠다는 생각을, 동화마을을 다녀온 후 생각했다 . 동화마을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좀 천천히, 느긋하고 여유 있게, 별거 아닌 것에도 놀라움과 신기함과 가득한 미소를 이야기로 담는다면, 그렇다면 손바닥만큼의 동화는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공원에 가니 할머니, 엄마, 아이 3대가 공원을 즐기러 나와 있었다. 낙엽을 주워 바람에 날리고 아이는 날리는 낙엽을 잡으려고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 중에서 색도 선명하고 모양도 변형되지 않고 잎의 생기도 살아있는 것을 아이는 고르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할머니도 잎을 모았다. 모양도 일그러지고 구멍도 숭숭 뚫린 부서지기 직전의 낙엽이었다.
가을이면 나도 낙엽을 주워 두꺼운 책에 끼워 놓곤 했다. 조금 반듯하게 마르면 코팅지로 코팅해서 모양대로 잘라 책갈피로 사용하기도 하고 지인에게 무심한 듯 건네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매년 줍는 낙엽의 모양도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올해는 구멍 숭숭 뚫린, 새와 벌레들이 잎을 갉어 먹어 가장자리가 까맣게 타 들어간 잎, 색도 얼룩덜룩한 잎이 눈에 더 들어왔다.
그간 동화는 화려하고 다양하고 선명한 색채로 시공간을 나타내는 그림과, 거기에 어울리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화려한 성공담이라고 한정지은 것 같다. 동화를 만드는 사람 역시도 동화의 주인공 만큼이나 각별한 감성과 감각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화는 분명 고운 이들의 세상이지만, 그 세계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낡은 것도 변형된 것도 곧 부서질 것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동화창작과정은 5주 차로 끝나는 짧은 강의였다. 동화창작과정이 끝나고 난 후 나의 깨달음은 삶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이야기를 어쩌면 글로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금은 투박해도, 너무 평범해서 반짝이지 않는 그런 이야기라도.
나는 동화적 감성이 풍부하지 않다는 생각. 동화는 예쁘고 특별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생각. 그런 세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나처럼 무딘 감성은 어렵다는 생각이 나를 방해하던 선입견이었던 것 같다.
강의는 끝났지만, 나의 손바닥 동화의 시작을 막았던 고정관념은 한 꺼풀 벗어던진 것 같다. 쓰다 보면 다른 어려움이 또 발목을 잡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또 깨달아 나가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어쩌면 동화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올지도.